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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게시판

★충격..황장엽 5만명 고정 간첩 주장 사실로 밝혀짐..코멘트3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은 이날

 

이명박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한 '공개 질문장'에서

 

"현 청와대와 행정부, 새누리당 안에도 우리와 내적으로 연계를 가진 인물들이 수두룩한데

종북을 떠들 체면이 있는가"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명박 정권에도 간첩이 암약한다면

좌익정권에선 두말하면 잔소리.....

 

노무현 정권시

386 간첩단 사건 수사 못하게 한 것도 북의 지시로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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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까지 깊숙이 스며든 북한의 입김-


<세계일보>입력 2011.07.31 (일) 21:12, 수정 2011.07.31 (일) 21:19

 
공안당국이 북한 225국(옛 노동당 대외연락부)의 지령을 받아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5명을 구속하고 수십 명을 수사 중이라고 한다. 구속된 인사 중에는 정보기술(IT)업체 대표 김모씨, 전 국회의장의 전 비서관 이모씨도 포함돼 있다. 야당 소속 인천시당 간부, 지자체 단체장 등도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공안당국에 적발된 간첩 혐의자들은 남한 지하당인 ‘왕재산’을 결성해 활동해 왔다. 왕재산은 함북 온성에 있는 산으로 북한 김일성이 생전에 항일 활동을 하던 근거지 가운데 하나다. 혐의자들은 “남조선 혁명을 목표로 하는 지하당을 구축하라”는 지령을 받고 ‘왕재산’을 결성했다.


그 총책인 김씨는 IT업체 대표로 위장해 1994년 4월부터 최근까지 59차례 해외에 다녀오면서 재일간첩과 북한 대남 공작조직의 상부선과 10여차례 접선했다. 그 일당이 북에 전달한 남한 내 정당과 민주노총 동향, 군사 기밀 등 정보는 수없이 많다. 더구나 국회의장실 등 정치권 심층부도 붉은 세력에 뚫렸다고 하니 심각하다. 청와대와 내각 등 정부기관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닐 것이다.


왕재산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국내 고정간첩이 5만명이란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순수 진보세력과 종북세력은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정부는 국가전복 세력을 끝까지 추적해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러자면 대공·방첩망을 시급히 복원·확장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대공분야의 조직은 꾸준히 축소·폐지됐다. 결과는 참담하다. 우리 사회는 ‘간첩천국’이나 다름없게 됐다. 왕재산 조직 적발이 1999년 민혁당 사건 이후 12년 만이라는 사실이 무엇을 말하는지 곱씹어야 한다.

 

 

★황장엽증언....... 고정간첩 5만명과 親北 김만복!!

 

김정일 나팔수 역할하는 盧 전 정권 국정원장  
 
게재 일자 : 2011-01-13 13:48      
 
노무현 전 정권에서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수장(首長)을 지낸 인사가 김정일 북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자임하다시피 하고 있다.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은 일본의 좌파 성향 월간지 ‘세카이’ 2월호 기고를 통해 친북(親北) 인식과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는 국내 반(反)대한민국 세력이 얼마나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새삼 일깨워주는 단적인 사례다.

 

김 전 원장은 지난해 11·23 연평도 포격 도발까지 북한의 궤변을 거들고 있다. 대한민국 군이 자초했다는 식으로 북한의 강변을 복창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그렇다. ‘북측이 한국군의 해상사격훈련은 사실상 북에 대한 공격 행위라는 항의성 경고문을 몇번이나 보냈다. 그러나 한국군은 예정대로 사격훈련을 했다’면서, 그래서 ‘북한은 연평도에 150발의 포를 쐈다’고 이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 소행임이 과학적 증거를 통해 입증된 지난해 3·26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천안함이 ‘침몰’된 것으로 표현하면서 세계 전문가들도 참여한 민·군(民軍)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론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는 북한의 억지와 거의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골적인 이적성(利敵性)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는 1997년 한국 망명 당시 ‘남한 내에 고정간첩 5만명이 암약하고 있으며, 권력 핵심부에도 침투해 있다. 우연히 김정일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보았더니 그날 아침 여권 핵심기관의 회의 내용과 발언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고 밝혔었다. 남베트남이 공산화될 당시 체제 내부에 북베트남 간첩이 5만명 정도였다고 하며, 실제로 차점 낙선했던 대선후보, 인기있는 도지사 등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이 공산화 뒤 밝혀지기도 했다. 김 전 원장의 행태는 이런 사실들까지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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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남북정상회담] 김만복 ‘깍듯’ 김장수 ‘꼿꼿’ 

 

2일 남북 정상회담 공식환영식에서 정보기관과 국군의 수장인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전혀 상반된 태도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인사를 나눠 주목됐다.

 

 

 

▲ 김만복 국정원장이 2일 평양 공식 환영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 손을 잡고 악수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평양 청와대 사진기자단

 

김 위원장은 악수를 하다가 김만복 국정원장에겐 특별히 몇 마디 말을 건네는 등 친밀함을 표시했다. 이에 김 원장은 악수를 하며 깍듯이 고개를 숙였고, 김 위원장이 한동안 머물자 거듭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재정 통일부장관과 악수하는 김위원장

 

김장수 국방장관과 악수하는 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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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선생의 증언...

 

남한내에 고정간첩 5만명이 암약하고 있으며 특히 권력 핵심부에도 침투해있다

2월12일 북경에서 망명을 신청한 북한노동당 황장엽비서의 발언에 따른 파장이 증폭되고 있다.

황비서는 망명 전에 쓴 서신에서 『그쪽(한국) 권력 깊숙한 곳에 이쪽(북한) 사람이 있다』며 망명기도에 대한 기밀유지를 신신 당부하기도 했다.


1996 동아닷컴 <서 영 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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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내 각급 기관, 심지어는 권력의 심장부까지 고정간첩(固定間諜)이 박혀 있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정부내 고첩침투설'이 YS정권 말기(97년 2월)에 제기돼 정가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적이 있다. 일파만파 걷잡을 수 없는 핵폭풍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거물급 귀순인사 황장엽(黃長燁)의 '입'. "남한내 북한 고정간첩 5만명 암약중"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그의 한마디 말에 이 나라가 곧장 벼랑끝 위기에 내몰렸음은 물론이다.

황장엽의 '5만명 고정간첩설'

黃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연히 김정일의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보았더니 그날 아침 여권 핵심기관의 회의내용과 참석자들의 발언내용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는 그의 구체적인 정황설명은 국민들의 벌어진 입을 닫지 못하게 만들었다.

정보당국은 황이 언급한 내용중 특히 간첩의 숫자가 부풀려졌다는 평가를 내렸다. 보안사령관과 국방장관을 지낸, 대표적인 보수인사인 이종구 조차 "북한은 서울시내에 2만여명의 고첩을 두고 있다"고 말했는가 하면, 이명영 성균관대 교수 역시 이와 비슷한 수치를 내놓았다.

대북 정보분석가들은 "서울에서 매일 발사되는 암호전파수(1백40개)로 추정해볼 때 서울에서 암약중인 고정간첩은 2만1천명 선"이라고 그 수치의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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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계/종교계에도 좌익분자들  조직적 침투 가능성 높다!!!

 

 인터넷에 있는 아래 글은 35년전 김일성 비밀교시라는데....

사실이라면 지금쯤 그들이 벌써 50대 중반에서 60대다....

법조계의 중요 직책에도 암약하고 있다고 봐야... 

그 놈들이 후배들 밀어 주고 끌어주고 해서 새끼를 치고.......

 

한번 조사해봐야... 

  

***주요시기별 김일성 비밀교시***

1973년 4월:


"남조선에서는 고등고시에 합격되기만 하면 행정부 사법부에도 얼마든지 파고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 려져 있습니다. 앞으로는 학생운동에서 검열된 학생들 가운데 머리좋고 똑똑한 아이들은 데모에 내몰 지 말고 고시준비를 시켜야 합니다.


열 명을 준비시켜서 한 명만 합격되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됩니다.


그러니 각급 지하당 조직들은 대상을 잘 선발해 가지고 그들이 아무 걱정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 도록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원해 주어야합니다."



"중앙정보부나 경찰조직에도 파고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있습니다. 공채시험을 거쳐 들어갈 수도 있 고 지연 등 인맥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남조선에는 김종필, 이후락, 윤필용 간에 치열한 삼각암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들의 알력과 갈등, 학연 지연관계를 잘 이용하면 권력핵심부에도 얼마든지 파고 들어갈 수 있습니 다."

"남조선에서 제일 뚫고 들어가기 좋은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에는 이력서 보증서 없이도 얼마든지 들 어갈 수 있고, 그저 성경책이나 하나 옆에 기고 부지런히 다니면서 헌금이나 많이 내면 누구든지 신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단 이렇게 신임을 얻어 가지고 그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미끼를 잘 던지면 신부 목사들도 얼마든지 휘어잡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공작원들이 남조선의 현지실정을 어떻 게 잘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남조선에는 흔한 것이 교수 박사입니다. 그 가운데 빽이 든든한 몇몇 사람을 제외한 절대다수의 지식 인들은 어렵게 박사학위를 따고서도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실업자나 다름없습니다. 요행 대학교수로 들어갔다 하더라도 인맥관계에 밀리어 연구활동의 기회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고 합니다.


이렇게 춥고 배고픈 교수 박사들에게 접근하여 프로젝트를 하나 따주는 형식을 취한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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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反美·反戰-간첩과 부패로 패망한 베트남



자유베트남은 시종일관 反美·反戰 데모를 주도했던 간첩과 시민·종교단체의 조직적인 선전선동결과 미군의 전면철수 후 공산화 됐다. 베트남은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에서도 월맹을 훨씬 앞질렀지만 부패했고, 휴전협정 이전부터 사회 곳곳에 침투한 간첩과 시민·종교단체들은 부패척결과 反美·反戰 평화를 명분으로 베트남의 신경망을 장악해갔다.


▲베트남전 당시 분신자살하는 승려의 모습



1973년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미군과 한국군이 전면 철수 하자 사이공에는 100여개의 애국단체, 통일 운동단체들이 수십 개의 언론사를 양산하여 베트남의 좌경화 공작에 앞장섰다.

목사, 승려, 학생, 직업적 좌경인사, 反戰운동, 인도주의 운동 등 가능한 모든 운동체가 총동원되어 티우 정권 타도를 외쳤다. 1975년 베트남은 월맹 정규군의 무력침공과 베트콩의 게릴라전에 패배한 것 이상으로 이들 100여 좌익 단체의 선전전에 당했던 것이다.

5만여 명의 간첩, 민족주의자·평화주의자로 위장

이들은 호치민이 1930년 2 월에 창당한 베트남 공산당,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의장인 웬후토가 1962년 1월에 창당 한 인민혁명당에서 침투시킨 조직원들이다. 패망 당시 베트남에는 공산당원 9500 명, 인민혁명당원 4만 명, 즉 전체 인구의 0.5% 정도가 사회의 밑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5만여 명의 월맹간첩들은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위장한 채 시민·종교단체는 물론 대통령비서실장과 장관, 도지사 등 권력핵심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미군의 전면철수 후 베트남패망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간 이후에나 확인됐다. 1967년 치러진 베트남 대통령 선거에서 차점으로 낙선된 야당지도자 쭝딘쥬도 대표적 간첩이었다. 그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들끼리 피를 흘리는 모습을 조상들이 얼마나 슬퍼하겠냐"며 월맹에 대한 포용정책을 주동했다.

간첩들이 가장 많이 침투했던 것은 시민·종교단체의 부패척결운동과 反美·反戰평화운동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선전선동을 통해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해가면서, 국방과 안보를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또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자유베트남이 패망하자 미군헬기를 타기위해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모습


자유베트남 정부 협조한 사람들 모두 재교육 받아

베트남은 공산화 이후 지식인, 공무원, 군인, 종교인, 부유층, 그리고 월남정부에 협조한 사람들은 전부 재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적대(敵對)계층으로 분류& #46095;으며 조국을 배신한 배신자로 간주되어 승자의 보복대상이 됐다. 탄압과 차별, 학대와 폭정이 자행되었고 전국 각처에 재교육 수용소가 설치되어 적대계층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잡아 가두고 공안경찰을 증원(增員)하여 국민의 일상생활을 감시하고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것을 통제했다.

특히 가혹한 육체노동을 강요했다. 노동을 최고의 가치로 규정하여 "부모의 흘린 피와 땀, 자식이 흘린 피와 땀이 합쳐야 나라가 번영한다"고 선전하면서 무자비(無慈悲)한 노동을 강요했다. 논과 밭은 국유화되고 영농은 철저한 3모작을, 일반 국민은 헌금을 강요받았으며 돈이 없는 자는 노력봉사를 해야만 했다. 노동자는 한달에 15kg의 쌀을 배급받아 생활해야 했고, 전쟁부채 상환비, 전비(戰費)기금을 내야 했다.

공무원·경찰·정보요원을 제국주의 앞잡이·도구

먹는 것을 철저히 통제하고 수중에 돈이 없게 하여 국민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는 철저한 국민재교육을 시행했다. 또한 화폐개혁을 단행하여 종래 부를 축척한 모든 것을 부정해 자살을 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이 국민 재교육은 "공무원(公務員)은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경찰(警察) 및 정보요원은 제국주의의 도구(道具)로, 군인(軍人)은 무력으로 총을 가지고 대항했던 사람으로, 문예(文藝)인은 민족정신을 교란시킨 사람으로, 종교인(宗敎人)은 국민을 유혹하여 미신에 빠지게 하고 우매하게 만든 사람으로, 자본가(資本家)는 국민을 착취하여 강압적 노동을 시켜서 반혁명에 앞장을 섰으며 국민에게 피의 부채를 지고 있다"는 죄를 물어 재교육을 시켰다.

"우리 공산당은 이 반역자들을 재교육 과정을 통해서 사회주의 혁명에 동참할 선량한 국민으로 개조하고,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선도할 것이며 노동을 경험하게 하여 자력갱생(自力更生)의 길을 열어준다."라고 선전했다. 한 수용소에 2.000명 정도 수용했으며 성(省) 별로 1개 이상이 있고 사이공 주변 등 도시 주변에는 대상자가 많음으로 여러 곳에 설치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밀림지대에 위치시켜 탈출을 방지하고, 나무를 벌목하여 수용소를 짓고 개간하면서 식량은 월 9kg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자급자족하도록 했다.

즉결처분 인원 포함 최소 30~200만명 사망

수용소 방침 자체가 체형(體刑) 및 학대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어 있었고, 작업 실적에 따라서 수용소장의 재량으로 급식의 양을 결정했다. 따라서 제거해 버리고 싶은 적대계층의 사람은 굳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더라도 제거할 수 있게 제도를 만들었다. 가족이나 다른 국민들, 외국(外國)의 항의를 벗어나기 위한 교묘한 방법을 강구해 냈다. 수용소 기간에는 면회가 일체 사절되었고, 편지도 1년 또는 2년에 한번 보낼 수 있었으며 의료혜택은 전무하여 병에 걸리면 바로 죽는 것이었다.

말라리아 등의 열병과 뱀 전갈의 독충과 영양실조 및 미래에 대한 포기는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혁명에 방해가 되는 사람을 제거했다. 즉결처분된 사람들을 포함하여 그 인원은 30만에서 2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정확한 통계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월남 군인만 100만이 넘는 것을 감안할 때, 하사관 및 초급장교까지 수용소로 보냈으며 공무원 종교인 경제인 월남 정부 협조자와 그 가족까지를 포함하면 최소한 100만 명 이상의 상당한 숫자가 재교육을 받았다고 판단된다.


▲공산치하에서 살기를 거부한 수많은 남부 베트남인들은 즉각 해외로의 탈출을 시도했다. 1976년부터 1992년말까지 동남아지역으로 탈출한 베트남 사람들의 수는 총 792,893명에 이른다.


한편 공산치하에서 살기를 거부한 수많은 남부 베트남인들은 즉각 해외로의 탈출을 시도했다. 철수하는 미군을 따라 망명길에 올랐던 1세대 탈출자들은 미국 등 서방으로 이주하여 비교적 쉽게 그곳에서 정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6년부터 탈출한 대부분의 베트남인들은 안전한 이주 및 재정착의 보장없이 무작정 국경을 넘거나, 배를 타고 공산베트남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1976~1992년말까지 총 792,893명 베트남 탈출

이들중 상당수는 다른 나라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고, 동남아 일대의 바다를 정처없이유랑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들이 바로 보트피플(Boat People)이라 불리우는 베트남 난민이다. 1976년부터 1992년말까지 동남아지역으로 탈출한 사람들의 수는 총 792,893명에 이르렀다. 1979년부터 1992년말까지 동남아국가들의 난민 수용소(refugee camp)를 거쳐 최종적으로 난민자격(refugee status)을 인정받아 서방 등 제3국에 정착한 난민수는 438,436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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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다시 보는 "김일성 비밀교시"


“남조선 에는 고등고시에 합격만 되면 행정부, 사법부에 얼마든지 잠입해 들어갈 수가 있다. 머리가 좋고 확실한 자식들은 데모에 내보내지 말고, 고시준비를 시키도록 하라”

김필재    

법정·옥중 투쟁

○ … “남조선 에는 고등고시에 합격만 되면 행정부, 사법부에 얼마든지 잠입해 들어갈 수가 있다. 머리가 좋고 확실한 자식들은 데모에 내보내지 말고, 고시준비를 시키도록 하라”(1973년 4월, 대남공작원과의 담화)

○ …“남조선을 가리켜 법치국가라고 하고, 또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하지만 역시 돈과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는 것이 황금만능주의에 물 젖은 자본주의사회의 법조인입니다. <유전무죄요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듯이 판사, 변호사의 농간에 의해 사건이 뒤집히는 예가 허다합니다. 이것이 오늘 남조선의 법 실태입니다. 현지 당 지도부는 남조선의 이러한 법 체제의 미비점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중대한 사건일수록 법조계, 종교계, 언론계의 조직망을 총동원하여 사회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사면팔방으로 역공을 펼쳐야 합니다. 그래야 법정 싸움에서도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1968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 … 변호사는 법정에 있어서의 우리 측의 유리한 원조자다. 변호사에게 백만 원 쓸 것인가 천만 원 쓸 것인가로 그들의 목소리가 달라진다. …법정에는 예심과정에서의 진술내용도 모두 뒤집게 되는 것이다. “왜 (진술을) 번복하는가?”라고 판사나 검사에 묻는다면, 경찰이 고문을 했기 때문에 허위진술을 했다고 끝까지 버티고, 상처나 흔적을 보여주면서 역습을 하는 것이다.(1968년 12월, 대남 공작원과의 담화)

○ … 설사 법정에서 실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간다 해도 혁명가들은 언제든지 구출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혁명가의 지조를 굽히지 말아야 한다. 적들의 회유와 기만술책에 넘어가 전향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망상이다. 지금 적 아 간에는 치열한 사상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혁명가의 운명은 혁명의 길에 나설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1968년 12월, 대남공작원과의 담화)

○ …“통일혁명당 지도부가 파괴됨으로써 우리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김종태 동무는 적들의 고문에 의해 옥사했지만 혁명가로서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탈옥도 시도하고 법정투쟁도 잘했습니다. 김종태 동무가 이렇게 묵비권을 행사하며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기 때문에 그 하부조직들이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이 동무에게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 주어야 합니다.···그래야 남조선 혁명가들과 조직성원들이 김종태 동무처럼 옥중에서도 혁명적 지조를 끝까지 지킬 수 있습니다.” (1968년 12월 3호 청사 부장회의)

○ …“박종철 사건을 계기로 남조선 대공기관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지하당 조직들은 때를 노치지 말고 안기부와 남영동 대공분실을 고문집단으로 몰아붙여야 합니다. 인권변호사를 앞세우고 언론, 종교단체 등 재야 정치인들을 총 동원하여 여론 공세를 퍼부으며 학살 주범 처벌과 국가보안법 철폐, 공안기구 해체를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정치활동의 자유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1987년 2월 3호청사 확대간부회의)


한반도 공산화를 위한 결정적 시기


○ … “결정적 시기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혁명정세는 오직 혁명가들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성숙되게 됩니다. 혁명의 객관적 정세가 아무리 성숙되었다 하더라도 혁명가들이 주동적으로 조성하지 않으면 결정적 시기는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각종 형태의 대중투쟁을 적극 조직 전개하여 적들의 강경 탄압을 유도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위도중 경찰에 의해 살해된 것처럼 위장하여 자해공작을 할 필요도 있습니다. 시위군중들이 동료들의 피를 보게되면 더 격렬하게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 … “혁명의 전 전략적 단계에서 결정적 시기는 단 한 번 밖에 오지 않습니다. 결정적 시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기 포착을 잘해야 합니다. 결정적 시기가 조성되었다 해도 그 시기를 포착하지 못하면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4·19 때의 교훈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좋은 기회를 놓쳤던 것처럼 평양에 앉아서 무전으로 보고나 받아 가지고서는 서울에서 일어나는 결정적 시기를 제때에 포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혁명정세를 자체로 분석 평가하고 스스로 전략전술을 작성할 수 있는 노숙한 혁명가들을 파견하여 현지당 지도부를 시급히 꾸려야 합니다. 조선혁명을 모스크바에서 지도할 수 없듯이 평양에 앉아서 남조선혁명을 지도한다는 것은 혁명의 원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1974년 1월 대남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 … “해외에 나갔던 전 정보부장 이 후락이 지금 충무호텔 2층 특실에서 휴양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는데 연락부에서 그 자를 평양으로 데려 오도록 작전을 한번 해보시오, 지금은 공직에서 물러난 상태니까 경호원도 별로 없을 것이고, 장소도 바닷가니까 감쪽같이 잡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그리고 상대가 보통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혀를 깨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해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강력 마취제를 써서라도 내 앞에 데려오기만 하면 됩니다." (1974년 4월 3호청사 간부회의)

○ … “년 초부터 박정희가 긴급조치를 연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강한 탄압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유신체제를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결정적 시기가 박두했다는 징조입니다. 우리는 유신체제가 더 굳어지기 전에 선손을 써야 합니다.···남조선에서 대통령이 출두하는 행사 일람표를 보니까 해마다 8·15 광복절 경축 파-티가 경회루에서 벌어지는데 매우 흥미 있는 곳입니다. 이번에는 68년 청와대 육박 당시의 교훈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빈틈없이 잘 준비해야 합니다.”
 (1974년 4월 3호청사 부장회의)

○ … “지금 남조선 정세가 매우 흥미 있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광고 해약사태는 결정적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동아일보에 대한 구제운동을 벌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세를 더욱 격화시키기 위해서는 이 사태가 장기화 되도록 기름을 치고 부채질을 해야 합니다. 현지 당 지도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광고주들에게 공갈, 협박을 해서라도 광고 해약 자들이 더 늘어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 동아일보 사태를 잘 이용하기만 하면 결정적 시기가 성큼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1974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 … “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 전화국, 변전소, 방송국 등 중요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과 북의 전략적 배합으로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1974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 … “10·26사태는 결정적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박정희가 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은 권력층 내부의 모순과 갈등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들은 지금 계엄상태를 선포해 놓고 서로 물고 뜯고 하고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연락부에서는 이 사태가 수습되기 전에 선 손을 써야 합니다. 남조선의 모든 혁명역량을 총 동원하여 전민 봉기를 일으킬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해야 합니다.” (1979년 11월 3호청사 부장회의)

○ … “남조선의 대통령이 각료들을 이끌고 동남아를 순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작전부에서 결사대를 파견 해 보겠다고 했다는데 절대로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틀림없이 해야 합니다. 버마가 허술한 나라라고 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방문 일정에 따라 사전 답사도 해 보고 빈틈없이 잘 준비를 해서 감쪽같이 해 치워야 합니다. 만약 이번 작전에서 성공하게만 된다면 결정적 시기가 성큼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1983년 9월 3호청사 부장회의)

○ … “전두환이가 드디어 백기를 들었습니다. 4·13 호헌이요 뭐요 하다가 노태우의 6·29 선언이 나왔다는 것은 6·10 항쟁에 겁울 먹은 전두환 정권이 항복했다는 것을 뜻 하는 것입니다. 현지 당 지도부는 앞으로 있게될 대통령 선거에 대비해서 우리의 민주투사들을 상도동과 동교동 쪽으로 접근시키고 김영삼과 김대중으로부터 인정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장차 그들의 후광을 업고 제도권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 다.” (1987년 7월 3호청사 부장회의)

○ … “서울 올림픽이 성공하게 된다면 그만큼 내외적 환경이 불리하게 됩니다···올림픽을 파탄시킬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 할 경우에는 최소한 흠집이라도 많이 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남조선 도처에서 폭발사고를 일으킨다든가 해서 각 국 선수단과 관광객들이 남조선에 안심하고 들어갈 수 없도록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1987년 7월 3호청사 부장회의)

전쟁준비

○ … 핵미사일을 개발함에 있어서 이론에서는 뒤지지 않으나, 장비가 문제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자금이다… 많은 투자를 하지 않고 외화를 버는 최상의 방법은 아편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못할 것은 없지 않은가. 아편은 마약이기 때문에, 먼 강원도 고산지대에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특별구역을 만들어 통제를 철저히 하도록 해야 한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

○ … 남조선으로부터 미국 놈들을 내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언젠가 미국과 또 한 번 필히 싸워야 한다는 각오로 전쟁준비를 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서둘러야만 할 것은 미국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갖는 것이다. 동지들은 하루 빨리,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자력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발해야만 한다. (1968년 11월, 과학원함흥분원 개발팀과의 담화)

○ … 실제로 전쟁이 일어난다고 가정할 때 방어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 미사일을 갖지 못한다고 (미국을) 때려눕힐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중남미에 가 있는 특공대를 투입하기도 하고, 동포조직을 동원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핵폭탄이 없다면 화학무기를 살포해도 좋다. 미국 본토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미군기지를 폭파해도 된다. (1974년 8월, 당군사위원회)

국군와해공작

○ … 남조선 괴뢰군(국군)은 작전 지휘권도 없는 미제의 고용병으로써 식민지 대리정권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이며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반혁명 무장력이다. 과거 1948년에 있었던 여순 군인폭동과 표무원, 강태무 대대의 의거입국 사건은 좋은 경험으로 된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혁명조직들은 혁명역량을 꾸리는 사업과 함께 괴뢰군을 와해 전취 공작에 항상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한다. (1968년 1월 대남공작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 … 군 침투공작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중·하층 장교들이다. 지금 중·하층장교들 중에는 직위 불만자들이 많은데 그 대부분이 비 육사출신이며 또 육사출신들 가운데서도 타 지역 출신 장교들은 경상도 출신들에게 밀리어 소외감을 갖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출신지역과 육사·비 육사간의 갈등을 이용하여 그들을 자극하고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면 얼마든지 혁명의 편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1968년 1월 대남공작담당요원들과의 담화)

○ … 과거에는 학생들에게 군 입대를 기피하도록 선동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남조선의 사회환경이 달라졌고, 학생들의 의식도 달라졌다. 남조선 군대가 식민지 고용병이고, 또 군대의 위상이 떨어졌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오히려 자원입대하도록 적극 교양해야 한다. 대 국군 공작을 보다 진공적으로 벌여나가기 위해서는 학생운동에서 검열되고 단련된 핵심들을 집단 입대시켜 그들로 하여금 동료 사병들을 의식화하고 포섭하도록 하여 군대 내에 조직을 부단히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1988년 8월 대남공작원과의 담화)

전국혁명

○ … 우리 북반부에서는 민간단체는 없지만, 남조선에는 그 이름도 잡다한 민간단체가 수없이 많다. 그 가운데에는 우리 측이 만든 민간단체도 적지 않다. 남조선 당국자들을 반민족적 분열주의세력으로서 몰아붙이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단체를 만들어 남조선인민 가운데서 통일의 열망을 쌓아올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1972년 8월, 제1회 남북적십자회담대표들과의 회담)

○ … 우리는 조국을 통일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두 번 놓쳤다. 그 한 번은 6·25이고 또 한 번은 4·19이다. 6·25 때에는 박헌영의 허위보고 때문에 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4·19 당시에는 연락부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서 놓쳐버렸다. 이제 다시 한번 4·19와 같은 좋은 기회가 다가오면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 (1974년 4월 대남공작담당요원들과의 담화)

○ … 남조선 인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는 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머리 속에 박혀있는 공미 사상을 뿌리 뽑는 것이다. 미국 놈들을 무서워하는 공포증을 빼버리지 않고서는 계급의식과 민족의식을 높일 수 없다.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면 이번에는 미국 본토가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소문을 은근히 퍼뜨려야 한다. 그래야 남조선 인민들이 더 용기를 가지고 반미투쟁에 떨쳐나설 수 있다. (1976년 8월 대남공작원들과 의 담화)

남북대화

○ …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된다고 하니까 일부에서는 통일이 무르익어 가는 줄 알고 있는데, 이산가족 찾기라는 그 자체로서는 흥미가 없다. 그러니까 적십자회담을 통해서 합법적 외피를 쓰고 남조선으로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이 트일 것 같으면 회담을 좀 끌어보고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것 같으면 남조선 측에서 당장 받아들일 수 없는 <반공법 철폐>, <정치활동의 자유>와 같은 높은 요구조건을 내걸고 회담을 미련 없이 걷어 치워야 한다. 그리고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 이 회담장을 우리의 선전무대로 이용해야 한다. (1972년 8월 제1차 남북 적십자회담(평양)이 개최될 당시 김일성이 회담 대표들과의 담화에서)

노동계·교회 침투

○ … 남조선에 내려가서 제일 뚫고 들어가기 좋은 곳이 어딘가 하면 교회이다. 교회에는 이력서, 보증서 없이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고, 그저 성경책이나 하나 옆에 끼고 부지런히 다니면서 헌금이나 많이 내면 누구든지 신임받을 수 있다. 일단 이렇게 신임을 얻어 가지고 그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미끼를 잘 던지면 신부, 목사들도 얼마든지 휘어잡을 수 있다. 문제는 우리 공작원들이 남조선의 현지 실정을 어떻게 잘 이용하느냐 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다. (1974년 4월 대남공작담당요원들과의 담화)

○ … 전태일의 분신자살! 이것이 얼마나 좋은 선동 자료인가! 물론 청계천 피복노동조합이라는 것이 보잘 것 없는 조직이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전태일을 영웅으로 만들고 추모사업회도 가지면서 대대적으로 선전해야 한다. 그래야 남조선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더 단결할 수 있고, 그의 죽음을 헛되이 여기지 않고 그 정신을 본받게 된다. (1976년 4월 대남공작원들과의 담화)

○ … 한국노총은 관제어용단체이며 각 산업현장에 이미 조직되어 있는 노동조합은 바로 그 한국노총의 산하 조직이다. 이러한 어용노조를 그대로 두고서는 노동운동을 발전시킬 수 없다. 때문에 지하당 조직들은 각 단위 사업장 노조들을 와해시켜 그것을 점차 지하당의 영향 하에 흡수하도록 해야 한다. 어용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조합원들을 포섭 쟁취한 다음 노조 집행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노조 간부들과 조합원들 사이에 이간을 조성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여 다음 번 선거에서 새 집행부를 신망 있는 우리 사람으로 교체시키도록 해야 한다. (1976년 4월 대남공작원들과의 담화)

문예활동

남조선에서 들여온 영화, 비디오를 보니까 거기에도 재능 있는 작가 예술인들이 많다. 그런데 그 중에서 잘 나간다는 몇몇 작가들을 제외하고 절대 다수가 실업자나 다름없는 형편이다. 이들에게 혁명적 세계관을 심어 주기만 한다면 훌륭한 걸작들이 얼마든지 쏟아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지하당 조직들은 남조선의 작가 예술인들을 더 많이 포섭하여 혁명가로 만들고 그들이 외롭지 않게 똘똘 뭉쳐서 혁명적 필봉을 들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묶어 세워야 하다. (1976년 8월 대남공작원들과의 담화)

교포공작

○ … 남조선이 고향인 재일동포가 우리 공화국으로 귀국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대단한 성과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이 사업을 끝나게 해서는 안 된다. 귀국선(1971년부터 만경봉호)이 니가타 항과 공화국을 왕복하고 있다. 귀국선은 귀국동포를 운반할 뿐 아니라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 추진에 이용해야만 한다. (배가) 니가타에 정박하고 있는 동안에 동지들은 혁명에 유리한 사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남조선 혁명에 필요한 정보재료를 입수하고, 필요하다면 일본인을 대상으로 포섭공작이나 납치공작도 할 수 있지 않은가 (1969년 11월 3일, 3호 청사 확대간부회의)

○ … 귀국 동포들(북한으로의 귀환 운동에 의하여 일본에서 만경봉호로 북으로 귀국한 사람들)에게는, 일본뿐만 아니라 남조선(남한)에 연고관계를 가진 사람이 많다. 그들의 가족, 친척을 이용한다면 재일동포의 신분을 획득해서 남조선에 고향방문이라는 형태로 언제라도 합법적으로 남조선에 침투할 수 있다. (1976년 8월, 대남담당요원과의 담화)

○ … 우리 공작원들이 남조선에 내려갈 때 가지고 가는 카메라, 시계, 라이터 같은 장비품을 어디에서 구입해 들여오나? 그런 것도 머리를 잘 써서 장비담당 부서와 긴밀하게 연계를 가지고 풀어나가면 얼마나 좋은가? 해외 교포들 가운데에는 장사하는 사람도 많다는데 우리가 그들의 물건을 많이 사주면 필요한 장비도 쉽게 구할 수 있고 그 교포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기도 쉬울 것이다. (1976년 2월 대남공작담당요원들과의 담화)

○ … 해외교포들 속에서 조직을 결성할 때에도 북과 연계되지 않고 교포들 자체로 묶은 조직인 것처럼 명칭을 잘 위장해야 한다. 그래야 남조선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고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활동력 있고 천부적인 기질을 가진 대상들을 잘 훈련시켜 직업적 혁명가로 키워야 한다.(1976년 2월 대남공작담당요원들과의 담화)

해외 공작

○ … 반미 민족해방 운동을 벌리고 있는 무장단체와 혁명조직들은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도 많다. 팔레스타인 민족해방기구를 비롯한 수많은 혁명조직들이 우리 나라 혁명 경험을 배우기 위하여 평양으로 찾아오고 있으며 교육을 의탁하고 있다. 아프리카 중동지역에도 필요한 곳곳에 훈련 교관들을 파견해야 한다. (1969년 11월, 해외공작담당요원들과의 담화)

○ … 국제혁명 역량을 강화하자면 합법적인 외교 활동 못지않게 해외공작을 잘 해야 한다. 지금 제3세
계 나라들 가운데에는 반미성향을 가진 나라들도 있고,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나라들도 있다. 또 친미 정권을 반대하는 혁명을 준비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이런 나라들에 파고 들어가 무기 자금도 지원해 주면서 해외공작 거점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1969년 11월, 해외공작 담당요원들 과의 담화)

범민련 운동

○ … 지금 남조선에서는 수많은 진보적 민주인사들이 각종 재야단체에 결속되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하루빨리 북과 남, 해외의 통일애국역량을 총망라하는 전 민족 통일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전 민족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물론 우리가 주동적으로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남조선 혁명조직이 먼저 재야단체의 이름으로 발기하도록 하고 거기에 북과 해외운동 단체들이 호응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1990년 5월 3호 청사 확대간부회의)

○ …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선봉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그 실체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청년학생들이다. 이번 8·15에는 2차 범민족대회와 함께 북과 남 해외 청년학생들의 통일대축전 행사도 거행된다고 하는데 청년학생들의 3자 연합조직도 범민련 산하의 범민족 청년학생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1991년 8월 3호 청사 부장회의)

○ … 적들의 탄압으로부터 혁명역량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에 대한 이적 규정을 철회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남조선 당국자들을 사대 매국적 반통일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파쇼 폭압기구 해체 투쟁과 함께 범민련을 통일 애국단체로 부각시키는 합법화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나가야 한다. (1993년 8월 3호 청사 확대회의)

○ … 범민련 해외본부도 외형상 위력 있는 방대한 조직인 것처럼 위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눈부시게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널리 선전해야 한다. 그래야 범민련의 위상을 높일 수 있고, 또 앞으로 만약에 남북 정당 사회단체연석회의 같은 것이 열리게 될 경우에는 그들이 각 단체의 대표 자격을 가지고 참석할 수 있다. (1993년 8월 3호 청사 확대회의)

[주]‘김일성의 비밀교시’는 한광덕 전 국방대학원장이 2003년 10월 ‘동북아전략연구소’에 게재한 자료임.

 

전문(全文)은 베트남 참전전우들의 홈페이지 내 ‘한광덕 장군 칼럼’ 메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 주요부분을 발췌·요약했다.

정리/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
[ 2010-01-21, 1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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