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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두, 한국만 인정하지 않는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강자

파이낸셜뉴스 2025.12.19 17:00 댓글0

박용후 | 관점디자이너
박용후 | 관점디자이너



[파이낸셜뉴스] 지금 전 세계 산업의 방향을 한 단어로 요약하라면 단연 ‘AI’다. 그리고 AI의 확산은 필연적으로 막대한 연산 능력과 이를 뒷받침할 데이터센터, 그리고 그 핵심 부품인 반도체 수요로 이어진다. AI 데이터센터와 이를 구성하는 반도체 산업은 이미 가장 크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영역이 되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특히 HBM 분야에서 여전히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 역시 AI와 반도체를 국가 핵심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시스템반도체 기업을 육성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그 결과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등 유망한 팹리스 스타트업들이 등장했고, 이들 기업이 미래의 주역이 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다만 냉정하게 말해, 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매출과 레퍼런스를 확보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메모리를 제외한 시스템반도체 영역에서 ‘존재감이 약한 나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런데 이 통념을 이미 깨고 있는 기업이 있다. 대중에게는 ‘파두사태’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더 익숙한 파두다. 아이러니하게도 파두는 현재 한국에서 드물게, 아니 사실상 유일하게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생태계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시스템반도체 팹리스 기업이다.

파두는 2022년부터 메타(페이스북), 스페이스X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빅테크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해 양산 공급을 시작했다. 이후 구글과 메타를 포함한 다수의 글로벌 AI 데이터센터에서 파두의 반도체가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기술 데모나 파일럿 테스트가 아니라, 가장 보수적이고 까다로운 글로벌 고객들이 검증을 마친 ‘양산 레퍼런스’다. 시스템반도체 업계에서 이 한 줄의 레퍼런스가 갖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실적 역시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파두의 매출은 2023년 이후 매년 두 배 이상 성장하고 있으며, 회사 측은 2026년 매출 2,000억 원 이상, 흑자 전환을 공식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비밀유지협약 때문에 고객사와 구체적 수치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다수의 글로벌 선도 빅테크 AI 데이터센터에 양산 공급 중이며, 2025년 이후 초대형 신규 고객 유입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 정도면 한국이 그토록 갈망해온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팹리스 성공 사례’라 불러도 과장이 아니다. 그런데 이상한 장면이 연출됐다. 2025년 12월 10일, 대통령과 관계 부총리, 장관, 업계 관계자들이 총출동한 ‘AI 시대,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파두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시스템반도체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은 공유되었지만,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과 시장성을 증명한 기업은 그 자리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이른바 ‘파두사태’ 때문이다. 2023년 상장 직후 발표된 3분기 실적이 3억 원에 그치면서, 시장의 기대와 큰 괴리가 발생했고, 파두는 ‘매출을 부풀려 상장한 기업’이라는 낙인을 찍혔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맥락 없이 떼어놓고 보면 판단을 그르치기 쉽다.

2023년은 코로나 특수 종료와 함께 글로벌 메모리 시장이 역사상 최악의 침체를 겪은 해였다. 시장 규모가 60% 이상 급감했고,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는 사상 최악의 적자를, SK하이닉스의 NAND·SSD 사업은 -100%가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파두 역시 이 여파로 차세대 Gen4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취소되며 실적 공백을 겪었다. 회사는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며 사과했고, 동시에 “기술력을 인정한 고객들이 차세대 Gen5에서 다시 파두를 선택했고, 그 결과 Gen5에서는 당초 목표를 웃도는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파두의 실적은 실제로 빠르게 회복·성장했고, 주가도 공모가의 약 80% 수준까지 회복됐다. 현재 파두는 기술특례상장 기업으로서 금감원 패스트트랙을 거쳐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사법적 판단은 당연히 법과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

그러나 기술특례상장의 본래 취지를 되짚어볼 필요도 있다. 이 제도는 당장의 실적보다 기술력과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고 기회를 주는 장치다. 상장 후 2년이 지난 지금, 파두는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실질적인 매출과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오히려 기술특례가 기대했던 ‘모범적 성장 경로’에 가장 근접한 사례라고 볼 여지도 있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새 스타트업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긴 터널을 지나 이제 막 성과를 내기 시작한 기업이 좌초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일이다. AI 데이터센터 반도체는 한국이 반드시 확보해야 할 미래 먹거리다. 법적 판단과 산업 전략을 혼동해, 소의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냉정한 사실 인식과, 산업을 보는 지혜다.



박용후 | 관점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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