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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책과 지성]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 인간이야

매일경제 2021.01.23 00:07 댓글0






1890년 에밀 졸라는 프랑스 최대 은행이었던 '위니옹 제네랄'의 파산을 목격한다.

가톨릭계 은행과 유대계 은행 간 과당경쟁에서 비롯된 이 사건은 프랑스 주식시장 전체를 역대 최악의 붕괴로 몰아갔고, 수많은 투자자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다.

졸라는 돈에 관한 소설을 쓰리라고 마음먹는다. 졸라는 그 무렵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소설의 의도를 드러낸다.

"돈을 공격하지도 옹호하지도 말 것. 돈의 세기라고 불리는 우리의 세기와 명예의 세기라고 불리는 옛 세기를 대립시키지 말 것. 많은 사람에게 돈이 품격 있는 삶을 보장함을 보여줄 것. 돈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한다. 돈은 위생이요, 청결이요, 건강이요, 심지어 지성이다."







소설을 쓰기 전에 졸라는 왜 이 말을 했을까. 졸라는 위니옹 제네랄 사태를 보며 문제의 원인은 '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음을 절감했던 것이다.

극단적 사실주의 분파인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답게 소설은 아주 생생하게 주식시장의 붕괴를 묘사한다.

사카르라는 등장인물이 파산의 주모자다. 그는 실세 장관인 형의 권력을 등에 업고 '만국은행'을 설립해 주식을 발행한다. 이후 다른 은행과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불법까지 저질러 주가를 끌어올린다. 하지만 결국 몸집만 커진 만국은행은 파산하고 일파만파 시장 전체가 혼란에 빠진다. 무일푼이 된 개미투자자들은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거리를 떠돌고, 파리 도처에서 자살의 총성이 울리기 시작한다.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전율에서 모두가 대붕괴의 시작을 느꼈다. 만국은행의 주가가 내려가고 있었다. 비명이 터져 나와 삽시간에 퍼졌고, 군중의 아우성은 경악과 공포로 물들었다."

이 과정을 그리면서 졸라는 두 부류의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돈의 노예가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투기 광풍에 빠져 가족도 양심도 내팽개친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나폴레옹 3세의 연인 드 죄몽은 투자 정보를 얻기 위해 사카르와 동침까지 한다.

드물지만 돈을 진보의 동력으로 사용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도르비에 대공부인은 사별한 남편이 주식에 투자해 번 돈 3억프랑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사업에 쏟아붓는다. 아믈랭 남매는 동방 개척 사업에 돈을 투자한다. 소설에서 동방 개척은 인류 문명과 평화를 발전하는 상징적 사업으로 묘사된다. 이들은 같은 돈으로 사랑과 꿈을 실현했던 것이다.

드레퓌스 사건 때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의 공개서한으로 행동하는 지성의 상징이 된 졸라는 소설 '돈'으로 물신주의에 물들어가던 19세기 말 프랑스에 경종을 울린다. 주가조작에 뛰어든 악당 사카르의 말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여전히 시의성 있게 다가온다.

"알아둬요. 투기와 작전은 우리 사업과 같은 거대 사업에서는 핵심 톱니바퀴요, 심장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작은 도랑들을 통해 도처에서 돈을 불러오고 피를 축적하죠."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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