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Rendezvous'
김선우의 작품에는 늘 새가 자리하고 있다. 어딘가 친근한 이 존재는 마다가스카르 동쪽의 모리셔스섬에서 천적 없이 안락한 삶을 보냈으나 현재는 멸종한 '도도새'다. 작품에 등장하는 도도새들은 새의 형상이지만 행동이나 드러난 감정 표현을 보면 마치 사람과 같다. 작가의 손에서 다시 생명을 얻은 도도새가 보여주는 모습은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김선우의 이러한 작업은 10여년 전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작품 활동을 위한 여행비를 지원하는 일현미술관의 '일현 트래블 그랜트' 프로젝트 신청이 계기가 됐다. 당시 작가가 모리셔스섬을 다녀오며 본격적으로 시작된 도도새 이야기는 현대인 내면의 고립과 회복, 꿈과 가능성 그리고 타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담아낸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런 메시지를 작가는 서정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화면구성을 취하며 선명하고 밝은 색이 특징인 과슈로 채색함으로써 많은 이들의 시선과 공감을 유도한다.
2023년 제작된 'Rendezvous(사진)'에도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난다. 영어로 '만남' 또는 '만날 약속'을 뜻하는 제목의 이 작품에서 홀로 남겨진 채 고립되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던 새에게 다른 새가 풍선다발의 힘을 빌려 다가오고 있다. 바다 한 가운데 높다랗게 솟아 올린 지형과 이를 감싼 구름들은 어려운 현실을, 먼 곳에서부터 찾아왔을 새와 다채로운 색감의 풍선들은 희망의 메시지를 은유한다.
작가는 화면의 가장자리를 수풀로 장식한 액자구성을 취해 시각적인 들여다보기에서 더 나아가 '감정 들여다보기'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이는 본능적인 자기방어로써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외면한 채 덮어두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를 타인의 이야기를 엿보는 형식으로 우회하기 위한 전략이다. 김선우의 작품은 이렇게 감상자가 자신의 감정과 자연스럽게 마주하고 풀어갈 수 있도록 다독여준다.
서울옥션 아카이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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