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불모지서 비철제련업 시작 30여년 만에 1위 기업 키워내  |
|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고려아연 제공 |
[파이낸셜뉴스] "나는 혁신이나 개혁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늦은 것이다. 매일매일 조금씩 발전해 나가면 한꺼번에 큰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 개혁보다는 변화가 중요하다."
지난 6일 숙환으로 별세한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은 고려아연을 세계 1위 비철금속 기업으로 키워낸 '비철금속업계 거목'으로 평가받는다. 고려아연은 8일 최 명예회장의 경영 원동력에 대해 "혁신이나 개혁 같은 큰 변화가 아닌 하루하루의 꾸준함과 성실함에 기반한다"며 고인을 기렸다.
최 명예회장은 지난 1941년 황해도에서 고(故) 최기호 고려아연 초대회장의 6남 3녀 중 차남(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0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학사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그는 1974년 고려아연을 창립한 이래 부친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아 고려아연을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글로벌 1위 비철금속 기업으로 이끌었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에서 비철제련업을 최초로 시작한 뒤 불과 30여년 만에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 세계 제련소들을 추월하며 세계 제일의 종합 비철금속회사로 성장시켰다.
그가 강조한 꾸준함과 성실함의 철학은 고려아연 설립 초기부터 발휘됐다.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에 따라 1974년 제련업에 진출할 당시 최 회장은 국내외 금융기관을 상대로 설득을 이어가며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자금을 유치, 당초 업계에서 7000억 달러(약 700억원) 규모로 추산한 사업자금을 4500억 달러로 줄여 공사를 완성했다.
이후에도 꾸준한 기술개발과 설비투자를 통해 회사를 성장시켰다.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사장과 부회장 재임 시에는 고려아연 기술연구소 설립과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생산 시설 확장에 힘을 쏟았다. 1990년엔 기업공개를 추진하여 투명경영 실현과 국민적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했고 1983년
영풍정밀, 1984년 서린상사, 1987년 코리아니켈 등 계열사를 설립하여 그룹의 기반을 확대하고 사업간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
그의 빈소에는 각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반기문 전 국제연합(UN) 사무총장과 장형진 영풍 고문, 황덕남 고려아연 이사회 의장, 정인섭
한화오션 사장, 오치훈
대한제강 회장, 김용민 후성그룹 부회장,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 등이 빈소를 찾았다.
최 명예회장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20호실)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오는 10일 오전 8시에 열릴 예정이다.
one1@fnnews.com 정원일 이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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