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최신뉴스

가상자산 발전 망치는 ‘꾼’들 [가상자산 열풍 투기인가 혁신인가]

파이낸셜뉴스 2021.05.10 19:39 댓글0

<2> 가상자산 시장 불법행위 백태
코인 뒷돈 주며 상장사 임원과 시세조종
비트코인·달러 시세 놓고 ‘업다운 베팅’
작년 337건·537명 가상자산 범죄 검거
정부 양성화 미루는 사이 피해자만 늘어


#1. "이사님, 지갑주소 주세요. 제가 좀 보내드릴게요."(가상자산 발행회사 대표 B씨) "기대할게요!!"(가상자산 거래소 임원 A씨) 2018년 가상자산 거래소의 상장 담당 임원 A씨와 가상자산 프로젝트 대표 B씨 사이의 메신저 대화다. B씨는 상장하는 가상자산 일부를 주겠다며 A씨에게 자신의 가상자산 상장일정을 당겨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실무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장을 서둘렀다. 상장이 마무리된 후 B씨는 A씨의 전자지갑에 약 7200만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입금했다. 사기 전력이 있던 B씨는 상장 이후 각종 홍보방식을 동원해 가상자산 시세를 조종했고, A씨는 이마저도 묵인했다. 배임 수·증재 혐의로 기소된 두 사람은 최근 각각 징역 8월과 10월을 선고받았다.

#2. 지난해 8월 경찰은 인천 서구의 인터넷 도박사이트 운영 사무실을 단속했다. 사이트 회원들은 미국 달러 대비 비트코인 시세를 놓고 2분에 한번씩 시세 상승과 하락, 둘 중에 하나를 고르는 도박을 하고 있었다. 베팅 금액은 1만~500만원이었다. 맞히면 1.9배를 돌려받지만, 틀렸을 경우에는 환불금이 없다. 운영진들은 이 사이트가 합법적인 '비트코인 마진거래' 사이트라고 주장했다. 마진거래는 증거금을 담보로 거래소의 돈을 빌려 투자하는 것으로, 빌리는 금액이 커지면 투자금과 수익·손해의 비율(레버리지)도 커진다. 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도박공간개설혐의를 유죄로 인정, 주범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해 가상자산 범죄 3.3배 급증

가상자산 시장에 '꾼'들이 넘쳐나고 있다. 정부가 "가상자산은 화폐도 아니고 자산도 아니다"라며 가상자산 범죄에 대한 연구와 단속제도 마련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한탕'을 노리는 꾼들이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10일 경찰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지난해 가상자산 범죄 검거건수는 337건(537명)이다. 2019년 103건(289명)의 약 3.3배에 달한다. 2018년엔 62건 139명이었다.

경제범죄는 유사수신 다단계 사기 범죄가 주류를 이룬다. 경찰이 최근 가상자산 거래소 C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경찰은 이 거래소가 "3개월 내 3배 수익 보장" 등을 내걸고 회원을 모집해 4만여명의 회원으로부터 1조7000억원을 입금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가상자산을 노린 피싱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경찰청은 올 들어 3개월간 32건의 피싱사이트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난 한 해 동안 41건이 적발된 것에 비해 피싱이 급증한 것이다.

최근에는 피싱 피해자의 가상자산 거래소 계정에 침입해 기존 가상자산을 임의 매도한 뒤 이른바 '잡코인'을 턱없이 고가에 매수한 사례도 경찰에 적발됐다. 말 그대로 피싱과 해킹, 시세조작 범죄가 동시에 일어난 사례다.

■집중단속 한다지만…법 그물망 허술

정부는 6월까지 가상자산 관련 불법행위를 집중 단속할 계획이지만, 법 그물망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비트코인 선물에 1000배 레버리지로 투자하는 상품이 논란이 됐다. 투자한 방향과 0.1%만 반대로 움직여도 증거금 전액을 날릴 수 있는 초고위험 상품이 규제 없이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것이다. 파생상품은 자본시장법상 금융위 인가 대상이지만, 정부는 가상자산을 상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가상자산 레버리지 상품은 정부 규제 밖이다.

국내외 가상자산 가격차이(김치 프리미엄)를 이용한 재정거래(아비트리지) 역시 회색지대다. 재정거래를 위해 은행을 거치지 않고 외국돈을 환전하는 행위는 무등록 외국환 업무, 이른바 '환치기'로 불법이다. 하지만 온라인에는 일정 금액 미만을 환전·송금할 경우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글이 퍼져 있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재정거래의 경우 송금 규모에 따라 외국환 거래법 적용대상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다"며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이상 방치 안돼…제도화 시급"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은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 모든 거래내역이 기록되기 때문에 자금흐름을 파악할 수 있어 전 세계 수사기관에서도 가상자산의 순기능을 주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범죄자의 단일범죄 파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상자산 거래기록을 따라 전체 수사장부를 만들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가상자산의 원리나 범죄피해 예방을 위한 제도를 방치한 채 투자자들을 투기꾼으로 매도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가 지난 2019년 가상자산 제도화와 블록체인 육성정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 지 1년6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금융위가 기존 입장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가상자산 범죄 예방을 위한 제도 정비의 시간을 놓쳤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금융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기존 금융산업에 익숙해져 있어 가상자산 시장과 산업의 원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며 "지금이라도 가상자산 범죄의 원리를 파악하고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을 위해 주무부처 재지정 등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bawu@fnnews.com 정영일 김소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