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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시리즈가 장황한 광고영화로 전락했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파이낸셜뉴스 2021.02.26 21:33 댓글0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32]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파이낸셜뉴스] <트랜스포머>는 기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물론이고 <다간>이나 <K-cops> 류의 만화영화 팬이라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시리즈다.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해 격투를 벌이는 등 어마어마한 액션씬이 러닝타임 내내 이어졌다. 샤이아 라보프와 메간 폭스는 물론이고 옵티머스 프라임과 범블비, 메가트론까지 수많은 로봇캐릭터들이 엄청난 스타덤에 올랐다.

시리즈 전체를 총괄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능력, 신선하고 유효한 소재, 오랜기간 쌓여온 할리우드의 역량이 결합돼 만들어낸 대단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시리즈의 미래는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제까지도 그리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연속된 상업적 성공의 이면에는 '자기복제된 이야기로 말초적 재미를 추구할 뿐'이라는 비아냥이 끊임없이 따라붙었던 것이다.

▲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국내 메인 포스터 ⓒ Paramount Pictures

안주 대신 혁신을 기대했었다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가 3편까지 출연한 배우를 과감히 갈아치운 것이 지난 성취에 안주하는 태도를 경계하기 위한 선택이 아닐까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뚜껑을 연 이야기는 여전히 과거의 문제를 답습하고 있었다. 그것도 더욱 큰 규모로. 여러 장르를 아우르고 온갖 캐릭터를 삽입하며 그들끼리의 균형감마저 잃어버린 거대한 광고물, 감독인 마이클 베이조차 '영화를 제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주지하다시피 3편까지의 세계관은 지구와 인간을 수호하려는 오토봇과 지구를 점령하여 자신들의 행성으로 삼으려는 디셉티콘의 대립구도였다.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는 오토봇의 리더 옵티머스 프라임이 디셉티콘의 리더 메가트론을 제압한 시카고 사건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시작한다.

디셉티콘의 절멸 이후 오토봇은 인간과 함께 지구방위의 역할을 맡아왔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하나씩 인간들에게 제거당한다. 인간의 사냥으로부터 벗어난 몇몇 오토봇이 도망쳐 옵티머스 프라임의 지시를 기다리지만 그의 생사는 좀처럼 전해지지 않는다.

▲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차를 수리 중인 케이드 예거(마크 월버그) ⓒ Paramount Pictures

3부작을 한 영화에 우겨넣다
주인공은 외딴 집에서 잡동사니 발명품을 만들며 살아가던 기술자 케이드 예거(마크 월버그 분)다. 고물을 수리하는 것이 업인 그는 우연히 특별한 트럭 한 대를 만난다.

그 낡은 트럭은 인간들의 추적을 피해 도망친 옵티머스 프라임이다. 오토봇의 첨단 기술을 익히고자 옵티머스 프라임의 회복을 돕던 케이드는 갑자기 들이닥친 요원들의 추적을 뚫고 그와 함께 도망친다. 그로부터 거대 로봇형 외계인과 인간들이 얽힌 엄청난 음모가 시작된다.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케이드와 그 일행이 옵티머스 프라임과 함께 도망치는 이야기다. 다음은 오토봇들과 락다운이라 불리는 새로운 로봇집단의 대결이다. 마지막은 부활한 디셉티콘과 오토봇, 떠나가다 돌아온 락다운, 심지어는 고대의 공룡로봇까지 개입된 거대한 대결전이다.

세 부분 모두 각자의 기승전결을 지니고 있고, 여러 캐릭터들과 많은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있다. 그 규모가 보는 이를 압도하기 충분하지만 동시에 너무 난잡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토록 큰 규모의 영화를 찍을 때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그러나 영화는 삽입된 모든 요소에 집중하고자 했고 이는 영화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악수가 되었다. 주인공인 케이드 예거의 일행들과 그를 ?는 인간 집단, 오토봇과 디셉티콘, 락다운에 이르는 무려 다섯개의 집단이 등장하고, 그들 모두에게 일정 분량을 할애해 묘사하는 영화의 선택은 장대한 이야기를 장황한 이야기로 전락시킨다. 그리고 늘 그렇듯 장황한 이야기란 기억되지 못하게 마련이다.

이쯤되면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는 한 편의 길고 긴 광고영화라 할 만하다. 영화가 끝난 뒤 기억에 남는 거라곤 수많은 간접광고, 그리고 아시아마케팅의 흔적 뿐이었으니 말이다. 절제를 모르고 수위를 넘는 광고들의 삽입은 사고의 틈새를 철저히 파괴하는 과도한 액션씬과 어우러져 바야흐로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이 되고 말았다.

▲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그림록 위에 올라 탄 옵티머스 프라임 ⓒ Paramount Pictures

간접 광고와 아시아 마케팅의 향연
쉐보레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자동차들과 아르마니의 입간판 앞에서 벌어지는 격투씬, 구찌 로고가 선명한 선글라스 정도는 애교다. 빅토리아 시크릿이라 적힌 가판대 앞에서 "나는 싸구려 짝퉁이 정말 싫어"라고 말하는 로봇 캐릭터, 영화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도로에 추락하는 우주선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음료광고, 스탠리 투치가 중국의 어느 아파트 위에서 팩우유를 쪽쪽 빨아먹는 장면까지 줄지어 나오는 온갖 간접광고는 기존 영화들의 수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야기의 전개와는 전혀 상관없이 광고를 삽입하기 위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영화를 위한 광고가 아니라 광고를 위한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다.

광고는 상품에 대한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시아 마케팅을 의식해 중국 배우들을 기용하는 것은 물론, 급작스레 배경을 홍콩으로 옮겨 이야기를 풀어간 것 역시 일종의 광고처럼 느껴진다. 물론 중국 배우들을 적극 기용하는 건 근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일관된 흐름이지만 그렇더라도 정도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다.

본래 있는 캐릭터를 중국인이 맡는 것과 중국인을 기용하기 위해 필요없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영화는 완전한 후자였고 영화 속에서 리빙빙이 맡은 캐릭터는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홍콩을 배경으로 한 액션장면 역시도 대부분 쓸데없었다. 이러한 장면연출을 강행한 선택이 영화를 더 낫게 만드는 데 어떻게 기여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이쿠를 ?는 사무라이 오토봇과 롱코트 자락을 늘어뜰이고 쌍권총을 쏘는 오토봇, 발칸포를 짊어지고 시가를 입에 문 오토봇이야 말해 무엇하랴.

이쯤되면 영화는 광고가 목적인 듯 느껴진다. 누군가는 영화가 상업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상업성에 충실한 영화를 만드는 것과 3시간 짜리 광고영화를 찍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최소한 제 돈을 내고 3시간 짜리 간접광고물을 봐야하는 관객들의 기분을 제작자는 반드시 고려했어야 하는 것이다.

시리즈에 대한, 로봇영화에 대한 의리로 이 영화를 선택했던 관객 중 상당수가 이 시리즈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영화 그 자체보다 광고에 집중했던 제작자의 선택이 관객들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난 뒤 승자로 남는 건 제작자나 관객들, 옵티머스 프라임이나 케이드 예거가 아니라 광고주들 뿐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나쁜 영화인 이유다.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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