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의 끝자락… '금리 정상화'로 접어든 日
'제로금리+엔캐리' 균열, 엔저 종말론 고개
'금리 있는 사회' 향한 긴 여정 "점진적 인상 노선 유지"  |
|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제미나이 제공 |
[파이낸셜뉴스] '제로금리 국가' 일본이 마침내 30년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일본은행(BOJ)이 기준금리를 0.75%까지 끌어올리면서 세계 금융시장에서 일본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닌 '보통의 중앙은행'으로 복귀했다.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과 초완화 통화정책의 상징이었던 일본 경제 질서가 큰 변곡점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디플레의 끝자락… '금리 정상화'로 접어든 日
BOJ는 19일 이틀간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 정책금리를 기존 '0.5% 정도'에서 '0.75% 정도'로 0.25%p 인상했다. 기준금리가 0.75%에 도달한 것은 1995년 이후 약 30년 만이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 체제에서 진행된 이번 결정은 단순한 금리 조정이 아니라 일본 경제의 체질 변화와 통화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동시에 보여주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이번 금리 인상은 일본 경제가 장기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판단을 전제로 한다. BOJ는 지난해 3월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한 데 이어, 지난해 7월 기준금리를 0∼0.1%에서 0.25%로, 올해 1월에는 0.5%로 단계적으로 인상해 왔다. 이번 결정은 11개월 만의 추가 인상이다.
그동안 BOJ는 임금 상승과 물가 흐름의 지속성을 확인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다. 실제로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 안팎에서 유지되고 있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임금 인상 기조도 확산되고 있다. 우에다 총재는 "실질금리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시사해 왔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등을 이유로 BOJ는 올해 3월 회의 이후 6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하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그럼에도 BOJ 내부에서는 "경제와 물가가 예상 경로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이번 회의에서 다시 인상 기조로 복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BOJ 내부에서는 정책금리가 0.75%로 올라가도 일본의 통화 환경은 여전히 완화적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며 "이번 결정은 긴축이라기보다 '정상화 과정의 일부'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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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fnDB |
'제로금리+엔캐리' 균열, 엔저 종말론 고개
이번 금리 인상은 일본 경제를 지탱해 온 또 다른 축, '엔캐리 트레이드'의 기반에도 균열을 내고 있다. 엔캐리 트레이드란 저금리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다른 국가의 자산에 투자해 금리 차익을 노리는 전략이다. 일본은 장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하며 글로벌 자금의 차입 통화 역할을 해 왔고, 이는 구조적인 엔저를 고착화시켰다.
일반적으로 미일 금리 차가 축소되면 엔화는 강세를 보이지만, 이번 인상 국면에서도 엔·달러 환율은 155엔대에서 움직이며 뚜렷한 강세를 보이지 않았다. BOJ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 점이 금리 인상 명분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수입 물가 상승을 통해 물가 압력이 재차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닛케이는 "엔화 강세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 BOJ의 추가 인상 판단에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엔저가 고착화된 상태에서는 금리를 올려도 금융시장의 충격이 제한적이라는 계산이다.
시장에서는 '제로금리+엔캐리'라는 일본 특유의 금융 공식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리가 구조적으로 상승 국면에 접어들 경우 장기 엔저 역시 종말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나이절 그린 디비어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 시장은 저렴한 엔화를 자금줄로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면서 "일본의 차입 비용이 상승하는 동시에 타국의 수익률이 낮아지기 시작하면 자본은 급격히 이동(Shift)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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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 지폐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
'금리 있는 사회' 향한 긴 여정 "점진적 인상 노선 유지"
BOJ의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기조가 강화될 때마다 뉴욕 증시와 가상자산 시장이 동요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오랜 기간 저금리 댐에 갇혀 있던 일본 자본이 본격적으로 본국으로 회귀하기 시작하면 글로벌 유동성 지형은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BOJ는 이번 인상을 출발점으로 향후에도 점진적인 금리 인상 노선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BOJ는 경기 과열도, 냉각도 유발하지 않는 '중립 금리' 개념을 중시하고 있으며 현재 이를 1∼2.5% 수준으로 보고 있다는 인식을 강조해 왔다. 기준금리를 0.75%로 올려도 중립 금리 하단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정치적 변수도 이전보다 부담이 줄었다는 평가다. 닛케이는 "BOJ는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과 금리 인상 경로를 사전에 조율해 왔다"며 이번 결정과 2026년 이후 인상 노선에 대해 "뚜렷한 반발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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