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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레이딩

*****安生....최초슈퍼개미 명동 백희엽 할머니 이야기..........코멘트18

1970년대 말. 매일 증권사에 출근하다시피 하는 노인이 있었다. 키는 어림잡아 150㎝ 정도 안팎으로 작고 뚱뚱한 노인이었는데, 노인은 한 손에 영국 타임스지(the Times)를 들고 증권사 객장에 앉아 한참 동안 시세판을 바라보곤 했다. 남루한 옷차림에도 영문 잡지를 술술 읽어내려가며 경제 흐름을 꿰뚫고 있는 그를 사람들은 ‘백 할머니’라고 불렀다......


명동 사채시장의 여성 큰 손으로 유명한 백할머니, 백희엽여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한국전쟁, 1.4 후퇴때 무일푼으로 월남해 자수성가로 큰 부를 이룩한 입지적인 인물입니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페니실린을 수입하고 군복장사를 통해 종자돈을 마련한 후, 1950년대 후반 건국채권이 액면가 20%에 거래될 때 닥치는대로 사두어서 큰 부를 이룩했습니다........


백여사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스승으로도 유명합니다. 박 회장은 대학원생 시절 백 할머니라는 분이 명동 사채 시장의 큰손이라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백 여사를 찾아갔다. 증권거래소는 19797월 여의도로 이전하기 전까지 명동에 있었다. 이 때문에 명동 사채 시장의 큰손이라고 하면 보통 주식 시장의 큰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박 회장은 백 여사에게 대뜸 ‘주식 투자를 좀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다음은 박 회장이 회고록과 과거 인터뷰 등을 통해 했던 말이다. “어찌어찌하다가 백 할머니 뒤를 따라다니게 됐습니다. 할머니 사무실로 출근하고 증권사나 기업체 방문 때 동행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분께서 정석 투자만 하는 거예요. 답답할 정도로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백 여사는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 같은 재무제표를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기업 관련 정보에 대한 해석능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또한 부동산과 같이 확실한 핵심 자산이 있거나, 순이익을 꾸준히 내는 기업을 좋아했습니다. 일찍부터 ‘자산주’나 ‘가치주’에 대한 투자를 즐겼던 셈입니다........


그녀는 1960년대에 이미 수백억원대의 현금을 보유했던 거부였으면서도 매우 검소하게 생활했다고 합니다. 백 여사는 1970년대 초 삼보증권(현 대우증권)의 지분을 10%나 소유한 2대 주주였으면서도 점심은 항상 자장면만 먹을 정도로 검소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녀는 수입 물품을 끔찍이도 싫어했다고 합니다...

살아생전 백씨를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결같이 부지런한 사람, 검소한 사람, 부를 뽐내지 않았던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1995년에 80세에 생을 마감할때까지 증권가에서 실패하지 않고 명성을 유지했습니다.......


(백할머니의 명언)


눈물과 피땀으로 일구지 않은 자산은 사상누각이야........

너무 돈돈 하지 말어........

돈은 노력없이 네게서 머물지를 않아.....

돈벌고 싶으면 돈을 담을 만한 니그릇을 만들어......



데이방 모든분들 내일도 성공투자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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