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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전설된 '연기 9단'… "제자에 패배한 뒤부터 진짜 승부"

파이낸셜뉴스 2025.03.24 19:27 댓글0

영화 '승부' 26일 개봉
배우 이병헌, 조훈현 국수 연기
이창호와 사제 맞대결 실화극
"아들과 집에서 오목 두며 준비"
돌 놓는 법 등 싱크로율 100%
"스승의 감정 변화가 키포인트"
김형주 감독 "바둑의 상징 복기,
휘발되지 않는 영화·인생 닮아"


영화 '승부'에서 한국인 최초로 9단이 된 바둑계 전설 조훈현 국수를 연기한 배우 이병헌
영화 '승부'에서 한국인 최초로 9단이 된 바둑계 전설 조훈현 국수를 연기한 배우 이병헌

배우 이병헌이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승부'에서 한국인 최초 9단에 오른 바둑계 전설, 조훈현 국수로 거듭났다.

이병헌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갖고 "방대한 자료를 보며 조 국수의 모습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촬영 직전 또 한번 본 뒤 그대로 했다"며 "조 국수께서 '어떤 사진을 보고 순간 나인 줄 알았다'고 말해줘 기뻤다"고 웃었다. 조훈현·이창호 9단의 사제 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승부'는 조훈현이 제자에게 패한 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하는 이야기.

지난 19일 조 9단과 함께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현역 최강 기사 신진서 9단도 "두 선배의 싱크로율이 대단했는데, 특히 조 국수의 모습에 놀랐다"고 전했다.

조훈현 국수(왼쪽)와 배우 이병헌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조훈현 국수(왼쪽)와 배우 이병헌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아들과 오목 두며 돌 놓기 연습"

영화는 1988~1989년 '바둑계 올림픽' 제1회 응씨배 세계 프로 바둑 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조훈현의 뒷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 모습이 화려하고 공격적인 바둑을 뒀던 조훈현의 기풍을 느끼게 해 눈길을 끈다.

1962년 세계 최연소인 9세에 프로기사가 된 조훈현은 '1980년대 한국 바둑의 봄'을 이끈 '싸움의 신'이었다. 약 10년간 적수없이 왕좌를 지키다가 1990년 2월 최고위전에서 처음으로 '신산(神算)' 이창호에게 타이틀을 뺏겼다. 한동안 '무관의 제왕'으로 불리며 고전했지만, 하루 네다섯 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고 심기일전해 마침내 부활에 성공했다. 2002년 50세엔 세계대회인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했고, 아직도 이창호와 함께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이병헌은 "조 국수가 딱 하나, 돌을 제대로 놔달라고 당부했다"며 "바로 집에 바둑판을 들이고 아들과 오목을 자주 뒀다"고 준비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마치 본드로 딱 붙인 것처럼 흔들림 없이 돌을 놓고 빽빽한 돌들 사이에서 다른 돌을 건드리지 않고 거둬가는 동작을 반복해 연습했다"고 부연했다.

외양적으로는 8대 2 가르마에 눈썹을 약간 위로 올라가게 새로 그렸다.

이병헌은 "특히 자세를 유심히 봤다. 살짝 삐딱하게 앉고 다리를 흔들고 나중엔 '와기'라고 누운 자세로 두기도 한다"며 "손의 모양과 위치, 눈빛과 행동, 마음가짐, 일례로 질 것 같다고 생각될 때의 느낌, 자신감이 생기는 지점에서 나오는 버릇 등을 탐구했다"고 말했다.

가장 공들인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이창호와의 첫 대결이다. 김형주 감독에 따르면 실제론 제자에게 2번 이기고 3번째에 졌는데, 극적 효과를 위해 첫 대결로 구성했다. 이병헌은 "제자가 결승에 올라온 현황판을 보면서 마냥 웃을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며 "이때부터가 이 영화의 진짜 시작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조 국수에게 그날 어땠냐고 물었더니 단 한번도 질 것이라고 상상을 안 했다더라"며 "그랬기에 졌을 때 그 당혹스러움이란, 감출 수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사제의 얄궂은 운명 흥미로워"

감독부터 배우까지 바둑 문외한이 찍은 이 영화는 바둑을 몰라도 즐기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고수끼리 말하는데 하수는 끼지 말라"며 무안을 줄 정도로 당돌한 꼬마 이창호가 후에 '돌 부처'가 되는 캐릭터 변화가 다소 당혹스럽지만 중간중간 유머가 살아있고, 배우들의 앙상블도 좋다. 특히 마약 투약 혐의로 이 영화의 리스크가 된 유아인은 이병헌과 캐릭터 대비를 이루며 극의 몰입을 돕는다. 김 감독은 "보통 정상을 찍고 떨어지면 대부분 뒤안길로 사라지는데, 다시 정상을 탈환하는 조 국수 이야기에 매료됐다"며 "긴 세월 300번 넘게 대결을 펼친 둘의 얄궂은 운명과 같은 관계성도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바둑의 성지' 운당 여관에서 치러진 둘의 대국 관련 잡지 기사에서 '창호 또 너냐' '네, 선생님' '도리 없지'라는 대화를 봤다"며 "이를 엔딩 장면으로 일찌감치 점찍었다"고 돌이켰다.

애초 이 영화는 지난 2021년 촬영을 마치고 2023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유아인 사태 여파로 일정이 보류됐다. 그동안 '지옥 같은 터널에 갇힌 기분'이었던 김 감독은 "바닥에서 몸부림치는 조훈현을 보면서 용기를 많이 얻었다"며 "흔히 '창고 영화'라고 표현하지만 트렌드를 타지 않는 영화를 만들었기에 후회는 없다. 휘발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영화의 메시지 중 하나를 언급했다.

"그 어떤 스포츠도 승자와 패자가 끝난 경기를 복기하지 않는다며 바둑의 상징과 같은 복기를 보면서 품격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했다. 바둑을 인생에 비유하는데, 인생에 정답은 없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야 하는게 아닌가."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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