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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태근 삼일교회 담임목사 성탄 메시지 |
성탄절이 되면 우리는 으레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러나 성경은 한 아기의 탄생뿐 아니라, 그 순간을 둘러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그중 '시므온'이라는 한 노인의 이야기는 묵직한 울림을 준다.
예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당시 관습에 따라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찾았다. 그때 평생을 성전에서 살아온 노인 시므온이 그들 앞에 나타난다. 성경은 그를 의롭고 경건한 인물로 묘사하지만, 더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다. 그는 '민족에 위로가 찾아올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당시 유대 사회는 오랜 세월 외세의 지배 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시므온은 민족의 회복을 평생토록 기다렸다. 죽기 전에 반드시 그 희망을 보게 되리라는 믿음이 그의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
시므온은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난다. 흥미로운 점은 예수의 부모에게 이 방문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저 일상의 의무를 행했을 뿐이다. 이처럼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은 종종 화려한 연출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평범한 하루 속에서 조용히 찾아온다.
시므온은 아기를 받아 안고 이렇게 고백한다. "내 눈이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는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완성을 내다본다. 이는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방향'을 읽어내는 시선이다.
우리의 현실 또한 막막해 보일 수 있다. 경제는 불확실하고 미래는 흐릿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위대한 변화는 처음부터 거창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눈에 보이는 크기가 아니라, 그 시작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다.
시므온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지금 품에 안긴 희망이 특정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을 비추는 빛이라고 선포한다. 진정한 희망은 나만의 안녕을 넘어 모두의 삶을 향한다. 그때에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그러나 동시에 시므온은 아기의 어머니에게 고통을 예고한다. 이 아이로 인해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깊은 아픔을 겪게 될 것이라는 서늘한 경고다. 이 대목은 성탄의 낭만을 걷어내고
우리로 하여금 삶의 실체를 마주하게 한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길에는 언제나 상처가 따른다. 그런 의미에서 희망이란 고통이 제거된 상태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태도 그 자체다.
2000년 전, 예루살렘 성전에서 한 노인이 아기를 안았다. 그는 평생 기다려온 거대한 희망이 마침내 자신의 품에 들어왔음을 직감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상을 살아낸다. 희망이 아직 작고 불확실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가능성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춥고 불확실한 겨울을 나는 지혜다.
송태근 삼일교회 담임목사 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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