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日영화 기준 국내 최고 흥행작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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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
평소 영화보다는 K팝 마니아였던 여고생 이연수씨는 수능을 마치고 친구의 권유로 영화 ‘괴물’을 보고 그야말로 ‘괴물’ 마니아가 됐다. 지난 12월 이 영화의 두 주연배우 쿠로카와 소야와 히이라기 히나타가 내한했을 때 고향 대구에서 상경을 마다하지 않았고 최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무대인사도 놓치지 않았다.
'괴물’은 소도시 작은 마을에 큰 불이 난 어느 밤을 시작으로 어느 순간 몰라보게 바뀐 초등학생 5학년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행동에 이상함을 감지한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가 학교에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이 영화는 같은 사건을 사오리와 선생 호리(나가야마 에이타) 그리고 학생 미나토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의 시선으로 차례로 보여준다.
그는 ‘괴물’에 대해 “처음 봤을 땐 영화 구조나 내용이 흥미로우면서 메시지가 신선해서 그 충격이 좋았다”며 “다 보고나서는 뭔가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고 돌이켰다. “SNS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해석을 보며 더 흥미가 돋았고 나 역시 여러 방면으로 그 영화를 이해하고 싶어 자연스럽게 한 번 더 보게 됐는데, 두 번째 봤을 때는 너무 행복했다”고 부연했다.
“스토리를 다 아는 상황에서 첫 관람 시 놓친 것들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고, 사람들과 ‘괴물’ 오픈채팅방에서 서로의 감상을 나누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의미 있는 특전도 한몫했다”며 함의가 많은 영화 자체의 힘과 다양한 해석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즐거움 그리고 내한 행사 및 다양한 굿즈가 N차 관람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평소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는 30대 직장인 김양희씨는 히로카즈 감독의 명성을 알던 터라 개봉 후 극장을 찾았고 이후 주연배우 내한 당시 영화를 한 번 더 봤다. 그는 “무대인사에서 본 두 배우는 마치 영화에서 튀어나온 호시카와와 무기노 같았다”며 “쑥스러워하며 인사하는 쿠로카와 배우는 내향적인 미나토와 닮았고, 맑은 목소리에 팬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춰주는 히이라기 배우는 아픔에도 밝게 웃던 요리와 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또 그는 ‘괴물’에 대해 “나 역시 누군가에게 괴물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였다”고 했다. “처음 미나토의 엄마 시점에서 보았을 때는 아들의 피해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는 학교와 반성은커녕 빈정대는 가해자 호리 선생님에 분노를 느끼지만, 호리 선생님의 시점에서는 이전의 '빈정대는 가해 선생'은 사라지고 호시카와를 괴롭히는 무기노가 먼저 보인다. 실제로 했던 말과 행동은 말 사이의 맥락을 연결 짓는 과정, 소문이 되어 옮겨 다니는 과정, 나의 입장을 우선하여 판단하는 과정에서 자꾸만 변질된다. '진짜 괴물'이란 결국 무엇일까. 나 역시 누군가에게 괴물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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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캐슬 제공 |
"괴물 흥행, 작품의 힘, 특히 각본의 힘 컸다"
지난 5일 관객 50만명 돌파에 맞춰 내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한국 관객의 N차 관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솔직히 평소 온라인 평가를 찾아보지 않는 편이라 한국 관객이 어떤 호평을 하는지 잘 몰랐다”며 “다만 두 배우의 환대 소식을 듣고 어느 정도 (반응을) 짐작했다. 일본과 마찬가지나 N차 관람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떤 관객은 저보다 더 깊게 포착하고 해석하더라. 이 작품에 있어선 엄청난 행복”이라고 답했다.
그는 흥행의 이유로 “작품의 힘”을 꼽았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모두가 잘해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사카모토 유지가 쓴 각본의 힘이 컸다. 관객을 몰입시키는 이야기와 전개 방식이 특별했다”고 부연했다.
“‘괴물’의 플롯은 나라면 쓸 수 없다. 압도적으로 내가 쓴 각본보다 스토리텔링이 뛰어나다. 내가 쓸 수 있는 대사나 이야기 구조가 비슷한 상황에서 솔직히 내가 내게 질린 감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존경해마지 않던 작가와 작업하게 됐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로 3년간 의견을 나눴는데, 좋은 콜라보가 됐다.”
"특히 후반부 음악실에서 사카모토 능력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미나토와 교장이 함께 악기를 부르는 클라이맥스가 있는데, 각본을 읽었을 때 그 장면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나라면 음악실에 미나토와 요리가 함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카모토는 이 영화에서 미나토와 가장 먼 곳에 있던 교장을 한 장소에서 두고, 그 순간에 진심을 다해 악기를 부는 장면을 썼다. 그 각본가가 아니면 쓸수 없는 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관객과 한 GV에 대해 묻자 그는 “관객들이 아주 세세한 장면들에 대해 궁금해했다"며 대표적으로 슈퍼마켓에서 교장 선생이 아이를 넘어뜨리려는 장면, 미나토가 바닥에 떨어진 지우개를 줍다가 동작을 멈추는 장면 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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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캐슬 제공 |
“우리 영화에는 해결되지 않은 묘사가 여럿 남아있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그 이유가 밝혀지나, 유지 작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교장 선생의 행동은 (그걸 우연히 본 엄마가) 저 교장은 뭔지 모르겠지만, 이상하다라는 기분과 감정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또 미나토가 지우개를 줍다가 멈추는 장면을 보고 엄마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의심을 갖게 된다. 미나토의 감정은 자신이 쓴 글을 지우개로 지우려는 장면에서도 보인다. 감정은 얼굴뿐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가능하다, 감정을 동작으로 치환하라고 연기 디렉션을 했다.”
마지막 장면의 연출 의도도 전했다. 폭우가 쏟아져 산사태가 난 상황에서 두 아이를 찾으러 간 엄마와 교사는 애가 타는 한편, 두 아이는 푸른 녹음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마치 새처럼 자유롭게 뛰어간다.
그는 “엔딩 장면에 두 배우에게 일단 기뻐해라, 우리는 우리로서 괜찮다, 스스로 축복하라고 했다. 원래는 두 아이가 뛰어가다가 (마치 괴물은 누구인지 관객들에게 묻듯) 돌아보는 장면을 찍었다. 그렇게 끝내려고 했는데, 그 장면에 故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 ‘아쿠아’를 입혔더니 둘이 멈추는 거보다 계속 뛰어가는 게 더 축복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편집했다.” ‘아쿠아’는 사카모토가 딸이 태어났을 때 축복하는 마음으로 작곡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괴물'은 최근 누적 관객 수 50만명을 넘기면서 고레에다 감독의 일본 영화로는 최고 흥행작이 됐다. 그는 '아무도 모른다'(2005),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어느 가족'(2018) 등을 통해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나 국내 관객 수는 대체로 10만명대 안팎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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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 NEW 제공 |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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