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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귀인(貴人)은 병조차도 OO한다

파이낸셜뉴스 2024.02.06 05:59 댓글0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MBC드라마 &#39;허준&#39;에는 허준이 공빈마마 동생의 반위(反胃)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높은 지위의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면서 결국 치료에 실패하자 손목이 잘릴 위기에 처한 장면이 나온다.
MBC드라마 '허준'에는 허준이 공빈마마 동생의 반위(反胃)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높은 지위의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면서 결국 치료에 실패하자 손목이 잘릴 위기에 처한 장면이 나온다.



중국 후한 시대에 곽옥(郭玉)이라는 의원이 있다. 곽옥의 의술은 묘해서 효험을 보지 않는 이들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인의 천고로 인해 화제(和帝)왕 때 궁으로 들어가 태의승(太醫丞)이 되었다.

화제는 갑자기 궁으로 들어온 곽옥을 탐탁히 않게 생각했다. 그의 의술이 신통하다고는 들었으나 그 의술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한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화제는 신하들 중 손목이 여자처럼 고운 내시를 뽑았다. 손목과 손만 봐서는 누가 봐도 여자였다. 그리고 이 내시를 여러 명의 궁녀들과 함께 섞어서 휘장 안에 들어가 있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모두 휘장 밖으로 손목을 내밀어 놓게 했다.

화제는 곽옥에게 “짐은 공의 의술이 특출하다는 것을 익히 들었소이다. 그런데 몇몇의 궁녀들이 요즘 알 수 없는 증상들이 있다고 하는데, 진맥을 좀 해 주시오. 궁녀들이 부끄럽다고 해서 이렇게 휘장 안에서 손만 내밀게 되었소.”라고 했다.

곽옥은 아무 말 없이 한명 한명 진맥을 했다. 그런데 진맥을 다 마치고 나서는 “약간 과로인 것 같으나 모두 건강하고 큰 병은 없는 듯하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좌측은 양(陽)이고 우측은 음(陰)이라 맥(脈)에는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있는데, 한 궁녀의 맥이 다른 듯하니 저는 그 까닭이 의아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좌우 신하들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더니 화제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혹시 한 궁녀는 이의(二儀) 한 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의(二義)란 음양(陰陽)을 말하는 것으로 ‘이의(二儀) 한 몸’이라는 것은 남녀의 생식기가 한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화제는 깜짝 놀라면서 “그대의 의술은 과히 대단합니다.”라고 하면서 감탄하면서 칭찬했다.

곽옥은 궁에서 주로 왕과 왕손들을 치료했지만, 더불어서 고관대작들의 치료도 맡게 되었다. 어느 날 승상직에 있는 높은 지위의 관리가 두통 때문에 곽옥을 찾았다.

“내가 한쪽 골이 아픈지가 벌써 수년이 되었소. 다른 의원들에게 치료를 해 봤지만 헛수고요. 내가 안 해 본 치료법이 없었고, 멀리 이웃나라의 명의가 와서 치료를 했지만 효과가 없었소. 당신은 나를 완치할 수 있겠소?”하고 물었다.

말하는 것이 마치 자신의 병은 무척 어려운 병인데 자신있냐는 투였다. 곽옥은 승상의 말에 부담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관리에게 “치료에 최선을 다해 보겠지만 장담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완치를 자신하라고 하니 그 뒷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옥은 어쩔 수 없이 침치료와 함께 탕약을 처방했다. 관리는 치료하는 도중에 질문이 무척 많았다.

‘이 혈자리는 어떤 효과가 있는지, 탕약은 부작용은 없는지, 다른 명의들의 처방약과 맛이 사뭇 다른데 어떤 약재가 들어간 것이지, 며칠의 말미를 주면 완치가 가능하겠는지’ 등등 말이 많았다.

침을 놓는 과정에서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 곽옥의 의술을 의심하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관리의 두통은 전혀 차도가 없었다.

승상은 “왜 내 병이 낫지를 않는 것인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곽옥이 “승상의 지체가 의사인 저보다 높기 때문입니다.”라고 이유를 댔다.

관리는 “아니 내가 자네보다 높은 벼슬인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이것이 치료가 안되는 이유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하고 되물었다. 곽옥은 “승상과 같은 귀인(貴人)은 병조차 벼슬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곽옥이 승상의 치료에 실패했고, 그 이유로 승상의 벼슬 때문이라는 변병을 댔다는 소문이 궁에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자 화제는 다시 한번 곽옥을 시험해 보고자 했다. 치료에 실패했다는 승상에게 관복을 벗고 허름한 옷을 입히고 나서는 파직되었다는 소문을 냈다. 그러고서는 다시 곽옥에게 진찰을 받아 보게 했다. 그랬더니 과연 침 한방에 증상이 사라졌다.

화제는 곽옥을 불러 그 정황을 따져 물었다. “높은 벼슬아치들은 치료가 잘 안된다고 했다고 하던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했다.

곽옥은 대답하기를 “의술[醫]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意]입니다. 주리(?理)는 지극히 미세하므로 기(氣)를 따라 정교함을 구사하여 침석(鍼石)을 쓸 때 털끝만큼이라도 실수하면 곧 어그러지니, 신묘함은 마음과 손 사이에 한치도 흐트러짐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높은 벼슬아치를 치료함에 그 실수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면 기를 집중할 수 없으니 치료에 임해도 어찌 효과가 나겠습니까?”라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화제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귀인은 병조차도 벼슬한다고 했다고 하는데, 무슨 뜻인가?” 곽옥은 “무릇 귀한 사람은 높은 위치에서 의사를 거들먹거리면서 상대하기 때문에 의사가 귀인의 병을 볼 때면 마치 병조차 어렵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병조차 벼슬을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귀인을 치료할 때 네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첫째 어려움은 귀인은 자신의 의견과 주장이 강해서 의사에게 치료를 전적으로 일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침치료를 예로 들면 침에는 찔러야 하는 분촌(分寸)의 길이가 다르고, 침을 놓는 시간에는 파루(破漏)가 있는 법인데, 귀인의 두려운 감정에 압도되고 조심스러운 마음에 짓눌려 의사의 생각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 병을 어찌하겠습니까? 또한 탕약을 처방할 때조차 귀인은 이 약은 빼고 저 약을 더 넣으라고 명하니 어찌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오겠습니다. 더불어 둘째 어려움은 귀인은 몸을 섭생함에 있어 이것저것 고량진미를 가리지 않고 먹기 때문이며, 셋째 어려움은 귀인은 게으르고 책 읽기만 좋아하고 노동을 싫어해서 기력과 뼈마디가 약하고 기혈순활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넷째 어려움은 귀인은 욕심이 많고 성격이 급해서 무엇이든지 빠르게 결과를 얻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귀인이 낫지 않은 이유입니다.”라고 했다.

화제는 곽옥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곽옥의 의술을 의심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관리들에게 앞으로는 편한 복장으로 곽옥에게 진찰을 받으면서 직책을 내세우지 말도록 했고, 곽옥의 의술을 의심하지 말고 전적으로 치료를 맡기도록 명했다. 자신도 그렇게 하고자 노력했다.

곽옥은 나이가 들어 관직을 그만두고서 시골에 내려가 낚시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곽옥은 부수(?水)라는 지역에서 낚시하기를 좋아했는데,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 몰라서 부수의 늙은이라는 의미로 부옹(?翁)이라고 불렀다.

곽옥은 자신을 내보이지 않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걸식도 했다. 그러다가 병이 있는 환자들을 만나면 침치료를 해줬다. 가난한 사람이나 하인이나 상관없이 환자라면 신심을 다했다. 곽옥의 침을 맞고서 낫지 않는 자가 없었다. 사람들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특출난 명의이면서 높은 벼슬까지 한 노인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귀인은 병조차 벼슬을 한다는 말은 요즘도 통한다. 닥터 쇼핑을 하는 환자들은 좀 더 큰 병원과 유명한 의사들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이 최고의 어느 병원, 최고의 누구에게 치료까지 받아봤다고 자랑삼아 말한다. 그러나 결국 의사를 못 믿기 때문에 또다시 병원을 옮기게 된다.

한의원에서는 불쑥 손목만 내밀고 자신의 병을 진맥만으로 맞춰보라고 한다. 환자가 의사의 실력을 시험한다면 자신의 병은 치료에 실패할 것이다. 자신의 병을 치료하고자 하면 환자는 무엇보다도 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의사 또한 환자와 라포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병은 믿음이 없으면 낫지 않는다.

* 제목의 ○○는 ‘벼슬’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의부전록> 醫術名流列傳. 後漢. 郭玉. 按《後漢書ㆍ方術傳》, 郭玉者, 廣漢?人也. 初有老父, 不知何出, 常漁釣於?水, 因號?翁. 乞食人間, 見有疾者, 時下針石, 輒應時而效, 乃著《針經診脈法》, 傳於世. 弟子程高尋求積年, 翁乃授之. 高亦隱蹟不仕. 玉少師事高, 學方診六徵之技, 陰陽不測之術. 和帝時爲太醫丞, 多有效應. 帝奇之, 仍試令嬖臣美手腕者, 與女子雜處?中, 使玉各診一手, 問所疾苦. 玉曰:"左陰右陽, 脈有男女, 狀若異人, 臣疑其故." 帝歎息稱善. 玉仁愛不矜, 雖貧賤?養, 必盡其心力, 而醫療貴人, 時或不愈. 帝乃令貴人羸服變處, 一針?差. 召玉詰問其狀, 對曰:"醫之爲言, 意也. ?理至微, 隨氣用巧, 針石之間, 毫芒?乖, 神存於心手之際, 可得解而不可得言也. 夫貴者處尊高以臨臣, 臣懷怖?以承之, 其爲療也, 有四難焉:自用意而不任臣, 一難也;將身不謹, 二難也;骨節不彊, 不能使藥, 三難也;好逸惡勞, 四難也. 針有分寸, 時有破漏, 重以恐懼之心, 加以裁?之志, 臣意且猶不盡, 何有於病哉? 此其所爲不愈也." 帝善其對, 年老卒官. (의술명류열전. 곽옥. 정고. 후한서 방술전에 의하면 곽옥은 광한의 낙 사람이다. 당초에 어떤 노인이 있었는데, 출신을 알지 못하며 늘 부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으므로 부옹이라고 불렸다. 민간에서 걸식하다가 질병이 있는 사람을 보면 때로 침석을 시행했는데 번번이 즉시 효과가 났으며, 마침내 침경진맥법을 저술하여 세상에 전해졌다. 제자인 정고가 여러 해 동안 깊이 탐구하니 부옹은 마침내 그에게 전수하였다. 정고 역시 은거하여 벼슬하지 않았다. 곽옥은 젊을 때 정고를 사사하여 육징을 진찰하고 처방하는 기술과 음양불측의 학술을 배웠다. 화제 때 태의승이 되었으며, 효험을 보는 일이 많았다. 화제가 그를 기이하게 여겨서, 시험 삼아 손목이 고운 폐신을 여자들과 섞여서 휘장 안에 있도록 하여, 곽옥으로 하여금 각각 한 손을 진맥하게 하고는 앓는 바를 물었다. 곽옥이 “좌측은 음이고 우측은 양이라, 맥에는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있는데, 남들과는 다른 듯하니 저는 그 까닭이 의아합니다.”라고 하자, 화제는 감탄하면서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 곽옥은 어질고 자애로우며 교만하지 않아서 비록 빈천한 자나 하인들이라도 반드시 그 심력을 다했는데, 귀인을 치료할 때는 간혹 낫지 않기도 했다. 화제가 귀인에게 낡은 옷을 입히고 거처를 바꾸게 했더니, 한 번 침을 놓자 곧 나았다. 곽옥을 불러 그 정황을 따져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의술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입니다. 주리는 지극히 미세하므로 기를 따라 정교함을 구사하여 침석을 쓸 때 털끝만큼이라도 실수하면 곧 어그러지니, 신묘함은 마음과 손 사이에 간직되어 이해할 수는 있어도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무릇 귀한 사람은 높은 위치에서 저를 상대하며 저는 두려움을 품고 그를 받들게 되는데, 치료할 때 네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기 소견을 내세워 저에게 일임하지 않는 것이 첫째 어려움이고, 몸을 섭양함에 삼가지 않는 것이 둘째 어려움이며, 뼈마디가 튼튼하지 않아 약을 쓰지 못하는 것이 셋째 어려움이고, 안일함만 좋아하고 노동을 싫어하는 것이 넷째 어려움입니다. 침에는 분촌이 있고 시간에는 파루가 있는 법인데, 두려운 감정에 압도되고 조심스러운 마음에 짓눌려 저의 생각도 다하지 못하거늘, 병을 어찌하겠습니까? 이것이 낫지 않은 이유입니다.” 화제가 그 대답을 옳게 여겼고 곽옥은 나이가 들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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