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손 없는 날
이소호
이사 날은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우리는 밥솥을 두고 왔다
엄마 밥솥만 혼자 이사 가는 이유가 뭐예요?
손 없는 날은 이삿집센터 값이 배로 뛰어
우리 집은 어째서 미신과 행운, 요행이
우선일까
우리는 남쪽으로 머리를 두고
침대 발치에 거울을 두지 않는다
집 안에서 우산을 펴지 않고 금을
밟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와 텔레비전 사이에 놓인 아버지
다리를 넘었다
개념 없는 년이라고
어른은 넘나드는 게 아니라고
화를 냈다
텔레비전 속에는 죽음이 즐비하고
희망은 날씨뿐이다
아나운서는 코로나 이후
가정 폭력 지수가 늘었다고 말했다
잠시
지옥이 있었다
엄마는 도마 위에서 푸르게 멍든 생선의 눈알을
판다
까맣게 변해버린 생선의 대가리를 자르고
살만 발라 아버지 숟가락 위에 얹었다
엄마 엄마는 왜 드시지 않으세요?
아버지 먹고 그다음이 우리야
아버지는 살 한 조각을 한입에 쏙
넣었다
사이 우리는
살이 모두 사라진 생선의
뼈를 계속해서
헤집어 놓았다
생선은 뒤집는 게 아니야
있는 그 자리에서 먹어야지
복 나가
여기서 더 불행해져도 괜찮아?
나는 먼저 이사 가버린 밥솥을 생각했다
이 집을 가장 먼저 탈출한 밥솥을
시집 『홈 스위트 홈』 (문학과지성사, 2023)
이소호 시인
2014년 『현대시』로 등단
제 37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집 『캣콜링』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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