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유머방

제 고향의 장날은 매월 3자,8자가 들어가는 날짜랍니다,,
삼천리 금수강산 전국 방방곡곡마다 엄지손가락 내밀며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특산물이 있습니다만 제 고향에선 마늘과 양파, 고추 등을 내세웁니다,,,
옛날부터 해마다 이맘 때 쯤, 장날이 되면 김장 양념에 쓰이는 최고급 마늘이나 고추를 사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상인들이 모여들곤 했지요,,
그 외에도 여름내 매일 땀 흘리며 아픈 허리 참으면서 힘들게 지은 수많은 농산물들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진 시골 사람들이 사방팔방에서 모여들고 필요한 것들을 사가곤 했지요,,
농사 짓느라 무뎌진 낫 같은 농기구도 들고 와서 대장간에서 날을 세우고 수선하기도 하고
떠돌이 약장수가 북을 치며 약병을 들고 떠드는 소리에 넋을 잃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장날은 그렇게 어른들에게 중요한 날이었지만
어린 초등학생들에게도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한창 호기심 많을 때인 초등학교 시절엔 학교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가에 장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게 되면 바로 오늘이
장날이란 걸 깨닫고는 집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장터를 향해 달려가서는
온종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구경하는 재미에 빠지곤 했습니다,,,
온갖 볼거리가 다 있었지요,
신기한 것도 많았고,,
소, 돼지 같은 걸 파는 우시장은 언제나 일찌감치 끝나버려 제대로 못보지만
그 외 닭이나 오리, 병아리, 강아지, 염소 같은 것들은 언제나 많았습니다,,
어미도 있고, 새끼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엄청 큰 것도 있고,,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며 위풍당당한 자세로 서 있는 장닭은 언제 봐도 멋있었습니다,,
암탉들은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생소한 환경이 불안한 듯 땅에 가만히 앉아 두리번거리고
병아리들은 저희들끼리 모여 있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이쪽 저쪽으로 몰려가고
강아지들은 첨 보는 사람에게도 그 조그맣고 귀여운 꼬리를 흔들며 쳐다보고
염소들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마른 지푸라기를 끊임없이 씹고,,,
그러다 뿔을 만져 보려하면 재빨리 고개를 숙이면서 냅다 들이받을 자세를 취하곤 하였지요,
뿐만 아닙니다,,
사냥으로 잡아 온 꿩이나 산토끼, 산비둘기, 이름 모를 새도 많았습니다,,
숫컷 장끼의 화려한 깃털과 기다란 꼬리깃털은 정말 환상적이지요,
어떤 땐, 매나 독수리, 소쩍새 같은 맹금류의 새끼들도 있습니다,,
그런 걸 볼 때면 한 마리 사다가 집에서 키워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요,,
그리고, 약에 쓰는 개구리나 뱀 말린 것, 지네 말린 것, 불개미 볶은 것도 있고
아무튼 정말 볼거리가 많았지요,,
건너 편 저쪽엔 붕어, 잉어, 가물치, 미꾸라지 같은 물고기나 거북이나 자라 같은 걸 팔았습니다,,
큰 것이나 가물치 같은 건 바닥에 구조물로 만든 수조에 산 채로 넣어 두고,
작은 것은 죽던지 말던지 그냥 가는 새끼줄 같은 걸로 아가미를 줄줄이 꾀어서 수조에 담아두고,
너무 작은 물고기나 미꾸라지 같은 건 다라이 같은 것에다 담겨서 사갈 사람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양지 바른 곳엔 자전거가 커다란 봇짐을 싣고 줄지어 서 있습니다,
대부분 빨간 마른 고추를 팔러 온 사람들이지요,
참깨나 들깨 같은 걸 가져온 사람도 있고,,
그 옆엔 콩이나 팥 같은 걸 팔러 온 사람들도 있고
남자, 여자, 할아버지, 할머니 등 팔러 온 사람도 다양하지요,,
그 앞에서 떠돌이 약장수가 북이나 징 악기를 매고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모습은 정말 볼만 했지요,,
장날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뭐니뭐니해도 주식인 쌀이나, 보리쌀 같은 것이지요,,
사람도 가장 많이 모였지요,
새끼줄로 엮어 만든 커다란 돗자리에 쌀을 수북히 쌓아놓고 살 사람과 흥정을 하고는
작은 되나 커다란 말로 퍼담아 둥근 막대기로 위를 밀고 큰 소리로 하나, 둘을 세면서 팔곤 했지요,,
그 옆엔 지겟꾼들이 서서 쌀을 산 사람이 집까지 운반해줄 짐꾼으로 자신을 불러주기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부잣집에선 쌀을 그냥 가마니 채로 사서 지겟꾼을 부려 사가곤 했지요,,
요즘은 흑미 라는 까만 쌀이 고급으로 유명하지만
그 당시 제 고향에선 연한 분홍빛 쌀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것도 토종쌀일텐데 요즘은 통 그런 게 안 보이더군요,,
대형 마트에서도 그런 게 없더군요,,
근데 이상한 것은 그 당시 우리 고향에선 쌀 같은 걸 사러 가는 것을
사러 간다 하지 않고 팔러 간다 하였습니다,,
파는 사람이 팔러가지 왜 사러 가는 사람을 팔러간다고 하는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군요,,
장터 가는 길 옆엔 약재상들이 있었는데
바로 앞 도로가엔 말린 약재들을 가지고 올라 온 시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닥, 계피, 지피, 율무,,그리고 뭐 말린 거, 뭐 말린 것 등등 이름 모를 약재도 많이 팔았지요,,
옛날 이야기 책을 팔러 온 할아버지도 몇 분 있었습니다,,
언제나 흰 두루마기에 옛날 양반갓을 쓰고 기다란 대나무 담뱃대를 입에 물고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서 누가 와서 사던지 말던지 거만한 자세로 앉아 계셨지요,,,
책이라 해봐야 요즘 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조잡했고
맞춤법도 글자체도 좀 이상했지만 그래도 빨강 노란, 초록, 파랑 등 원색 물감으로
그린 처녀 총각 그림도 있는 춘향전, 심청전 같은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사두었더라면 그때 그 시절의 골동품으로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가끔 들 곤 하지요,,
국밥집에서 흘러나오는 국밥 냄새는 정말 구수하고 황홀했습니다,,
쥔 아줌마가 밥이 든 대접을 들고 나와 커다란 가마솥을 열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속에
큰 국자를 넣어 휘 휘 젓고는 한 대접 가득 퍼 담아 손님 앞에 내려놓은 거 보면
정말 군침이 꿀꺽 넘어가지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종일 장터 구경하느라 안 그래도 배가 고픈데
밥 생각에 얼른 집으로 돌아가 배불리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지요,,
그런데 헐,,,
집으로 가는 길목 옆엔 넓은 돗자리 바닥엔 용돈 한푼 없는 시골 초딩애들 약을 올리 듯
거무틱틱하고 딱딱하고 삐죽삐죽한 손가락만한 열매들이 작은 동산처럼 가득 쌓여
사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밤입니다,
우리 고향에선 말밤이라 부르지요,,
맛은 밤 비슷하지만 생긴 건 말 대가리 같이 생기기도 하고
뿔난 소대가리 같기도 해서 말밤이라 부르지요,,


다른 곳에선 물밤이라고 부른다고 하지만
정식 학명은 마름이라고 한답디다,,한자로는 능[菱]이라 쓰고,,
옛날에 먹을 거 없던 시절엔 구황작물로 먹기도 했다더군요,,
마름모꼴이란 말은 마름에서 나온 말이고
옛날 전쟁때 무기로 사용한 마름쇠도 마름의 모양을 본 떠 만든 것이지요,,
마름 즉 말밤은 다른 지방에도 나겠지만
우리 고향에서 가장 많이 나는 특산물이기도 했습니다,,
고향 어디를 가던 물이 많은 못엔 대부분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많은 곳은 우포늪이지요,,
지금은 모두 그곳을 우포늪이라 부르고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알지만
우리가 어렸던 시절엔 그런 게 없었지요,,
이름도 우포늪이라 부르지 않았고,
그냥 그곳 지방명에 따라 이방못, 유어못, 대합면못 이라 불렀던 것 같습디다,,
당시엔 외지 사람들은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고 그냥 우리 고향사람들만 알았고
한 여름에 피서 삼아 놀러가서는 물고기를 잡아 매우탕 같은 것이나 끊여 먹던 곳이었지요,,
아무튼 물고기는 무진장 많았습니다,,
각종 수생식물도 엄청 많았는데 그 중 가장 많은 것이 가을에 말밤이 열리는 마름이란 식물이었습니다,,
가을이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작은 배를 타고 그냥 손으로 퍼담는 것이 모두 말밤이었습니다,,
그걸 며칠 말린 다음 커다란 마대나 가마니에 담아서 장날이면 가지고 와서는 되나 말로 팔곤 했지요,,

그냥 먹는 게 아니라 삶아서 먹는 것인데 맛은 밤 맛과 비슷합니다,,
물론 밤 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맛은 좋았습니다,,싸기도 엄청 싸고,,
그러나 겁데기가 딱딱해서 그냥은 먹기가 힘들고 부엌에 있는 식칼을 가지고 와서
도마 위에다 놓고 반으로 쪼개 젓가락 같은 걸로 파내 먹곤 했습니다,,
집안 식구 모두 둘러 앉아 먹다 보면 집안에 웃음꽃이 피고 화기가 애애해지지요,,
다 먹고 나면 옆에 겁데기가 수북히 쌓이게 되는데 버리진 않고
마당 한 구석에 모아두었다가 마르면 땔감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마로니에 열매를 말밤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생긴 건 정말 밤 같이 생겼지만 몸에 해로운 독이 있다더군요,,
그러나 고향의 말밤은 영양가도 있어서 그냥 먹기도 하지만 약으로도 쓸 수도 있고
최근엔 항암 성분도 있다는 말도 있더군요,,,
그동안 객지 생활을 한지가 이미 수십 년이 되었지만
고향 외 다른 곳에선 단 한번도 말밤을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본 적도 없고,,
시장이나 어딜 가 봐도 말밤을 파는 걸 본 적도 없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더군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고향에 가면 실컷 먹어둬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근데 요즘은 우포늪을 보호하기 위해 말밤채취를 금지한다는 말도 있던데,,
아무튼 이래저래 정든 옛것들이 멀어져 가는 세상이군요,,,,ㅎㅎ
이래저래 아쉬운 인생살이,,이백의 추포가 한 수로 잠시 마음 달래 보지요,,
호수에 하얀 달 뜨고
달빛에 백로가 나네,
이 한밤 장부 홀로 듣나니
마름 따는 처녀들 노랫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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