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유머방



사진속 맨 앞 칼든 병사가 처칠이라고 함...
현대 특수부대의 근간이라고 불리는 영국 특수부대 "코 만도스"에 자원입대 하기도 했다. 더 가관인건 코만도에 지원한 이유인데, "특수임무를 받 는데다 위험해 보이는 이름을 가져서" 들뜬 마음으로 흥분을 하며 입대했다고 한다.
이 분은 1906년 홍콩에서 태어나셔서, 1996년에 발할라로 거주지를 이전하셨다.
별명은 '싸우는 잭 처칠' 또는 '미친 잭' 이었다고 합니다.
킹윌리엄컬리지와 샌드허스트 영국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시고, 버마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아니라! 연대에서 복무하다가 36년 제대하고 신문편집인으로 활동하셨다. 활 잘쏠고 백파이프에도 일가견이 있으셔서 몇차례 영화도 찍은 적이 있었다고.
제2차 세계대전동안,
-폴란드가 침공되자, 군대에 복귀. 덩케르크 전투에 참가.
-갓 창설된 코만도스 부대에 지원. 지원동기: 이 부대가 뭐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위험하게 들리니까.
-1940년 5월 프랑스 연안의 독일군 순찰부대를 공격!
잭 본좌님께서 독일군 부사관을 화살로 쓰러뜨리는 걸로 공격신호.
-1941년 12월 노르웨이 Vagsøy에 있는 독일군 병영을 공격하는 작전명 아처리 Archery...(누가 이 작전명 지었는지 알만???)를
실행할 때 참전,
2개 중대의 병력을 지휘. 참고로 첫 상륙한 자신이 탑승한 상륙정의 램프가 내려지자 말자 제일먼저 앞으로 뛰어가서
무려! 백파이프를 들고 대진지포격을 했을리는 없잖아? '캐머런 남자들의 행진'이란 곡을 연주. 그러면서 독일군의
해안포진지 안에 수류탄 까던지고 다시 해안의 자신 위치로 복귀.
-이태리로 무대를 옮겨서, 제2코만도스 부대와 살레르노 공격에 참가. 선봉에 선 그는 단 한명의 소총병(계급:상병)과 함께 마을을 기습, 적군 초병의 목에 검을 들이대곤 "흉이 애정이 있어서 하는 말인데, 니들 다 항복하라고 해라잉~"이라고 설득(?).
결국 초병의 말에 마을에 주둔하고 있던 적군 죄다 항복! 그는 부하소총병 한명과 함께 적군 42명의 포로와 1개 박격포 분대를 이끌고 마을에서 걸어나왔다고.
-다시 마누라가 일곱분이신 조직의 형님 수상이 아끼시는 유고슬라비아로 제2코만도스 부대와 같이 침투해서, 티토의 팔치산 활동을 지원.
독일군이 점령중인 섬과 고지를 공격하는 작전에서 처칠과 여섯명만이 목표에 간신히 도달. 그 후 박격포 포격에 처칠을 제외한 나머지 병력 전원 전사또는 부상. 독일군이 접근하는 것을 바라보며 시 한수를 �쉼� 말 목을 베어 백파이프를 들고 홀연히 '그대 돌아오지 않는가?'를 연주하시던 도중 수류탄이 폭발하는 폭풍에 의해서 쓰러짐.
-독일군에 잡혀서는 베를린으로 이송되어서 심문(고문?)받음
-작센하우젠 포로수용소에 감금
-그런데 탈출! 영국공군조종사와 함께 그는 발트해까지 걸어서 탈출을 시도했고, 해안까지 고작 몇 마일 남겨둔 채 체포됨.
- 티롤로 이감.
- 또다시 탈출! 니더도르프에서 베로나까지 150마일을 걸어서 거기에 있던 미군부대에 도착!
-태평양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버마로 이동(아직 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어!) 일본본토 상륙작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정작 그가 인도에 도착하고 나니, 팻맨과 리틀보이가 ...결국 일본항복!
-그는 일본항복및 전쟁종결 소식에 슬퍼하며 말하길 "미국넘들이 껴들지 않았으면 10년은 더 싸울 수 있었을텐데!"
[일본군의 일본도와 싸워보고 싶었다고 ...]
-대전 후에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파견되어서 열두명의 병사를 지휘해서, 유태계 병원에 있는 의사, 학생, 환자 등을 호송하는 작전을 수행하면서, 수백명의 아랍 측 공격을 막아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공지전 학교(Land-air warfare school)에서 교관생활하면서 서핑보드에 푸~~욱 빠져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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