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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대성이라고 하면 누구를 말하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 테지만, 중국 4대 기서(奇書) 중 하나로 16세기에 나온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하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손오공은 동승신주(東勝神州) 오래국(敖來國) 화과산(花果山)1) 꼭대기에 있는 거석이 영기(靈氣)를 품어서 낳은 돌원숭이[石猿]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힘이 세고 난폭해서 금방 수렴동(水簾洞)의 원숭이 왕이 되었지만 불로장생의 도를 구하기 위한 여행길에 나섰다. 천계의 옥황상제로부터 필마온(弼馬溫)이라는 마구간을 돌보는 직위를 받았지만, 태상노군이 만든 단약(丹藥 : 불로장생의 비약)을 몰래 훔치기도 하고, 서왕모의 반도(蟠桃)도 훔쳐먹는 등 계속 무례한 행동을 일삼자 급기야는 옥황상제의 체포 명령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탁탑천왕(托塔天王)과 나타삼태자(哪吒三太子), 이랑진군(二郞眞君) 같은 천계의 유명한 무장들이 모두 나섰지만 손오공의 힘을 도저히 당할 수가 없었다. 이에 보다 못한 태상노군이 왼쪽 팔목에 끼고 있던 금강탁(金剛琢)이라는 팔찌를 집어던져 간신히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손오공을 붙잡아오기는 했지만 처벌이 쉽지 않았다. 노군의 단약과 서왕모의 반도를 먹어서 이미 불사신이 된 손오공의 신체는 그 어떤 처벌에도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처형은 아예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노군은 팔괘로(八卦爐)라는 영력이 깃들여 있는 화로에 손오공을 집어넣었다. 손오공은 화로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바람에 화안금정(火眼金睛 : 빨간 눈, 즉 원숭이의 눈)이 되었지만, 운 좋게도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손오공이 천계에서 처벌을 받다 도망치자 다시 곤경에 빠진 옥황상제는 하는 수 없이 석가여래(釋迦如來)2)에게 손오공을 붙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손오공은 석가 앞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뽐내며 가능한 한 멀리 날아서 도망쳤지만, 석가의 손바닥 안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석가의 위대함에 무릎을 꿇고 오행산(五行山)에 감금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로부터 5백 년 후, 손오공은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3)이 나타나 인도 여행에 동행하면 벌을 감해주겠다고 하자, 그렇게 하기로 하고 불경을 구하러 떠나게 된다.
이상이 『서유기』의 도입부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상당히 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서유기』는 비록 손오공이 주인공이지만, 도교와 불교의 신들도 뒤섞여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에 부처와 도교의 신들이 밀착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
손오공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신통력에다 뛰어난 술법과 무기까지 손에 넣게 됨으로써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힘을 자랑하게 되었다. 우선 그는 수보리조사(須菩提祖師)라는 신선에게 변신술과 근두운(觔斗雲)이라는 술법을 배웠다. 근두운은 순식간에 9천 킬로미터를 날아갈 수 있는 영운(靈雲 : 신령스러운 구름) 조종법이다. 그리고 천계의 동쪽을 지키는 용의 화신인 동해 용왕 오광(敖光)으로부터는 여의금고봉(如意金箍棒)을 빼앗아 손에 넣었다. 이 여의봉은 고대의 황제인 우(禹)4)가 홍수를 진정시키기 위해 바다 밑바닥을 길들이는 데 사용했던 것으로, 자유자재로 늘어났다 줄어드는 신비의 철봉이다. 타고난 능력에다 도교의 술법과 영력이 깃들여 있는 무기까지 손에 넣었으니 당연히 그 힘은 몇 배나 늘어나게 되었다. 그 힘을 믿고 각종 악행을 저질러 천계의 분노를 사긴 했지만, 손오공은 이런 술법과 신비의 무기를 손에 넣음으로써 가히 천하무적의 힘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삼장법사와 인도 여행에 동행하게 되는 그의 동생들도 손오공과 마찬가지로 좋지 못한 전력을 갖고 있는 요괴들이었다. 저팔계(猪八戒)는 원래 하늘의 강을 지키는 천봉원수(天蓬元帥)였다. 하지만 반도회(蟠桃會) 때 술에 취해 항아(姮娥=달 속에 산다는 선녀)를 희롱한 죄로 인간계에 떨어진 전력을 가지고 있다. 암퇘지의 배에 몰래 들어가서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형상은 돼지를 닮았다. 그가 가진 무기는 아홉 개의 이[齒]를 가진 정파(釘鈀)다.
사오정(沙悟淨)도 예전에는 천계의 영소전(靈霄殿)에 살았던 권렴대장(捲簾大將)이었다. 그도 역시 반도회에서 실수로 수정잔을 깨뜨리는 바람에 유사하(流沙河)에 떨어진 경력이 있다. 보장(寶杖)이 그의 무기다.
삼장법사가 타고 다니는 백마는 원래 서해 용왕의 아들이었다. 그 역시 어전의 진주를 불에 태운 죄로 채찍에 맞아 죽는 사형에 처해졌지만 관음보살이 구해준 경력이 있다. 말하자면, 삼장법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천상계의 노여움을 사서 그 죄를 갚기 위해 현장을 돕는 것이다. '악(惡)'이라는 존재는 어떤 면에서 보면 상당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힘이 '선(善)'을 위해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바로 『서유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서유기』가 사람들 사이에 널리 읽히면서 그 주인공인 손오공도 민중들의 영웅이 되었다. 그래서 17세기에는 중국 각지에 손오공을 모시는 사당도 생겨났다고 한다. 이는 현장이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도운 손오공이 그 보상으로 다시 하늘에 올라갔다는 소설 속의 결말을 인간들이 현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이 현실 속에서 신으로 숭배된다는 이야기는 다소 황당한 면이 없지 않지만, 『서유기』가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하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삼장법사 현장의 인도 여행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로, 당나라 말기에는 그 모험담이 이미 전설화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있었으며, 송나라에서는 '대당삼장취경시화(大唐三藏取經詩話)'라는 이야기로 서민들 사이에 침투했다. 명나라 때에 오승은(吳承恩)이 지은 『서유기』는 그러한 이야기와 전설들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 소설을 소설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당시 중국 사회의 관료제도를 암암리에 비판하고, 인간의 노력과 인내를 우화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설득력을 얻은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여간 『서유기』는 그만큼 현실감 넘치는 재미있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따라서 손오공이라는 영웅을 전설이나 소설의 세계에서만 머물러 있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니었다. 이리하여 손오공은 비록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지만, 사귀(邪鬼)를 물리치고 악령의 위협에서 인간들을 보호해주는 신으로서 현실 속의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현재도 손오공은 대만이나 동남아시아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신자들은 손오공을 모시는 사당에서 작은 손오공상(像)을 빌려 집에 가지고 가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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