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유머방

ㅡ제1대ㅡ 태조 이성계와 여자들 ㅡ
태조는 첫번째 부인 신의왕후 한씨와 후처 신덕왕후 강씨 그리고 네 명의 후궁(첩)을 두었다.
드라마 <용의 눈물>을 본 사람들은
이 글이 좀 식상할 줄 모르겠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이고
글은 글이다.^^
제1본부인 신의왕후는 한씨였다.
이성계가 저 함경도에서 힘자랑할
때 고향 함흥에서 결혼한 여자다.
충숙왕 복위 6년(1337) 9월에 안변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경'이고 어머니는 신씨였다.
한씨는 꽃다운 나이 방년 15세에 17살 먹은 이성계와 결혼했다.
지금으로보면 어린 것들이 결혼했다고 생각할 줄 모르나
조혼이 대세였던 당시에는
빠른 것도 아니었다.
한씨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
남편이 왜구를 토벌한다고 전국을 휘집고 다닐 때 출장 많이 다닌다고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살림을 꾸려갔다.
애들은 첫째 방우를 위시하여 아들 여섯과 경산ㆍ경순 공주 등 8명을 생산했다.
* 애를 낳는 것을 생산이라고 쓴 것은 비속어가 아니고 존칭어라는 것을 알아두기 바람.^^
이성계가 장기간 출타 후 귀가하면 꼭 아이들을 하나씩 만든 것을 보면 부부금슬이 좋았던 모양이다.
아다리를 잘 맞추었다는 것이다...^^
한씨는 아이들 키우면서 애미의
삶을 살았다.
이성계가 개성에서 명문가 따님인 곡산 강씨를 세컨드로 두어도
투기한 적이 없다.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참 좋은 아내이자 엄마의 전형적인 상이었다.
모든 남자들이 이런 여자를 부인으로
맞기를 원할 것이다.
첫부인으로...^^♡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1391년 9월 23일 이성계가 왕이 되기 일 년 전에 55세의 나이로 하나님과 인터뷰(?) 하시러 가버렸다.
남편이 삼십년 동안 전쟁터를 누빌 때 한시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고, 남편 걱정에 노심초사, 6남2녀 애들 키우고 집안 뒷바라지만 하다가... ㅠㅠ
요즘 뇨자들에게 한씨를 본받으라고 하면 바로 주먹 또는 부엌칼이 도마와 함께 날라올 지 모른다.
남자들이여!
입조심해야 한다.
속에 있는 말을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된다.
자고로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고 한 것은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이다.^^
자연스럽게 서열 2위에 있던 신덕왕후 강씨가 1인자의 자리에 오른다.
중전으로...
강씨!
요즘으로 치면 힐러리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또이또이한 여자였다.
강씨는 공민왕 5년(1356)에 태어났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가 1335년에 태어났으니 19살 차이가 난다.
19살...
좀 거시기 하지만 이성계가 원래 무골 타입에다 힘께나 썼으니 얼마나 강씨를 이뻐했겠는가?
슬하에 방번과 방간, 경순공주를 두었다.
실록에 의하면 이성계가 강씨 말은 100% 다 들어주었다고 한다.
이방원이가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철퇴로 완샷으로 죽였다는 것을 알고 대발노발 아니 노발대발 했는데 이때 강씨가 말렸다고 한다.
"대장부가 쫀쫀하게 뭐 그런 걸로 화를..."
그래서 이성계는 화를 풀었다고 한다.
강씨 집안 내력이 흥미롭다.
강씨 아버지는 고려 때 판삼사사를 역임한 강윤성의 둘째 딸로 엄니도 진주 강씨이다.
* 判三司事
고려 시대에 둔, 삼사(三司)의 으뜸 벼슬. 품계는 종일품으로 재신(宰臣)을 겸하였다.
강윤성의 애비 강서는 조선의 연산군과 비슷한 방탕한 충혜왕에게 아첨하여 그의 총애를 받았다.
마치 연산군 채홍사의 임사홍 부자처럼...
강서의 셋째 아들 윤충은 천하의 바람둥이였고, 신덕왕후 강씨의 언니는 신귀에게 시집갔다가 개경의 고관대작들과 스캔들로 개경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신귀는 신돈의 친척이었고 나중에 신돈과 함께 처형되었다.
참 대단한 집안이었다.^^
신덕왕후 강씨는 빼어난 외모와 지략을 갖추고 개성의 상류계에서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한다.
남편의 출세를 위하여..
ㅎㅑ~ 부럽다.(속으로...^^)
실은 리크라테스는 저런 강씨 같은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내 스탈이 아니다.
저런 타입을 좋아했다면 이렇게 손꾸락 운동이나 하고 있겠는가?^^
강씨는 방번이를 세자로 하려고 했지만 며누리가 고려 왕가 집안이라 단념하고 막내 방석이를 태자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정도전과 남은이를 방석이 스승으로 삼고...
한씨 소생 방원이는 조선 개국 일등공신이지만 작은 엄마 강씨 때문에 닭쫓던 개 하늘만 쳐다보듯이 황이 돼 버렸다.
이방원!
이성계와 한씨 사이에 다섯번째 아들로 과거에 급제한 무인 집안의 귀재였다.
오죽했으면 방원이가 고시(과거)에 합격하자 두 부부가 얼싸안고 울었겠는가?
기쁨에 겨워서...
우리 무인 집안에서 문인이 나다니 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이겠는가?
방석 태자의 세자비 유씨!
방석이가 밤운동이 시원찮았는지 아니면 선천적으로 끼가 많이 있었는지 밤에 내시 이만을 불러들여 춘심을 불태운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게 되듯이 방원이가 중전에 심어둔 미녀하녀 춘심(앞의 춘심은 바람끼고 여기는 여자 이름이다^^)이에게 들키게 된다.
춘심이...
한건 크게 했다.
곧장 방원이에게 달려가 이를 알린다.
이방원에게는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역전의 기회의 잡았으니 말이다.
꼭 역전의 명수처럼..ㅎ
이방원이는..
춘심이를 끓어안고 자신이 왕이 되면 제일등공신으로 봉하고 세컨드로 삼을 것을 약속한다.
한국판 마타하리다.^^
나중에 방원이 왕이 되어 본부인 원경왕후 민씨와 아홉 명의 후궁들을 두었는데 그 중에 집안이 불분명한 고씨와 김씨가 있는데 그 둘 중에 하나가 춘심일 것이다.
방원이가 쓰리쿠션으로 이를 중전에게 알리자 중전은 이만를 잡아 족치니 그만 사실을 실토해버린다.
화가 난 중전마마 강씨는 불에 담근 인두를 가져오게 하여 이만이의 거시기를 사정없이 지져버린다.
"으~~~"
무섭다.^^
긍게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잖여?
남자는 세 뿌리를 조심하라고...
혀뿌리..
발뿌리..
거시기뿌리..
그거 조심하지 않으면 패가망신한다고 어른들이 신신당부 하셨다.
이만이!
남자가 끝까지 비밀을 지켜야지..
그리고
오리발을 내밀어야지..
그걸 실토하다니 참 한심한 친구다.
불으나 안 불으나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여자라도 보호해야 되는 거 아녀.
그게 남자의 의리여~^^
한심하다 못해 두심이 석삼이다.
그랴서 졸지에 세자비는 사가로 추방되었고 방석이는 졸지에 새장가를 가게 되었다.
이조 전서 심효생의 열여섯 살 딸에게...
이를 우리는 사자성어로 뭐라고 하나?
전
화
위
복.
헌 마누라 버리고 새 마누라 얻었다^^♡
신덕왕후님,
속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완전히 뒤집어졌으리라.
속이 가지런해야 오래 사는데 강씨는 그만 태조 5년 1396년 8월 15일 첫부인 한씨의 뒤을 따라 하느님과 인터뷰차 떠나게 된다.
우리의 8.15 해방처럼 속세의 모든 굴레를 벗고 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갔다.
이성계에게 두 아들 부탁을 신신당부 하면서...
그러나 2년 후 1398년 8월 26일 제1차 왕자의 난 때 강씨의 두 아들은 강씨의 뒤를 따른다.
엄마 찾아 삼만리가 아닌 황천 길로... ㅠㅠ
슬프다.
비정스럽다.
그깟 권력이 뭔지...
강씨 묘는 정릉에 있다.
죽어서 방원이에게 철저하게 응징 당한다.
죽어서도 편히 못 있고 왔다리 갔다리 하고 묘에 썼던 돌은 광통교 공사에 물구나무로 세워졌다. 군대에서 원산폭격(?)하듯이.
"여자들이 이 말을 이해할까?"
좀 심했다.
아무리 미워도 작은 엄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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