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유머방


[소련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물대고 있는 동프로이센 독일여자들, 어쩌면 저 중에 등을 보이고 있는 비교적 젊고 이쁜 여자는 '자신의 프랑스 애인의 보호'를 기대해서 도망가지 않는지도 모른다. 저 정도 미모라면? 당시 동프로이센에선 프랑스 남자 애인이 없는게 이상했기 때문에...! 하지만 이들도 곧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가야 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자신이 최대 4년간이나 몸과 맘을 다 바쳐 사랑했던 그 프랑스 남성들이 저희들을 전혀 사랑하지 않고 단지 육체만을 바란 바람둥이였다는 사실을 금새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후진국 여자에게 진정한 사랑을 하니???~ 골빈 결혼한탕 욕심바란 후진국의 골빈 여자들아. 냉수 먹고 속 좀 차려라! 하긴 속차려도 이땐 이미 늦은 때가 아니었을까?]
http://www.yes24.com/24/Goods/7347489?Acode=101
이런 소재인 독일 처녀와 프랑스 포로 남자의 사랑을 다룬 소설 (실화임).
1944년 말엽... 이 동프로이센엔 무려 50만에 달하는 프랑스군 포로들이 농업노동자로 끌려와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히틀러 군대는 프랑스를 1940년 식민지화하자 거기서 포로로 잡힌 200만 프랑스군대를 일부(예비군들)는 고향으로 돌려보냈지만, 정규군과 장교들은 반란을 염려하기도 했고, 독일 본국에 독일남성들이 전쟁터로 나가 남성노동력이 모자라자 그 공백을 때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죠. 특히, 동프로이센 지방엔 남자일손이 왕창 필요한 농삿일 공백지대였고, 또 독일서부 루르 공업지대나 알자스로렌 등 석탄생산 지대로 보내면 거기는 프랑스땅 바로 옆이라 고향으로 탈주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기 독일에서 제일 0순위 촌구석인 '동프로이센 지방에 선진국 남성 50만이 징용와 있으니?'
[골비고 허파에 바람 잔뜩 든 후진국 독일의 농촌녀들이 그들에게 반해 선진국 사람과 결혼해서 프랑스 파리에 가서 살고 싶은 욕심에 처녀 유부녀를 막론하고 온통 프랑스 포로들과 불륜 바람?]
이 일어났다는 겁니다...!(영화 '양철북'을 보면 당시 이 지역 독일녀들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누렸는지 알수 있다.)
원래부터가 프랑스가 독일보다 훨씬 일류국가기도 하지만???(지금까지도 그렇긴 하지만) 그 후진국 독일에서도 제일 후진 지역 여자들이 선진국 짱짱한 청년들을 50만명이나 봤으니 홰까닥 반하지 않으면 이상하죠??? 엉큼한 여자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꺄아, 정말 멋지다!! 저 프랑스 청년들, 우리 독일남자들하곤 비교도 안돼."
"아이구, 저런 남자 하나만 애인으로 만들수 있다면, 내 간이라도 빼주겠어."
이런 독일 골빈녀들의 감탄에 찬 환호성이 당시 동프로이센에선 프랑스 포로들 수용소 담장 너머로 그칠 날이 없었다니...! (2차대전 야사에서 참고) 요즘 이 나라에서도 가수나 운동선수들 거처나 연습장 너머로 이런 미친 여자들의 환호성이 그칠 날이 없듯이...!
"인간이란, 남녀를 불문하고 저보다 재산 지식 체력 소속 출신성분 등이 고등한 존재하고 결혼하고 싶어한다. 이걸 좋게 말하면 [보상심리]고, 나쁘게 정직하게 말하자면 [도둑심보]라고 한다. 공부도 운동도 못하는 못난 여자가 공부도 운동도 못하는 똑같은 못난 남자 좋아하는 법이 없고, 몸이 더럽고 여성편력이 많은 바람둥이 남자가 역시 똑같은 몸이 더럽고 남성편력이 화려한 공중변소 여자를 싫어하는 이유도 이런 거 아닌가?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들은, 누구보다 자기자신이 제일 밉고 싫다!!!]"
(인기에니인 '도라에몽'에서 주인공 진구가 이슬이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런 거? 워낙 머리가 나쁜 애가 머리가 좋은 애를 도둑심보 본능상 좋아하기 때문?? 그래서 이슬이하고 결혼하고 싶어 아래 동영상처럼 '온갖 비겁한 수'까지 써가면서 별 짓을 다한다.)
후진국 독일 농촌에서 감자나 캐고 밀이나 베다가 죽고 싶은 여자가 어딨습니까? 원래 여자들이란, '골빈 결혼 한탕주의(신데렐라 정신)'에 너나나나 몽땅 물든 동물들인데?
당연히 하루아침에 허파에 바람들어 저희 후진국 독일남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선진국 프랑스 남자 하나 잘 꼬셔 인류최고의 도시인 파리에 가서 살고 싶은 맘이 들 수밖에!!~(여기 끌려온 프랑스 정예인 정규군이나 장교들은 당연히 십중팔구 파리 출신들)
{주 : 아마 지금 이 한국에서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붙어 기적적으로 한국이 일본을 이기고 일본을 점령하고서, 일본군 포로 50만쯤을 강원도(아마 동프로이센을 한국으로 잡으면 이 정도 지역)쯤에 끌고 와 있다면? 강원도 한국 여자들이 그들에게 반해 그들에게 막 돈주고 몸주질 못해 안달나는 역겨운 불륜사태가 거대 쓰나미처럼 발생하지 않을까? 아니, 그런 거보다 더 현실적인 걱정은? 머잖은 통일시 북한여자들이 거기 들어온 남한남자들(근로자, 병정, 교사들)에게 반해 서울가 살고 싶은 욕심에 막 불륜사태가 나서 여자들끼리 남자두고 칼부림 나는 거 아닐까? 그러니 남북통일이 또 겁난다. 안 그럴 거 같은가??? 만약 안 그런다는 사람은 인정하기 싫은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우기는 새빨간 거짓말쟁이에 불과하다!}
결국, 그래서 골빈 독일 동프로이센녀들은 이렇게 프랑스남자들에 돈주고 몸주고 별 아양 다 떨면서 저하고 결혼해줄 것을 빌면서 사랑을 구걸했지만???
프랑스 남자들이 미쳤습니까? 저희 나라 잡아먹은 독일여성과 결혼하고 싶은 맘도 물론 없겠지만, 4년간 저희 나라를 식민지로 부린 독일녀를 배우자로 삼아 돌아갔다간 이웃사람들에게 맞아죽을 걸요? 가족들하고도 아주 의절당할 것이고.
"이 놈이 미쳤냐? 우린 본국에서 독일 학정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넌 독일가서 독일년 색시 차고 왔어? 어림없는 소리 마라. 내 눈에 흙 들어가긴 전엔 그런 여자 우리 집에 들일 수 없다!(부모님)"
"네 놈이 사람이냐? 우리 나랄 잡아먹었던 독일년하고 결혼해서 여기 돌아와 살겠다고? 독일년하고 결혼했으면 너도 독일넘이 되어서 아주 거기 눌러앉지 무슨 염치로 여기 파리에 살아 돌아왔어?(친구들)"
"우린 여기서 독일군인놈들하고 싸우다가 왕창 죽고 다쳤는데, 넌 고작 몇 년간이나 독일년 가랑이 사이에 헤롱대면서 빠져있다가 전쟁 끝나니까 고 년 데리고 와서 여기 살겠다고? 인간이면 염치가 좀 있어봐라. 이 철면피야!! (이웃들)"
당연히 이러겠죠??? 다른 프랑스 사람들이 펄펄 뛸 수밖에! 이런 반발 뿌리치고 독일색시 들일 프랑스 남자가 있을 거 같아요?
더구나, 프랑스 남자들 역시도 미쳤다고 불학무식하고 본국 프랑스녀들보다 훨씬 못 생기고 매력도 없는 독일 촌여자 들여다 호강시켜 준답니까???
당연히 동프로이센이 소련군에 함락되자마자 모조리 몇년간 몸을 섞고 살던 여자들에게 [일촌삭제 안면몰수] 하고 달아났고, 결국 동프로이센녀들은 다 대부분 소련군 위안부로 공중변소화되고 말았죠!~
쪼까 비정하긴 하지만... 솔직히 어떤 남자가 저 상황에서 적국녀에게 지조지킨답시고 미개한 후진국 여자를 위기를 무릅쓰고, 거지처럼 하나도 지참금 한푼 혼수 한개 못 가져올 패망국 여자를 자기 마나님으로 들인답니까?? 맛이 간 쓸개없는 골통남자 아니고서야...! 아마 한국남자들은 저런 상황이라면 더 저러지 않을까요?
{주 : 아래 참고내용 중에서 '동프로이센에서 유독 그처럼 많은 소련군 강간 사건이 발생한 이유도?' 기실은... '동프로이센 젊은 여자들이 자기 '프랑스 서방님'만 믿고 피난을 안 갔다가 그 남자가 하루아침에 배신하고 도망치는 바람에 소련군에 그대로 노출된 탓이 제일 컸다나...?! 물론 지리적으로도, 제일 먼저 소련군에 점령된 독일영토였다는 이유도 어느 정돈 있었지만...!}
동프로이센의 비극 2차 대전 2008/01/30 18:37
http://blog.naver.com/rome0477/150027378322
그들이 그렇게 선택했어!
동부전선 한 독일의 기술자가 자신의 가족을 스스로 총을 쏴 죽인 모습이다. 어떻게 가족을 죽일 수 있는가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아내로 보이는 여자의 자위에 누워 있는 두 아이는 하나는 이제 채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싶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도 더 어리다. 하나같이 귀엽게만 보이는 저런 아이들을 두고 아버지가 되어 어찌 무참히 총으로 죽일 수 있었는지...
그러나 당시 독일의 동프로이센으로 진격해 들어온 소련군은 그동안 자신들의 영토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자까지 쳐서 철저히 갚아주고 있었다. 강간과 살인과 약탈과... 다섯 살 넘은 여성은 70넘은 노파까지 하나같이 소련군에 의해 강간당하고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의 부인도 그때 강간당한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끝내 자살했다던가? 어떤 사람들은 문에 못박혀 천천히 고통 속에 죽어가야 했고, 어떤 사람들은 나무에 목이 매달려야 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무참히 총격을 가했고, 심지어 장난삼아 탱크로 깔아 죽이는 일들마저 있었다. 소련군 당국의 묵인 아래 복수심과 전장의 광기에 휩싸인 소련군에 의해 수십 만의 여성들이 강간당하고 그보다 더 많은 민간인들이 처참하게 죽어갔다. 살아남은 여성들도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으니, 겨우 살아남은 여성들 또한 원치 않는 임신으로 많은 사생아들을 낳았으니 그렇게 태어난 이들 또한 당시의 처참함을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소련땅까지 끌려가 강제노역에 집단강간에 시달리다 하나둘 죽어갔고. 과연 그러한 상황에 저 아버지는 자신의 자식을, 자신의 아내를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지켜줄 수 없는 무기력한 가장으로서 그는 과연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렇게까지 해야겠느냐면서도 한 편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아마도 나 역시 다를 바 없는 남자인 때문일 것이다.
원래 동프로이센은 튜튼 기사단이 개척한 영지로서 독일제국을 통일한 프로이센 왕가가 대대로 대관식을 올리던 쾨니히스베르크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쾨니히스베르크는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칸트가 살았던 도시다. 그런데 유서깊은 독일의 영토였던 이 동프로이센에 1945년이 지나고 나면 400만이 넘었던 독일인들은 고작 13만 정도만이 겨우 남게 된다. 나머지는 죽거나 아니면 소련군을 피해 도망치거나 아니면 새로운 점령군에 의해 쫓겨났다. 쾨니히시베르크 역시 지금은 카리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북해에 면한 러시아의 유일한 영토로 남아 있다. 유서깊은 독일의 도시가 이제는 독일인이 오히려 소수인 완전한 러시아의 도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비극은 동프로이센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베를린을 점령했을 때도 소련군은 똑같이 강간과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미 전쟁이 끝난 상황이라 장차 미국을 위시한 서방진영과의 대결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독일인의 반감을 자극해봐야 좋을 것이 없으니 그래도 베를린에서는 소련 정부의 지휘 아래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봐야 역시 10만 명이 넘는 독일 여성들이 강간당하고 또 다시 수십 만의 독일인들이 학살당했지만.
물론 소련군만이 독일인을 증오한 것은 아니었다. 수 년 간 독일군의 점령 아래 많은 것을 파괴당하고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폴란드인의 복수심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자국 영토 안에 대대로 살고 있던 독일인은 물론 새로이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된 동프로이센에 거주하고 있던 독일인들도 가차없이 추방했다. 독일을 침공하기 전 독일에 병합되었던 체코의 주테덴란트에서도 수만 명의 독일인이 학살당하며 다시 수백 만의 독일인들이 독일의 영토로 추방되었다. 덴마크에서도, 네덜란드에서도 전란을 피해 몰려든 심지어 어린아이들에 대해서까지 현지인들은 증오심을 감추지 않았고 추위와 굶주림속에 또다시 수십만이 죽어가야 했다.
다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그 어린 아이들이, 그 힘없는 노인들이, 그 가엾은 소녀며 여인들이 무슨 죄가 있어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해야 했느냐고. 실제 독일인 가운데서도 2차세계대전의 만행을 반성하면서도 끝내는 모든 책임을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에게 돌리는 사람들을 적잖이 보게 된다. 심지어 제 3제국의 요직을 거쳤던 군장성 가운데서도 자신의 책임마저도 모조리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의 악덕으로 돌리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독일인의 전후처리에 대해 감탄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면 그 히틀러는 누가 그 자리에 올렸는데?
그러면 또 그러는 사람이 있다. 모든 독일인이 히틀러를 지지한 것은 아니라고. 그러나 민주주의란 원래 다수의 선택에 따라 그 선택에 동의하지 않는 더 많은 소수까지도 함께 책임을 지는 제도다. 군대에서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연대책임이라고. 국가라는 게 누구를 지지한 사람 따로, 다른 누구를 지지한 사람 따로인 게 아니다.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있기에, 하나의 정부의 아래 있기에, 결국은 어떠한 결과를 선택하든 그 결과에 모두가 같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아니라면 그러한 선택을 한 다수를 몰아내고 결과를 뒤집을 밖에. 아니면 아예 따로 분리해 독립을 하던가. 그렇지 않은 한에는 결국 그 나라에 함께 살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도 책임이 돌아간다.
민주주의 아래에서 기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권한다고 자신의 책임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다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권이란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그에 승복하겠다는 선언이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그에 반대하지 않으며 기꺼이 승복하고 따르겠다는 잠정적인 지지의 선언이다. 왜?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나머지는 그 결과를 따라야 하는데, 기권자들은 그 결과에 대한 어떠한 의사표시도 하지 않았으므로.
당시 독일인들에게는 여러가지 선택이 있었다. 첫번째는 히틀러같은 또라이를 권력의 자리에 올리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히틀러가 미친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미친 전쟁을 일으키고서도 더 미친 짓을 벌이지 않도록 스스로 견제하고 궁극적으로는 권력의 자리에서 내몰았어야 했다. 실제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히틀러에 반대해서 지하운동을 벌이고 심지어는 히틀러를 암살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그들은 독일인으로서 독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에 죽을 것을 각오하고서 히틀러와 그 추종자, 나아가 미쳐 돌아가는 독일을 상대로 싸웠었다. 물론 그 대부분은 목숨을 잃거나 수용소에 보내저 강제노역을 당해야 했다. 그런 이들이 있는 반면 나머지는 설사 히틀러를 반대했다 하더라도 침묵하거나 혹은 동조했다. 유대인을 밀고하고, 유대인에 테러를 가하고, 전장에 나간 이들은 그들이 나중에 당하게 될 살인과 강간과 약탈을 적의 민간인을 상대로 자행했다. 그 결과가 전쟁 막바지 더 이상 그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사라졌을 때 당하게 된 그 끔찍한 비극들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러나 아이들에게도 죄가 있다. 바로 당시 히틀러와 그 추종자, 그들을 지지하여 권력의 자리에 올린 이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었다는 죄였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 태어나 그 비극적인 시대에 그것을 어찌 할 힘이 없어 막지 못했다고 하는 죄였다. 아이들의 죄가 아니라 그런 선택을 하고 그런 선택을 막지 못한 어른들의 죄였다. 그 어른들의 죄를 단지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른들이 치러야 할 죄의 댓가를 죄없는 아이들까지 치러야 했던 것이다.
역사란, 역사의 그 엄정한 법칙은 이처럼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결코 피해가지 않는다. 채 말도 배우지 못한 아이라도, 갓 태어난 어린아이라도, 아직 태어나지 못한 테아에 불과하다 해도, 아무 죄도 없는 그 아이들에게까지도 책임이 돌아간다. 일은 어른들이 벌렸어도 연좌의 책임은 결국 아이들에게까지 돌아가 함께 나누어 지게 된다. 나누어 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치의 무서움이다. 그것이 역사의 무서움이다. 그것이 내가 지금 행사하는 작은 권리의 무서움이다.
가끔 자신이 투표하는 후보자의 공약조차 살피지 않고 표를 던지는 사람들을 본다. 공약이 뭔지도 모르고,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도 모르고, 그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살피지 않은 채 무작정 표를 던지고 보는 사람들을 본다. 심지어 공약을 알아도, 그래서 그 공약에는 반대해도 그래도 사람이 좋으니 투표한다는 그런 사람마저 있다. 그 한표가 자신만이 아닌 이 사회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리라는 무거운 책임감 없이 그저 충동에 맡긴 채 값어치 없이 표를 말 그대로 던져버리는 사람들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장 루돌프 헤스 - 회스가 더 정확하려나? - 의 회고록을 보면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은 유대인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독일인 병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유대인 수용소라면 나치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친위대가 주로 배치되던 곳이다. 과연 그 독일병사는 친위대에 자원하면서 자신의 아내가 유대인이기에 죽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외치는 히틀러와 나치를 추종하여 친위대에 자원하면서 그 증오가 자신의 아내를 죽일 것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
아마 당시 독일인 전부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심지어 사회주의에 대항해 히틀러를 앞잡이로 내세우려 했던 독일의 기득권들 역시도 히틀러가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지, 그로 인해 독일이 장차 어떻게 되어 갈지, 전혀 진지하게 깊이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충동에 못 이겨, 그저 눈 앞의 증오에 떠밀려, 자신을 비롯 모든 독일인을 나락으로 밀어넣을 한 표를 절대 주어서는 안 되는 괴물에게 주어 그를 권력의 자리에 올렸을 것이다. 그 표의 무게를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물론 지금도 그들은 그 표의 무게를 제대로 아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지금도 말한다. 히틀러가 아니었다면. 히틀러와 나치가 아니었다면. 히틀러와 나치가 그런 짓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을 선택한 것이 자신들이며,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지지하거나 최소한 방조한 것이 자신들이었던 것을 잊고 있는 소치다. 과연 우리는 어떠할까? 직선제를 쟁취한 지 벌써 20년, 우리들은 우리가 행사하는 그 작은 한 표의 무게를,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문득 드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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