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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게시판

심심하재[구두 굽을 높이는 심리]

심심하시죠.

무의식 속에 무비판,비평은 개,돼지 입니다.

여자의 Y.존을 본 남자와 여자의 엉덩이를 보는 남자는 어떤 차이가 날까요.

가슴을 부풀리는 여성, 그 가슴을 쳐다보는 남자는 어떤 느낌일까요.


네, 

이런 문제 의식을 일으켜 혼자 누워서 눈을 감고 생각하는 것이 비평,비판인 것입니다.

여기 좀 모자란 사람들은 비평,비판이 상대 진영이나 욕하고 헐뜯고 증오하고 적개심 품고 하는, 그러는 것으로 대단히 착각하는 참 안된 인간들이 많습니다.


펄럭이는 깃발을 보면서 스님들이 대화를 합니다.

"깃발이 펄럭인다."

"바람에 깃발이 펄럭이는 거야."

두 스님은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두고 바람 때문이라느니 깃발 때문이라느니 

옥신각신하고 잇을 때,

육조 혜능이 그곳을 지나가자 두 스님은 혜능에게 누구 말이 맞는지 묻습니다.

바람도 깃발도 아닌 마음이 흔들린다 말해줍니다.

듣는 순간 퍼뜩 알아들으면 평소 음미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고요.

전혀 감이 오지 않아 이해 불가면 생각 없이 사는 인생입니다.


여자 Y존, 엉덩이, 젖가슴 등을 보는 이유는 느끼기 때문입니다.

느끼지 않으면 Y존 엉덩이 젖가슴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몸으로 보입니다.

위의 내용은 그런 얘기지요.

여자가 젖가슴을 부풀리는 심리와 그곳을 쳐다보는 남자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부라자와 피임약 그리고 비키니, 미니스커트, 스타킹, 레깅스 등등의 키워드는 자유 그리고 평화 입니다.


젖가슴을 부풀리는 심리는 S 라인 때문이죠.

그런 젖가슴을 쳐다보는 남자의 심리는 안목 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생각하는 복합적 심리의 시선이라고 할까요.

자유와 평화의 상징이죠.


하이힐이 처음 등장한 유래는 다들 잘 아실 테죠.

프랑스 도심에 모여 살던 당시 오물 시설이 미비해 거리에 오물이 많아지다 보니 여성들이 즐겨 입던 드레스가 오물에 닿지 않으려 신을 높이면서 시작된 것이죠.

중국의 '전족' 과는 상반되는 것이지요.


하이힐의 유래라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밸런스 때문이라고 봅니다.

유래는 그랬을지라도 오물 시설이 해결되고 난 후에도 오늘날 대 유행을 넘어 필수 불가결 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남 여 신체적 밸런스 때문이지 싶습니다.


남자 역시 신체적 결함을 만회하려 적절한 키 높이를 위해 굽을 높입니다.

연예인 쪽에서 자주 눈에 띱니다.

아무래도 연예인은 이미지를 먹고사는 직업이라서 당연하다 봅니다.

여자나 남자나 작은 키를 높이려다 보면 뒷굽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굽을 높인 후 뒷굽을 따로 높이기 때문에 최대 15cm가 넘습니다.

과학 발전 소재 개발에 따른 결과죠.

아주 가볍고 편해서 꽤나 만족스럽습니다.

너무 높으면 오직 걷는 용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작은 키 콤플렉스

남자나 여자나 마찮가지 입니다.

느꼈기 때문이지요.

키 큰 사람 곁에 서면 마음이 어두운 색을 띠면서 갑갑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심지어 벽을 바라보는 듯한 생각마저 듭니다.

서로의 표정을 통한 무의식적인 사회성 대화가 안되기 그럽니다.

오랜 세월 자연을 보고 느끼면서 진화해온 마음이라서 사람끼리 서로의 표정을 마주하면서 무의식 속 마음이 동해야 하는데,

어둡고 갑갑해 느끼는 거죠.


대화랍시고 하려면 고개를 쳐들어 상대의 표정을 봐야 하니까

숭상하는 기분과 상대의 업신여김이 생겨 들어 열등감으로 편린 되어 느껴지는 마음을 다독여 내려는 심리가 항상 나의 사회성에 점검이 됩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죠.

부부간이나 이성 간의 상호성 면에서 아주 심하게 심각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보통 키가 작은 남자 부부는 남자가 모든 것을 내려놓든가

아주 강력한 가부장적이 되든가 

내가 만나본 키 작은 남자 부부는 십중팔구 여자가 8할 정도 불만이 많으면서 가정 장악력도 그만큼 가지고 살더군요.

반대로 아주 강력한 가부장적 남자 위주의 가정은 아내 분이 내색 못한 속이 끓어 원망만 가득한 가운데 이중성을 띱니다.

남편 앞에서의 아내와 남편 없는 시공간 아내의 모습은 다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사는 키 작은 남자는

육신의 정을 뛰어넘은 정신의 소유자라서 작은 키 남자와 살아주는 아내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것이어서 사람대 사람간의 인류애로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아요.


가부장적인 자기 위주의 가정의 삶을 고집하는 남자는

아무래도 힘의 논리다 보니 자꾸만 오랜 과거 흔적들의 성질이 가정 내 감돕니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여자가 어디서 감히, 남자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해야 하는 게 여자, 시선도 곱지 않습니다. 어허 여편네가 어디서 감히 눈을 똑바로 떠, 말투도 명령조나 지시조 입니다. 야 저거 가져와, 이사람아 빨리와봐, 배고프다 빨리 밥먹자 등등..


어떤 가정의 자녀가 수준이 높을 것인가.


이야기가 많이 샜네요.

남자나 여자나 굽이 높고 뒷굽은 거기서 10cm 더 높여 신는 것은 처음엔 아주 불편합니다.

까딱하면 발목이 삐끗해 삡니다.

뛰면 바로 신발이 앞서 달려갑니다.

아주 익숙해지면 신발을 벗고 실내에 들어설 적 푹 꺼지는 느낌이 들면서 바닥이 가깝게 여겨집니다.

작은 키는 나름대로 움직임의 멋이 있습니다.

그걸 채 경험할 사이도 없이 굽높은 신발을 신어 고유한 매력은 어느새 사라지고 점점 콤플렉스 진정시키기에 몰입하게 됩니다.


거기다가 머리까지 대머리라면

이젠 변명과 탓을 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이 비뚤어지기 시작합니다.

조상 탓 하면서 자기 자식을 생각해 변명으로 돌립니다.

대머리 콤플렉스는 극단적입니다.

아주 심한 사람과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으로 중간이 없습니다.

극과 극입니다.

옆 머리를 길러서 대머리를 감싸는 사람.

가발을 쓰는 사람,

뭐, 온통 머리에 신경 씁니다.

왜 그럴까요.

무슨 심리일까요.


여자는 이마나 얼굴 주변의 털을 아주 오래전부터 뽑아왔습니다.

얼굴에 털이 없는 게 미인 입니다.

고운 게 여자의 특별한 매력이니까요.

겨드랑이 털도 뽑는 독한 여성도 있습니다.

예쁜 옷을 입기 위해서 지요.

팔 다리 털도 용서 없이 전수 뽑아냅니다.

남자가 그러면 여자는 징그럽다 그럽니다.

남여가 처음 만나 손을 잡고 얼마 후 뽀뽀를 하게 되면 여자는 쑥스러워 남자의 털에 따갑다고 합니다.


대머리가 열등감인 남자의 심리는 위에서 말한 여자의 심리에서 찾아보면 됩니다.

남자의 매력은 털입니다.

야성이죠.

어느 날 갑자기 거울 속 남자가 낯설게  보입니다.

콤플렉스, 열등감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지나치게 의식하여 병이 된 겁니다.

안목이나 눈썰미는 감각 기관과 신경계의 콜라보 입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 혀로 맛을 골라내는 사람 등..

이미 그렇게 살도록 굳혀진 변하지 않는 기억판 입니다.


문제는 내 대머리가 모지리 바보로 보이거나 나사 빠진 놈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순전히 자기의 타고난 감각 기관 신경계로 판단을 내립니다.

이때부터 남들이 보면 이걸 어쩌나 얼마나 비웃을까,

얼마나 모자라게 보일까.

자학에 빠집니다.

거리를 지나가다 대머리 남자가 보이면 갑자기 존나 창피합니다.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워 더이상 안보려 의식해 피해버립니다.

사실은 마음이 그러는 겁니다.

무문관이 열리지 안해서 그럽니다.

삶이 처음부터 주변을 온통 의식해 살아온 거짓 삶이라 그 거짓에 홀려 그럽니다.

요즘은 과학의 발전으로 의학, 의술로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습니다.

키 문제도 의학의 발달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여자 Y 존이 눈에 들어오면서 시선이 고정된다면 느끼는 것입니다.

거기서 약간 더 들어가면 망상이 시작됩니다.

망상이 커지면 여자를 바라보던 시선 속에 자연스러운 사람의 여자는 사라집니다.


자유, 자연스러움은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나 온갖 종류의 주의에서도 앞세우는 체제 우월적 상징입니다.

자유 속에는 이런 게 본질입니다.


따스한 봄 볕에 노인 회관 담장을 기대고 앉아 있던 노인들 앞에 젊은 아가씨가 지나갑니다.

노인 모두는 아가씨 뒷모습 따라 고개가 돌아갑니다.

아가씨가 사라지고 나면 한마디씩 합니다.

입맛을 짭짭거리는 노인부터 아주 노골적인 성희롱 발언을 합니다.

안 변해요.

나이가 변화 시켜 주는 게 아닙니다.

수준이죠.

더 높은 정신을 몰라요.

자기 것으로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압니다.

절대 아니거든요.

독사가 먹으면 독, 젖소가 먹으면 우유 같은 것이지요.

그런 느낌적 감각엔 삶을 살아가는 온갖 기운이 포함되어 있어서 어느 하나만 쏙 빼내서 고칠 수가 없어요

여기서 우울증이 생겨나고 모든 의심병이 만들어지고 온갖 감정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변하지 못해요.


구두 뒷굽을 너무 높이면 공기층의 다름도 느껴요.

시선에 따른 느낌도 보여요.

허상이죠.

마음이죠.

세상은 아무 변화가 없어요.

남들이 나를 나처럼 의식하고 있을 것이라는 망상이죠.

남들은 관심 없어요.

변한 모습에 인사 맨트를 날릴 뿐 

세상은 어제와 같고, 주변 사람들은 변한 내 모습에 인사해주는 것 뿐이죠.

세상은 늘 그대로 예요.

괜히 자유만 빼앗기며 사는 거죠.


레깅스 여자 엉덩이 하체와 볼록한 둔덕.

남자나 여자나 호르몬이 본능을 재촉합니다.

성장해 성체가 되면 호르몬 작용에 의해 남자, 여자 본능를 과시하기 시작합니다.

잘 이해되는 것이 동,식물 그중에 조류를 보면 알기 쉽죠.

레깅스는 잡아주는 느낌이 좋아 입는다고 해요.

내가 봐도 그래 뵈요.

타이트 하다는 것은 빈틈없이 쪼이는 것이니까

여자의 신체가 적나라하게 들어나죠.


구인사 천태종에서는

감각 기관과 신경계를 성인 차원 수준 높게 하려 닦습니다.

스님 생활 어느 정도 하게 되면 사물의 본질을 찾아 들어가려 싸우죠.

천태종의 깨달음 무념 무상 무의 이니까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수준' 을 높이려는 인간의 행위인 것입니다.


레깅스 입은 여자는 '몸' 에서 느끼는 느낌이 잡아주는 느낌이라 기분이 괜찮다는 겁니다.

레깅스 입은 여자가 산행을 할 때 바로 뒤따라 올라가는 남자는 기분이 어떨까요.

여자 엉덩이가 남산 만해 보일 겁니다.

거기도 가끔 비칩니다.

거기 까지 입니다.

큰 숫퇘지를 뒤에서 따라가면 엉덩이가 씨룩거리고 붕알이 큼지막한 게 보입니다만

거기 까지거든요.

레깅스 입은 여성의 적나라한 하체에 느낀다면

이때부터 관음증이 됩니다.

내 더럽혀진 욕정의 시선이 바라보는 것이지요.

당장 정신과에 가서 교정을 해야 뒤탈이 안납니다.

안그러면 관음증이 망상증과 결합해 변태 성향으로 깊어집니다.

그리 되면 도촬을 한다든가

떠올려 변태 성향 망상적 욕정을 채우게 됩니다.


마음이 흔들이는 것이지요.

레깅스 입은 여성의 적나라한 볼륨감잇는 엉덩이, 둔덕, 뒤에서 보일랑 말랑하는 음보가 그러는 것이 아닌 마음이 그러는 것입니다.

제법 많은 덜떨어진 사람들이 그럽니다.

여자가 꼬리치니까 남자가 그러는 거지 그러니까 여자 잘못 때문에 남자인 내가 그러는 거지.

남탓, 핑게를 댑니다.

이런 사람은 무비평,비판적인 삶을 살아온, 살아갈 가짜 인생입니다.

진실하게 살아가는 진짜 인생은 자기 자신을 바로잡아 극복해 냅니다.

웅덩이에 빠진 것은 자기 소홀입니다.

웅덩이에 빠져 놓고 웅덩이를 탓하거나 핑게를 대면 자기 자신의 소홀함은 고칠 마음이 없다는 얘깁니다.

발전이 없지요.


20년 전만 해도

여자가 타이트한 청바지를 입어 엉덩이가 터질듯 하면 엉덩이를 손으로 때리는 남자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랫다가는 큰일이 납니다.

40년 전에는

콩나물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여자 몸에 밀착해서 딸딸이 치다가 여자 엉덩이에 싸는 놈들도 많았었습니다.

여자가 차에서 내려 휴지로 떼어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은 여자가 가만 있지 않아요. 

소리치거나 귀싸대기를 날리든가 변태새끼라며 온갖 욕을 해가며 후려 팹니다.

기사한테 경찰서로 가라든 ...

시대정신 못쫓아가 덜떨어진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게 그의 수준이라서 그럽니다.

더 높은 고상한 품격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위 두 이야기는 범죄 유형을 언급한 것입니다.


수준을 높이는 것과 좋은 학교나 사법시험을 통과한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한창 기억 좋은 나이에 시험 잘 쳐서 입학하거나 통과해봤자 

본래의 수준으로 회귀합니다.

본래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면 그 증명서로 더 나은 수준을 높여가지만,

본래 수준이 낮았던 사람이 증명서를 따면 원래 낮은 수준에서 증명서를 활용하기에 저급하고 용렬하게 사용해 사회를 온통 저질스럽게 만들어 놓습니다.


자 오늘 이야기 길었습니다.

토요일 저녁 한산한 시간에 읽어 보시라고 길게 씨부려 봤습니다.

공부하면 남 주나요.

자식이나 손주한테도 영향을 미칩니다.

세상 공짜 없습니다.


껄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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