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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게시판

박정희시절 금지한 가요와 금지 이유들...코멘트2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을 만들고 본격적인 독재의 칼날을 휘두르던 시대에 우리 대중음악계는 한 마디로 암흑의 시대였다.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고 문화공보부가 ‘공연활동의 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금지곡이 쏟아졌다. 국가안보와 국민총화에 악영향을 주거나 외래풍조를 무분별하게 도입 또는 모방한 노래, 패배·자학·비관적인 내용, 선정·퇴폐적인 노래들은 무조건 퇴출 대상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독재의 칼을 휘두르던 시절이었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는 있어야 금지곡 리스트에 올릴 수 있는 법. 그러다 보니 공안당국이나 문화공보부 산하 한국공연윤리위원회가 만든 금지곡의 이유들 중에는 참 황당한 것들이 많았다.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지금은 명곡 대열에 올라있는 신중현의 ‘미인’은 내용이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그가 작곡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반정치적이라는 이유였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가 퇴폐적이고, ‘사랑도 거짓말 눈물도 거짓말’이 반정치적이라면 요즘 노래들은 모두 퇴폐적이고 반정치적인 노래들 뿐이다. 일설에 의하면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 방송 직후 프로듀서가 ‘거짓말이야’를 트는 바람에 금지곡이 됐다고도 한다. 신중현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정권에서 국민 통합적인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자 그의 노래가 무더기로 금지곡이 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조국 산천이 아름답다고 노래한 ‘아름다운 강산’까지 금지곡 딱지를 ?L였다.

한대수의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연상케 해서,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허무주의를 조장한다고 해서, ‘늙은 군인의 노래’는 군인들의 사기를 저하하게 한다는 이유로 각각 금지곡이 됐다.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는 노래에서 말하는 행복의 나라가 북한이 아니냐는 이유로 금지곡에 올렸다.

이장희가 부른 ‘그건 너’는 ‘모두들 잠들은 고요한 이 밤에 어이해 나홀로 잠못 이루나’는 노랫말을 두고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루는 이유가 무엇이냐?”면서 금지곡 딱지를 붙였다. 배호가 부른 ‘0시의 이별’은 통행금지 시간인 자정에 이별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금지시켰다. 혜은이가 부른 ‘제3 한강교’는 ‘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우리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가 문제가 되어, 송창식의 ‘왜 불러’는 장발단속에 저항하고, 공권력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금지곡 리스트에 올랐다.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의 주체가 장발단속 하는 경찰이 아니냐는 거였다.

이장희가 만들고 조영남이 불러 크게 히트한 ‘불꺼진 창’ 역시 쓸데없는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또 다른 이장희의 곡 ‘한 잔의 추억’은 ‘마시자 한 잔의 술’이라는 가사 때문에 금지곡이 됐는데 얼마전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술’만 들어가면 빨간딱지를 붙였던 사건이 연상된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10·26 사건으로 암살된 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지만 대중음악에 대한 탄압은 여전했다. 박정희 시해사건 현장에 있었던 ‘그때 그 여인’ 심수봉 역시 탄압의 대상이었다. 그가 부른 ‘순자의 가을’은 순전히 당시 영부인인 이순자 여사의 이름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금지 당했다. ‘참으면 이긴다’는 가사가 들어간 그의 노래 ‘무궁화’도 “참으면 어떻게 이긴다는 거냐?”고 시비를 걸어 리스트에 올랐다. 80년대를 대표하는 로커 중의 한명인 전인권의 ‘그것만이 내 세상’은 어처구니 없게도 가사가 전달이 안되고 창법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전인권이 불렀던 ‘사노라면’의 원곡인 쟈니 리의 ‘내일은 해가 뜬다’도 “그렇다면 오늘은 해가 안 떴다는거냐?고 시비를 걸어 금지됐다.

80년대 금지곡 리스트가 풍성(?)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데 있다. 대학가 시위현장을 중심으로 불려지던 ‘운동권 노래’들은 대개 구전가요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정권이 금지시킬 수 없는 영역에서 유통되고 불려졌던 셈이다. 당시에 많은 대중가요들이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로 불려졌지만 그러한 노래들이 대중적인 미디어에 등장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던 시대였다.

수많은 금지곡들이 해금된 건 19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민주화 덕분이었다. 그해 8월 문공부의 가요금지곡 해금지침에 따라 금지곡 186곡이 해금되었고, 뒤이어 방송 금지곡들도 차례로 규제에서 풀려났다. 1996년 사전심의제는 위헌결정을 받아 폐지되었고, 방송심의도 2000년 방송사 자체 심의로 전환됐다. 지난해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의해 자행된 ‘19금 딱지’ 사건은 지난 시대 많은 이들이 투쟁으로 일궈낸 자유도 여차 하는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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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또라이 새끼가... 수십년간 통을 하던 나라다...  상태가 저런데 뭔들 정상적으로 했겠냐...?

지금도 저 새끼가 안뒈지고 통을 하고 있다면... 세계를 뒤 흔드는 K-POP인 한국음악이 어찌 되었을꺼 같냐...?

 

한국발전....?   바랠걸 바래라.... 저 인간은 한국을 늪으로 끌고간 완전 미친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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