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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단상] 행복했으면 글 같은 거 쓰지 않았을 거야

정애남편 조회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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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책과 지성] 소설가 박경리 (1926~2008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한(恨)과 맞바꾼 한국문학의 대서사시



"무척 쌀쌀맞으시다던데. 질문 조심해야 할 거야"

1990년대 초반 소설가 박경리를 인터뷰하러 갈 때 문단과 언론계 동료들이 해 준 이야기였다.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거듭된 인터뷰 요청에 결국 승낙을 하던 선생의 목소리에는 표현하기
힘든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그렇게 꼭 와서 나를 만나야겠어요? 그럼 오세요"

나는 강원도 원주행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한 여인의 삶에 골몰했다.
박경리의 소설은 거대한 항거였다.

한 불운한 시대에 대한, 물신주의에 대한,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피맺힌 거사였다. 박경리는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다. 아버지가 조강치처인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여인에게 가버리자
소녀 박경리는 아버지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이른 나이에 배우게 된다.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결혼

을했지만 이번에는 전쟁이 그녀의 생을 할퀴고 지나간다. 서대문형무소로 끌려간 남편은

행방불명이됐고, 세 살짜리 아들마저 죽는다.

전쟁이 끝났을 때 폐허 위에는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세 명의 여인만이 남는다. 친정어머니
와 어린 딸, 그리고 작가 자신이었다. 그 막막한 상황에서 작가는 칼을 드는 심정으로 펜을 든다.
그것이 작가 박경리의 시작이었다.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742. 노년의 선생은 편안해 보였다.
텃밭에 심은 상추와 고추 이야기, 매일 집을 찾아오는 길고양이 이야기를 했다.

"난 내가 사마천이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썼어.
행복했으면 글 같은 거 쓰지 않았을 거야.
그 억장이 무너지는 세월을 한 줄 한 줄 쓰면서 버텼지"

소설가가 된 이후에도 선생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어지러운 세상은 선생과 불화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선생이 처음 소설을 들고 문단에 나왔을 때 그에게 가해진 남성들의 폭력은 유치했다.
그들은 박경리의 글보다 곱상하게 생긴 전쟁미망인이 등장했다는 것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이런저런 소문이 돌자 선생은 문단에 발길을 끊어버린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한 작품 '불신시대'는 바로 사회의 폭력에 시달리는
전쟁미망인 이야기다. 어린 아들의 죽음을 놓고 사후세계를 흥정하는 종교인 앞에서
주인공은 위패를 태워버리며 외친다.

"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어.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문학적 지명도를 얻은 이후에도 생은 순탄치 않았다. 외동딸인 김영애가 당시 유신정권의
공적이었던 시인 김지하와 결혼한 것이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선생은
손자를 키우며 사위 옥바라지까지 하는 운명에 처한다.

이 무렵 탄생한 작품이 바로 대하소설 '토지'다. 한이 하도 많아 웬만한 작은 칼이 아닌 큰
칼로 세상을 일도양단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최 참판 댁 4대에 걸친 가족사와 한 마을의 집단적

운명, 그리고 동아시아 역사가 담긴 대작 '토지'는 그렇게 탄생했다.

세월이 흘러 선생은 2008년 세상을 떠난다. 나는 그때 선생이 모 잡지에 발표했던 시가 떠올랐다.
원주 집에서 내게 들려준 이야기들이 시에 담겨 있었다.



<옛날의 그 집>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매일경제 기사입력 : 2018.05.11 15: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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