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시황

경제학자로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25년. 장기파동론을 발표한 이후다.
평균 40~70년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된다는 장기파동론을 주창.
전쟁이나 원천기술의 변화에 따라 경기 사이클의 큰 흐름이 변한다는
이후 슘페터와 프리만 등은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산업혁명(1771년)
철도ㆍ증기기관(1829년)
철강ㆍ전기ㆍ중공업(1875년)
석유ㆍ자동차(1908년)
정보통신(1971년) 등 신기술이 본격 확산되는 시점을 호황국면으로 해석했다.
시장주의 요소가 가미된 신경제정책을 입안하고 부농 육성책을 주장해 스탈린의 미움을 샀다.
1930년 체포. 감옥에서도 연구를 계속하던 그는
스탈린의 대숙청에 걸려 1938년 10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나이 46세.
가족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는 책 5권을 새로 저술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처형 49년 만인 1987년 소련은 그의 복권을 선언했다.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토로이카 덕분일 가능성이 높다.
2006년 봄 MIT 에서 새로운 장기상승파동의 시작이라고 했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그런데 모바일통신과 새로운 TV의 등장은 다시말해 IT기술의 혁신은
새로운 콘트라티에프파동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새로운 콘트라티에프파동이 형성될 려면
콘트라 티에프가 주장한 신기술.. 즉,
슘페터가 정의한 석유,자동차 그 후의 정보통신 보다는
연준의 재정정책과 신용팽창의 정도 그리고 시장이 그것을 이번에도 잘 받아 들이는가에
달린것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키친파동,주글라파동,콘트라티에프파동 모두가
케인스의 그늘 아래에 들어와있는 현실을 간과해선 안될 것 이다.
예를 들어 과거 박통시절 1976년 부터 물가가 폭등한 것은
카터대통령 당시의 정치인들의 압력에 따른
연준과 FOMC의 통화정책, 재정정책 때문인 이유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어차피 무역을 하는 국가는 세계경제의 연환계에 테두리에 묶여있으니. . . .
사실 이러면서도 콘트라티예프 파동으로 초장기상승이 시작된지 얼마안되지 않았나 생각하는 중입니다.
그러나 초장기 상승중에 조정은, 지나고 나면 월봉에서 음봉 몇개 그리면 되지만,
그 사이 투자자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리게 되죠.
아무튼 지금은 돈빌려서 주식투자하기엔 절대로 안좋은 상황이라 봅니다.
p.s. 간혹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가 매독 걸려서 죽었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 니콜라이는 이 니콜라이가 아니라 챠이코프스키의 친구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입니다.
시대적으로 19세기 후반이니 경제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랑 다른 사람입니다.
성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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