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옵토론실

437번째의 희생자를 찾고 있는 식인호랑이
인도 히말라야 기슭 참파와트에 오늘도 호랑이가 나타났다. 그냥 호랑이가 아니다. 훗날, 참파와트의 식인동물‘ 이라는 공식명칭이 붙은, 사람만 골라서 잡아먹는 식인 호랑이다. 조금 전에 죽은 그 소녀의 생명은 436번째였고, 머지 않아 또 한명의 희생자가 437번째로 기록될 것이다.
거액의 포상금이 붙었고, 인도 최고의 포수들이 몰려들었고, 특별사냥꾼이 고용되었으며, 병사들이 파견되어 식인호랑이를 사살하라는 명령을 부여받았지만 그 호랑이는 죽지 않았고 희생자의 명단에 그들의 이름 하나를 보태는 성과(?)를 올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짐 코벳, 뛰어난 직감과 사격 실력을 갖춘 전설적인 사냥꾼이며, 아홉 살이 채 되기도 전에 표범을 잡아 명성을 얻기 시작해서 32년 동안 호랑이와 표범과의 정면 승부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정글의 승부사였다.
그가 참파와트에 도착하고 며칠 후 436번째로 희생된 소녀의 죽음이 있었다. 현장에 같이 있던 그녀의 언니는 그때의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만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중에서 알 수 없는 것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짐 코벳은 인간을 우습게 보는 식인호랑이에 도전장을 던지고 그 즉시 정글로 들어갔다.
사람은 자연 속에서 그저 먹이 사슬 속에 놓인 한 마리 먹이감인지는 몰라도, 인간만이 그 사슬을 끊고, 사슬의 순서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짐 코벳은 알았으리라.
소년 시절부터 정글의 흔적을 읽고 해석하는 취미를 가진 짐 코벳은 정글의 흔적만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절실한 기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들어갔다. 가파른 언덕과 우거진 나무 사이로, 고요가 포효보다 더 소름기치는 긴장, 머리 속을 파고드는 공포와 갈등, 서로 목숨을 걸고 쫓고 쫓기는 사투. 이 모두와 싸워가면서.
짧은 순간에 수 많은 판단과 동물적인 감각이 얽히는, 맹수와 벌이는 한 판 승부. 거기에는 정글의 수 많은 주의사항과 규칙들이 있고,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지면 그 순간에 자신이 437번째 희생자로 전락하게 된다.
식인 호랑이 앞에서 당하는 희생. 그것은 쉽게 표현 할 수 없다. 호랑이는 사람들의 머리와 손발을 먹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식인 호랑이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심지어는 피묻은 옷까지 먹어치운다.
호랑이가 지나간 흔적이 또렷하게 보였다. 섬뜩한 진홍색 피와 함께 땅바닥에 질질 끌리며 남은 흔적이 이어져 있었다. 700m나 올라간 곳에서 소녀의 윗 옷이 발견되었고, 약간 떨어진 곳에서 치마가 발견되었다. 식인 호랑이는 나체의 여자를 물고 다닌 것이다.
산언저리에 이르러 흔적은 덤불 속으로 들어갔다. 뽀족한 가시에는 소녀의 길고 까만 머리카락이 걸려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주변에는 곳곳에 피가 얼룩져있었고 호랑이는 소녀를 곧장 여기가지 몰고 왔고, 짐 코벳의 끈질긴 추적이 그의 식사를 방해했던 것이다. 토막난 뼈들이 깊게 패인 호랑이 발자국이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순간, 5m 전방의 얕은 둑에서 흙덩이가 굴러 내려와 웅덩이 속으로 풍덩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아마도 짐 코벳을 노리던 식인호랑이가 갑자기 멈추거나 도망가려고 방향을 바꾸는 도중에 흙덩이가 떨어졌다고 추측했다. 즉시 추격을 시작했다.
이제 놈은 으르렁거리면서 분노를 보이기 시작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호랑이가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두렵게 만드는 동시에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식인 호랑이는 추격자를 쫓아버리기는커녕 오히려 미행을 재촉하게 되었음을 깨닫는 순간, 놈은 즉시 포효를 중단해 버렸다.
4시간 이상의 추격전. 정작 놈의 실체는 털끝 하나 보지 못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마을로 돌아가려면 이쯤에서 추격을 중단할 수 밖에 없다.
호랑이는 밤 사이에 남은 부분을 모두 먹어 치울 것이다. 그리고 암벽 지역에 은신할 것이다. 그럴 경우 놈에게 몰래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총을 쓰지도 못하면서 호랑이의 신경만 건드린다면 그 지역을 떠날 것이고, 목표는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짐 코벳은 생각했다. 그리고 속이기로 전략을 세웠다. 유능한 사냥꾼은 호랑이가 충분히 속을 만한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소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는 무성한 덤불이나 작은 풀밭에서 내야하고 언제라도 총을 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냥꾼들도 짐 코벳이 소리로 속여 가까이 오게 했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고 또한 훌륭한 사냥기술이다.
다음 날 아침 정글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골짜기 부근 작은 풀밭에서 호랑이의 출현을 기다렸다. 무성한 잡풀들이 짐 코벳의 몸을 숨겨주었기 때문에 쓸떼없이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호랑이가 볼 가능성은 없다.
멀리 계곡 아래에서 호랑이의 울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짐 코벳은 동물의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계속된 울음소리에 반응을 보이기는 했지만 여느 호랑이들과는 달리 놈은 가까이 오려하지 않았다. 아마도 전날 예기치 않은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숲에 있던 새들이 날기 시작했고, 언덕 쪽에서 굴러온 돌이 나무를 건드리며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머리털이 쭈삣 곤두서는 듯한 긴장감이 짐 코벳을 훑고 지나갔다. 그 돌은 맘몰래 흙을 밟아 다지는 부드러운 발을 가진 거대한 짐승, 명백하게 호랑이가 찬 돌이었던 것이다.
호랑이가 조만간 계곡 쪽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짐 코벳은 조용히 노려보았다. 바로 그때 전방 왼쪽에서 호랑이가 나타났다. 짐 코벳은 즉시 500구경 코르다이트 라이플 총을 발사했고, 총알은 정확히 놈의 등줄기로 파고들었다.
크게 울부짖는 소리에 이어 호랑이가 나무 앞으로 달려왔다. 날카로운 이빨을 번득이며 막 뛰어오르는 순간, 두 번째 총알이 놈의 가슴을 꿰?W었다. 땅에 떨어진 호랑이는 계곡 아래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고 피로 뻘겋게 물든 물가에서 한동안 버둥거리다가 조금 전의 물가에서 별로 멀지 않은 또 다른 물가의 바위 위에서 엎드린 채 힘없이 죽어있었다.
436명의 생명을 앗아간 식인 호랑이의 최후였다. 짐 코벳은 놈의 잔인한 발톱 앞에 노출된 437번째 인간이었고, 놈에게 패하지 않은 첫 번째 인간이었다.
사냥은 인간과 맹수 사이에 벌어지는 대결이기도 하지만 자신과 자신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한 순간이라도 실수하면 맹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총 쏘는 기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명포수라면 자기 안에서 고개를 내미는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면서 순간순간 벌어지는 상황들에 신중하면서 빠르게 대처해 나가는 정신력이라는 것을 짐 코벳은 오늘도 투자의 사냥에 나서는 우리에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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