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옵토론실
고수님들께서 보시면 가소롭고 어리석은 하수의 일기일 수도 있으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나 새로 진입하려 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남기고 갑니다.
약 이년전쯤 전화를 받았습니다. 기업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투자를 해보자고. 흔히 신호팔이라고 불리는 투자자문회사를 빙자한(지금 보면 얘네들을 참.. 회사라고 하기도 부끄럽네요.) 업체의 영업사원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그저 내 돈을 불려줄 수 있는 정보를 가진 사람이구나. 어리석게도 그 생각이었습니다.
"그래 푼돈 벌어 언제 건물 올리나. 재테크로 돈버는 놈들은 따로 있구나."
혹시 몰라 구글로 회사정보를 여러모로 검색해보고 정식 등록된 자문회사로 보여, 250만원 정도의 회비를 내고 주식판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러게요.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지만 주식판은 영업사원이 말한 것처럼 흘러가지 않더군요. 2~3주 안에 익절하며 수익을 낸다는 종목들은 연일 바닥을 쳤고 그들의 핑계는 다양했습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 공시가 늦는다. 좀만 기다려 보자. 나름 스스로 공부하고 기업정보 찾아가며 물타기를 했으나, 결국 전 종목에서 물리더군요.
그 와중에 또다른 업체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주식하시죠? 혹시 물려있는 종목들 있으신가요. 선물옵션 쪽으로 넘어오시면 금방 복구 가능합니다.”
아마 이 업계 친구들이 개인정보 받아서 명단을 파는 것 같습니다. 한번 가입할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동종업계 애들 전화가 증가해요.
뭐 역시 또 어리석게도. 다시 한번 복구할 수 있다는 희망에 파생상품인 선물옵션 판에 발을 들였습니다. 천만원이라는 회비를 내고. 새로운 세상이더군요. 주식단타로 하루 몇십만원 벌던것이(물론 개인투자로. 신호팔이 추천종목으로는 수익이 난 적이 없습니다.) 선옵 레버리지 효과로 하루 몇백에서 몇천이 왔다갔다 하니 어떤날은 하루 100을 벌고, 2000을 벌고. 이런식이면 금방 건물하나 올리겠구나.
신나있는 와중에 오랜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야. 내가 오늘 하루 두시간동안 얼마를 벌었는지 아나. 이천이다 이천.”
“그거 위험한거 아니냐. 나는 걱정이 된다. 벌때야 좋겠지만 잃으면 네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겠냐.”
“푼돈 벌어 언제 건물 올리나. 내 알고보니 돈 버는 놈들은 따로 있는거다.”
“친구야. 건물은 푼돈 벌어 올리는거야. 꼭 하겠다면 정말 조심해서 해라.”
참 어리석죠. 하루 2000을 벌면 하루 2000을 잃을수도 있는건데. 왜 나는 다르다. 나는 똑똑하니까. 공부를 하며 하니까. 나는 남들처럼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을것이다, 라는 그릇된 믿음을 가졌던건지. 어느날 계좌는 하루만에, 예정된 수순대로 반토막이 납니다. 업체의 잘못된 신호 한방이 그대로 반토막을 내더군요. 너무 화가나고 억울해서 더 공부를 했습니다. 차트보는 훈련을 하구요. 개인투자로 거의 원금 가까이, 복구를 한번 합니다. 그리고 또 한번, 업체의 잘못된 신호로 계좌는 또다시 반토막이 납니다. 이성을 찾고 생각을 좀 달리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한번에 복구하려 하지 말고 찬찬히, 하루 30만원씩만 복구하자. 욕심을 버리고 멀리보니 가능한 계획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나니, 제 삶에 흥미로운 변화가 생기더라구요.
그전에 천원 한장, 할인 몇백원이 아쉬워 아껴쓰던 돈의 가치가 사라졌습니다. 선물 한두틱이면 버는 돈, 십분이면 벌수 있는 돈 몇만원에 내가 연연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으로 매일을 살고 있더군요. 돈은 더 이상 저에게 아껴야 하는 가치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침부터 새벽 여섯시까지 안절부절 차트를 보고, 사업장의 가족같은 이들을 챙기지 않고, 밥을 맛있게 먹고있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그저 수시로 휴대폰과 컴퓨터의 빠르게 움직이는 숫자와 그래프에만 집중하고 있는 제 자신이 어느날 보이대요.
“병신새끼.. 내가 지금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건가.”
돈을 아무리 많이 버는 날도 행복하지 않았고, 잃는 날은 불행했습니다.
그동안의 설레는 꿈들은 사라졌고, 돈 자체가 꿈이 되었습니다.
다음날 업체에 전화를 걸었지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전 하루에 얼만큼의 돈을 벌든, 좀 더 인간답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동안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저는 여기까지 하고, 남은 회비의 환불을 요청드립니다.”
그들에게 돌아온 답변은 환불해줄 금액은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마이너스다, 였습니다. 처음에 2천만원짜리 상품이 1천만원에 할인이 적용되어 판매된 상품이니, 지금 반정도 이용한 시점에서 할인적용부분을 제외하면 환불해줄 금액은 존재하지 않는다, 였습니다.
이것이 이들 수법이더군요. 검색해보시면 많은 자료가 나옵니다. 전부 동일한 계약약관과 수법을 사용합니다. 들어올때는 달콤한 유혹으로 무조건적인 계좌 우상향을 이야기 하지만, 계좌 반토막나고 나가려 시도할 때는 그대로 발이 묶이게 되는 일종의 노예계약이지요. 방법은 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을 통한 피해구제신청과, 변호사에게 20%정도의 수수료를 떼고 남은 금액을 환불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꼭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불공정 약관은 법적 효력이 없다는 판례가 있습니다. 민원이나 신문고를 통해 부당한 약관에 대한 단속을 요청할까 생각도 해봤는데, 안되겠더라구요. 정부나 금감원은 방임을 할테니까요. 그들 입장에서는 국내 시장이 활성화가 되어야 하는데, 이 신호팔이들이 삐끼가 되어 개미들을 물어오는 고마운 상황에, 정부가 굳이 단속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공매도도 외인 빠져나갈까 두려워 방임하는판에. 개인이 현명해지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글쎄요. 제 주변에 “결국, 최종적으로” 주식이나 파생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함께 자문서비스를 이용하는 방 사람들 중에도, “결국, 최종적으로” 수익으로 마무리 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악재가 떠도 시장은 올라가고 호재가 떠도 시장은 내려갑니다. 결국은 돈을 들고 판을 짜는 세력 마음인 것이 주식과 파생시장입니다. 누군가 잃은 돈을 누군가 따가는 곳, zero-sum 게임의 시장에서 운이 좋아 짜여진 판에 편승했을지라도, 한번 미끌어지면 100번의 수익을 한방에 날리는 곳에서, 살기보다는 죽을 확률이 더 높은 건 산수로도 가능하지요. 물론 겪어본 후에 깨닫는 것이지만.
결국 개인은 아무리 현명해져도 시장에서 판을 짜는 이들의 제물인 것이고, 투자자문회사를 빙자한 삐끼들은 제물을 물어다주며 회비를 챙기는 시스템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어리석은 판단이었으나, 글쎄요. 실제 운용되는 사례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며, 눈 앞에 보이는 하루 몇백 몇천의 유혹을 쉽사리 뿌리칠 개인이 많지는 않을 듯 합니다. (손실에 관련된 글이나 인증은 업체에서 전부 실시간 삭제를 합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절대로 믿지 마세요.)
영화 작전에 이런 뉘앙스의 말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루에도 몇천억이 왔다갔다 하는 판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거지. 그저 욕망들이 뒤엉켜 있을 뿐이라는거.
저는 오늘 야선을 끝으로 조금 더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삶을 살기위해 거래를 접습니다.
(마침 오늘이 야선 거래정지되는 날이네요.)
선배님들 비해 너무도 짧은 경험이었지만 그동안 경제에 관한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것 이상으로 열심히 일해서 버는 돈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일하는 삶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배웠습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한끼의 밥이 맛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주식과 선물거래를 하며 잃어버렸던 돈 이외의 것들을 이제 조금씩 되찾아 오려 합니다. 딱 한번 인생을 돌아갈 수 있다면, 선물 상한가 찍는 걸 알 수 있는 하루 전날이 아닌, 신호팔이의 전화 한통을 받기 바로 전 그날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날의 저는, 지금보다는 더 인간답고 괜찮은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여러 꿈들 중, 여전히 제 건물을 올리고 싶은 꿈이 있지만, 제 소중한 친구의 말처럼 푼돈을 열심히 모아 올려볼 생각입니다.
그동안 눈팅하며 많은 배움 얻고 갑니다. 성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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