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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옵션 토론실

선물 저의 옵션 첫 멘토의 이야기..

상수동곰장어 조회3150

저는 2005년에 옵션에 들어왔을때 팍스넷게시판을 보며 여러 도움을 받았던것 같습니다.

게시판 문화가 젊잔고 모두들 시장 분석에 열공을 하던시대라

저에게는 유익한 글이 절반이상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의견을 어렵게 여쭙던 분이 뉴욕의전설이란 분이였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2년가까이 시장에 대해 묻고 배우게 된 첫 멘토입니다.

그 분 과거의 글들을 보며 시장을 돌아보다가

그분의 회고를 찾아 여기에 복사해서 붙입니다.


저작권없이 무단 붙이기이지만..

그분이 저를 그리 미워하시지 않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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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1: 나의 첫 경험
 뉴욕스펙 2006.10.14 06:11 조회1713


1999년 5월 후배로 부터 전화가 왔다. "형, 옵션 알아요?" 난 당연히 안다고 했다. 그래도 증권사 10


 


년 경력이고 1종 상담사 자격증 까지 있는 놈이 그것도 모르겠냐는 식으로 말이다."그런데 왜"라고


 


했더니,"글쎄, 강남 모지점에서 3000만원으로 300억까지 번 투자자가 있는데 그것도 4개월 만에 그


 


랬대요" 하는 것이다. 미친 놈 실성을 해도 단단히 했구나. 어떻게 가능하냐라는 물음도 없이


 


그냥 전화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그 날 집에 와서 호기심이 생겨 그 투자가가 벌었던 시기의 종합


 


지수 그래프를 보았다. 아니 이럴 수가. 12월 선물, 옵션 만기 1주일을 남겨 놓고 주가가 20% 이상


 


급등하여 만기일날 외가 콜 옵션을 전부 결재 시켜 버린 것이다. 거의 300배가 터져 버린 것이다.


 


1000원짜리 외가 콜 옵션이 거의 30만원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장중이 아니라 결재지수로 말이다.


 


당시 에는 선물, 옵션계좌를 개설할려면 3,000만원이 필요했는데 만약 콜 옵션 외가를 풀 베팅하여


 


결재를 맞이했다면 90억가까이 되어버린 셈이다. 머리가 돌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 자신


 


이 원망스러웠다. 나도 주식으론 한 가락 한다는 놈인데 이런 상품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참으로


 


통탄스러웠다. 짜식. 아끼는 후배가 갑자기 사랑스러워졌다. 나에게 돈벼락을 건네주는구나.


 


계좌 하나를 개설했다. 친구이름으로. 난 증권사직원이므로 내 이름으로 계좌를 열수가 없었다.


 


'참 대박났을 때 친구가 자기돈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기분좋으면서 쓸데없는 상상 까지


 


했다.


 


옵션 만기일 일주일 남겨놓고 그 사람과 똑 같이 외가 콜 옵션으로 풀로 박아 놓고 만기일을


 


기다렸다. 내 첫경험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에피소드 2: 아팠다. 정말 아팠다
 뉴욕통신원 2006.10.14 11:16 조회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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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았다.


 


그것도 정말 힘차게 박았다


 


앞으로 펼쳐질 꿈과 같은 현실, 남들의 부러움, 형제들로 부터 오는 아낌없는 찬사, 이 모든 것을 상


 


상하면서 무식하게 박아 버렸다.


 


 대부분의 첫 경험자(?)가 그렇듯이 나 또한 애무나 탐색전 없이 급하게 서둘렀다.


 


옵션만기 전주 금요일 이렇게 거창하게 치러진 나의 첫 경험은 만기일날 허무하고 비참하게 끝나 버


 


렸다. 행사가 근처도 못 갈 뿐만 아니라, 손절매도 못한 처지가 되었다. 그야 말로 깡통 계좌가 되어


 


린 셈이다. 내돈 3000만원이 날아 간 것이 아니라 90억원이 없어진 격 이었다. 아니 나의 미래.꿈,


 


이상이 한꺼번에 만기지수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만기 다음 날 씩씩 거리면서 다시 꿈을 꾸기시작했다. 이번에는 불타는 복수심과 함께 꿈을 키웠다


 


한 달전 첫 경험과 똑같이 박았다. 그리고 그 다음달도..... 그리고 또...


 


가끔씩 중간 중간에 중박을 터트리고 그 때까지 원금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이었는데 그


 


놈의 한 방 때문에 정리 못하고 만기일날 제로가 되어 버린 경우도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벌자는


 


나의 과거 증권 투자 방식은 한 방씩, 거대하게 라는 말그대로 로또식 옵션 투자가 되어 버렸다.


 


타락이었다. 분명히 정신적. 심리적 타락이었다. 본인인 내가 보기에도 미친 놈이었다.


 


한번은 2억을 3일만에 날린적도 있었다. 첫날 1억 날렸고 둘째날 본전 근처까지 오고 다시 세째 날


 


꽝이었다. 또 어떤 날은 5천만원을 투자했는데 이틀만에 1억 5천이 되어 있었다. 1억을 번 셈이다


 


그러나 안팔았다. 머리속에 몇 십억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95년,96년 개별 종목이 판을 치고 있을 때 나는 상당히 많은돈을 벌었다. 젊은 나이에 그것도 단기


 


에 떳떳하게 벌었다. 어느 날 갑자기 증권사 선,후배의 우상이 되어 있었다. 자동차도 직장 사장보다


 


더 좋은 차였고 아파트도 거의 회장님 아파트였다. IMF도 잘 넘겼다.


 


이렇게 번돈이 이젠 바닥 나기 시작했다.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아니 난 이미 미친 놈이었다.


 


드디어 내 자금은 한 푼도 없이 사라졌다. 딱 1년 3개월 만이었다. 차부터 처리했다.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파트도 ....전세로 옮기는 날 아내와 두 아들 딸들이 눈에 사무치게 들어


 


왔다. 아니야 지금만 잘 넘기면 되. 자동차. 아파트는 돈벌면 또 사면되. 각심 또 각심의 연속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라도 그만 두었어야 했다.


 


아팠다.


 


정말 아팠다.


 


첫 경험에 모든 오르가즘을 느껴볼려는 나의 무리한 시도는 정말로 한 번도 느껴 XXX못하고


 


끝나 버리게 될 것인가?


 


 


***다음에 계속 됩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분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꾸며 내는 이야기가 아니고


 


저의 미친 과거 입니다.***


 


제 필명을 '뉴욕 통신원'으로 바꿔씁니다.


에피소드 3 : 마지막 자금
 뉴욕통신원 2006.10.14 14:13 조회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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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증권시장. 나는 80년대 대학을 다녔고 당시 최고의 직장인 증권사


 


에 입사했다. 월급을 많이 주는 매력도 있었지만, 조지 소로스와 같은 능력있는 투자가가 되고 싶어


 


서 였다. 아니 인생 폼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노력도 했다. 입사 이후 그 때까지의 종합지수 일


 


봉 차트를 외울 정도로 심각하게 연구했다. 그에 대한 결과로 에피소드 2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돈도 벌었다.


 


입사후  12년. 인생 폼나게가 아니라 쫑나게 살고 있었다. 막판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후배의 전


 


화 한통화. 옵션!!  그러나 원망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기회는 오리라는 한 가닥 희망때문에.


 


이젠 남은 돈이라고는 전세돈 뿐이었다. 직장도 그만 둔지 몇개월이다. 전념하고 싶어서 였고, 고객


 


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였다. 그들에게 최선을 다할 수 없었다. 상담사하는 다른 후배와


 


같은 방을 쓰면서 하루 종일 쪼그리면서 시세만 보고 있었다. 나중에 바다이야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지만 그들과 똑같은 처지가 되버린 셈이었다. 늘어나는 것은 담배와 빚이었다.


 


마지막 자금.


 


 전세 자금을 써야했다. 고민도 안했다. 당연히 있는 돈은 다 박아야 했다. 빨리 정상 생활로


 


돌아와야 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직장이 없어서 금융권 자금을 쓸 수 없어서,전세담보사채 자금을 끌


 


어썼다. 이자는 3부 였다.


 


2년전까지만 해도 국내  경제를 논하고 그 환경에 대해서 얘기하던 놈이, 악성 사채 자금까지 쓰고


 


있다니. 그 현실이야 말로 정말 참기 힘들었다.


 


신중하자 몇 번 각심했지만 모니터 앞에만 있으면 배팅이 쉽게 되어버렸다. 중독이었다.


 


그 자금마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젠 살 집도 없다. 늘어나는 이자때문에 전세도 빼야했다. 구독하던 신문도 끊었다. 점심먹을


 


돈이 없어서 점심을 굶은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엄청난 돈을 날리면서 점심먹을 돈이 없다니


 


왜 내가 여기까지 와야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이해가 안간 그때다.


 


일단 여기서 한국 생활은 정리하자고 생각했다. 돈도 집도 없었다. 있었다 해도 또 그 짓을 하게 되


 


니까 일단 미국으로 가자고 집사람에게 설득했다.  이미 처가 돈까지 쓴 나로서는 정말 쪽팔린


 


제안이자 결단의 순간이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비행장에서 출국 수속을 하고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동전 150원이 있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


 


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2,3년만 고생하고 올게요. 건강하게 지내세요"


 


눈물은 흘리지말자고 다짐했건만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올리겠습니다.지금 여기 새벽 1시 입니다. 내일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건강지키세요. 꼭이요.


에피소드 4:재도전 .(1)
 뉴욕통신원 2006.10.14 23:37 조회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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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행 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내와 애들은 10 일전에 보냈다. 전세가 늦게 빠지는 바람에 뒷


 


정리 하느라 혼자 가야했다. 전세 자금은 사채 갚는데 씌여졌고 비행기 티켓은 둘째 형님이 마련해


 


주셨다. 1달러도 환전을 못한채 무작정 한국 탈출이었다. 아니 옵션, 더 나아가 인생 대 탈출이었다


 


13시간의 비행속에서 지난 몇년간의 기억들이 영화속의 필름처럼 돌아갔다. 내 자신을 용서할려고


 


해도 용서할 수 없는 상황까지 내가 만들어 버렸다. 차라리 비행기가 잘못되 공중폭파되어 그 희


 


생자중의 한 사람으로 되 길 바랬다. 그 보상금으로 아내가 애들 뒷바라지도 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서 말이다.


 


친척의 소개로 일을 시작했다. 제품을 배달하고 수금하는 일이었다. 7톤 트럭이었다. 뉴욕시, 보스


 


턴, 워싱턴 DC, 플로리다, 시카고등 미국의 동부 도시는 안가본데 없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령 뉴욕에서 플로리다 까지 22시간 운전해야 겨우 도착한다. 서울에서 부산을 두번 왕복해야 하는


 


거리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하지 않으면 굶어야 했고, 굶지 않을려면 일해야 했다. 옵션은 당장 잊혀


 


졌다. 그래도 피곤한 몸으로 아파트에 들어가면 반가이 맞아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버텼다. 그들에


 


게는 할 말이 없었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도 감히 제시할 수 없었다. 당분간은 시간이 필요한 시기


 


였던 것이다.


 


 911 . 미국 현대사에 가장 뼈아픈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터진후 일주일이 지났던가 우연히


 


한국 신문을 보게되었다. 다른 기사보다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풋 옵션이 500 배나 터졌다


 


는 내용이었다. 솔직히 마음이 설래였다. 조금만 더 버텼으면 이런 기회가 왔을건데, 그리고 천만원


 


만 박았어도 50억이 들어 왔을 건데. 마치 당연히 벌어야 할 돈을 놓치는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게 도박증세가 아닌가 싶다.


 


잠시 잊혀졌던 나의 꿈, 나의 피난처, 옵션이 머리속 한 구석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운전을 하면서


 


도 이래서 언제 복구하지, 인생 이렇게 쫑나는 거 아냐, 미국서 벤츠를 못 몰 지언정 트럭을 몰다니


 


별 별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돈도 조금씩 들어 오기 시작했다. 일요일 시간 날


 


때 마다 공공 도서실에 있는 컴퓨터를 보면서 한국 증권시장과 옵션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긴 해야 겠는데, 돈은 없고, 있다해도 집 사람에게 말했다가는 미친 놈 그거 끊은 지 얼마나


 


됐다고, 너 벌써 치매 오냐등 그야 말로 생매장(?) 당할 것 같았다.


 


언제 부터 인지 몰라도 옵션 증거금이 500만원로 인하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젠


 


머리속이 옵션으로 이미 가득차 있었다. 아내에게 죽을 각오로 얘기를 꺼냈다. 아내는 울고 불고


 


난리였다. 나 혼자 한국 나가서 또 실패하면 그 때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맞다. 그 때는 끝장이


 


었다. 절대 실패는 없을 거라고 못 박았다. 자신도 있었다. 하기야 언제는 자신이 없어서 깨졌겠냐


 


마는. 또 설득했다. 버는 대로 생활비는 부치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주 왕래도 하겠다고 했다.


 


마침내 아내의 결재가 떨어졌다. 한달간의 생활비만 아내에게 주고  5,000달러 가지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젠 희망보다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했다. 깨지면, 더 이상 가족을 볼 수가 없었다.


 


가자. 한국으로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2년만에 나의 조국 한국땅을 밟았다. 아니 나의 꿈 나의 옵션을 위해 다시 찾아온 것이다.


 


오후 5시에 내렸는데 비가 오고 있었다. 2년전 한국을 도망치다시시피 비행기를 탔을 때는 내내


 


슬픔이 가득찼었는데 이번의 귀국 비행기에서는 걱정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잘할 수 있을까


 


가족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매월 500만원을 벌어야 한다. 미국 가족들에게 생활비 보내줘야하고


 


내 극빈의 생활비가 이 정도는 필요해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금이 500만원이고 시간은 한달


 


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중의 하나만 어긋나도 내 가족은 굶기 시작한다. 심적 부담이 과거보다 훨씬


 


더했다.


 


거처는 고시원으로 잡았다. 가장 적은 비용이 마음에 들었다. 매매는 전 직장 선배가 지점장으로 나


 


가 있어서 거기 있는 상담실을 이용했다.


 


과거에는 꿈과 이상을 가지고 매매를 했지만 이제는 현실적으로 매매를 해야 한다. 밥갑을  벌기 위


 


해 포지션을 잡아야한다. 몇 십억이 아니라 몇십만원을 위해 모니터 앞에 있어야한다. 그러기 위해


 


서는 뭔가 원칙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원칙을 지켜야했다. 몇가지 원칙을 고시원 책상 앞에


 


붙여 놓았다.


 


1.근거 없이 미래를 예측하는 매매는 절대 삼가할 것


 


2.이성적 기준이 되는 챠트를 이용해 매매할 것; 선물, 옵션 30분 챠트가 일치하는 시점(쌍봉,쌍


 


  바닥)에서 기계적으로 매매하되 바램이나 감정을 그래프에 넣지 말 것


 


3. 오버나잇은 극히 제한적인 금액 벙위 내에서 할 것


 


4.꼭 보험은 들 것(반대 포지션)


 


5.이익금은 무조건 출금하고 깨지면 0 이될때까지 그 금액으로 매매한다


 


처음 20일은 탐색전만 했다. 옵션만기일 일주일 전부터 매매에 임한다는 자세이다. 이것은 나에게


 


일종의 혁명이었다. 첫경험이후 계속 질퍽였던 시절에는 이런 시기가 없었다. 무조건 박았다.


 


콜이든, 풋이든 앞뒤 안가리고 무식하게 박았으니까. 이러니 내가 먼저 지치고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상대는 감(?)도 오지 않은 상태에서 나 혼자 헬렐레 했으니 말이다.


 


만기 일주일 전부터 기관 시황들은 큰 폭의 하락을 예상했다. 그러나 큰놈들이 그리는 30분 선물


 


옵션차트는 폭등을 임박한 그래프였다. 콜옵션에 입질을 해 봤다. 아니나 다를 까 쉽게 수익을


 


주지않았다. 100만원 손절매하고 일단 빠졌다. 눈 앞이 깜깜했다. 과거같으면 신경도 안쓴 금액


 


이었는데, 이젠 400만원만 남았다는 현실이 절박했다. 만기 3일남기고 재진입 했다. 한때 장중


 


평가 금액이 100만원 밖에 남질 않았다. 그래프를 다시봤다. 분명 쌍바닥 찍고 올라오는 그래프


 


였다. 버텼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잠깐 하락을 찍고 난후 장은 순식간에 돌아서기


 


시작했다.  큰 폭등장의 서막이었다. 만기일까지 버텼으면 3000만원의 이익을 챙길 수 있었는데


 


아닐 경우를 생각해보니 아찔했다. 그래서 1000만원의 수익만 남긴채 재도전 첫 번째 달을


 


맞이한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내가 한 약속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다행히 운도 많이 따라 주곤했다. 어떨 때는


 


하루에 2000만원의 수익도 난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한국에서 2년을 생활하면서 뭔가


 


중요한 가치를 하나 발견하였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가치이다. 1년에 2-3번 가족을 보러 미국에


 


들어 갔다. 외로웠고 애들도 아빠를 보고 싶어해서이다.


 


 워낙 잃은 돈이 많았고, 항상 수익을 내야한다는 절박감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한 것은 사실이었


 


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결론을 내야했다. 이 쯤의 옵션이면 내가 나중에 심리적로 안정을 찾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을 때, 그 때 해도 내가 잃었던 돈을 찾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가족과 함께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는 시간의 촉박함은 나를 다시 미국으로


 


보내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다행히도 전 직장 사장님이 좋은 조건과 직책을 주시겠다는


 


제안은 당분간 옵션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리게 했던 것이다.


 


*********이번글은 여기서 마칠 까 합니다. 한 참 주무실 시간이겠네요. 좋은 꿈......


 


**저에게 은행잎을 선물해주신 님에게 이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다음글로 이번 저에 관한 글은 마칠까 합니다. 많은 도움되었으면 합니다.**



에피소드 6 ; 바다이야기와 옵션--마직막 글
 뉴욕통신원 2006.10.15 11:38 조회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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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개월 전 인터넷에서 '바다 이야기'를 접한적이 있다. 처음에는 클릭도 하지 않은채 그냥 무관심


 


해 버렸다. 일식집이나, 회집 체인점이 문제가 되는줄만 알았다. 그런데 정부 고위 관리까지 사과를


 


한다하니 그 때서야 '뭐지' 하면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번도 해본적도 없었고, 구경도 안해


 


봤지만 아마 90년대 유행했던 호텔 빠징코와 유사하리라 짐작한다. 그 당시 나도 2-3번 간적이


 


있었고 나중에 웨이터들한테 들어서 안 얘기이지만 100% 조작된 게임기였다. 아마 바다 이야기


 


도 일종의 이런 게임이리라 믿는다. 승부 조작.


 


돈 없는 사람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곳이 배당이 높은 게임일 것이다. 아니 인간이면 누구나 한


 


번 쯤은 혹 할것이다. 요즘말로 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경마장에서 1,000배가 나왔다는 소문,


 


바다 이야기에 가서 5만원 넣고 200만원 당첨됐다는 바람잡이의 말, 로또에 400억 짜리가 한 사람


 


한테 당첨되었다는 보도, 옵션에서 500배가 터졌다는 고수들의 술 안주감...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보면 철저하게 '승부 조작'과도 관련된 게임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꽃인 증권시장, 그 중에서도 고수만 모인다는 옵션시장에서 나는 살아남기 위해 몸부


 


림을 쳤다. 이론서적도 읽었고 나중에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워가면서, 그원칙을 못지킬 때는


 


나 자신을 학대하면서 까지 푹 빠진적이 있었다. 내가 정말이지 인생 막판까지 가서 모니터에 앉아


 


담배 빡빡 피어대는 모습하고, 바다 이야기 다이 앞에서 있는 돈 없는 돈 끌어와서 게임기 돌리는


 


중독자와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 라는 물음을 지금에 와서 내자신에게 해본다. 차이는 없다.


 


나는 내 자신을 합리화 시키거나 정당화 시키기 위해서 이 글을 쓰지 않는다. 내 비참했던 지난


 


7년간의 세월을 이 시간 누군가가 바통 터치를 이어 받아, 그 좋은 돈 그 좋은 시간들을 철저하게


 


조작된 게임에 바칠려고  하는 사랑하는 후배가 있을 까봐  과감히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에피소드


 


5에서 내가 얼마나 벌었으며 어떻게 벌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쓰지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로


 


인해 또 다른 나와 똑 같은 길을 갈 투자가가 나올까봐 두려워서이다.


 


미국으로 다시온지 2년이 지났다. 이젠 옵션에 대한 상처는 상당히 치유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상당히 치유됐다는 의미는 까먹은 돈을 전부 회복했다는 경제적인 의미가 아니다. 저녁 식사를


 


가족과 함께 맛있게 먹고, 토요일이면 애들과 함께 해변가에도 놀러가고, 가끔씩 한국 친구들에게


 


안부도 물어보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왔다는 의미이다. 비록 최고의 오르가즘을 못 느낀


 


채 하산(?)했지만, 먼 훗날 상상으로 기약한 것도 그에 못지않은 행복이라 여긴다.


 


 부디 아름다운 시간, 피 같은 돈 여러분 가족과 여러분을 위해 투자하시길 바랍니다.


 


장시간동안 저의 아름답지 못한 과거를 관심있게 읽어 주신 사랑하는 선,후배님께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이 글을 마칠 까 합니다.


 


뉴욕에서 통신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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