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옵토론실

이순신 장군이 목숨 걸고 지켜낸 녹둔도는 사할린섬 이다.

사할린은 면적 7만 6400km2.
인구 약 67만(1993).
남북길이 948km.
최대너비 160km, 최소너비 26km.
최고봉은 로파틴산(1756m).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북쪽에 위치한다.
‘사할린’을 일본에서는
남북으로 길쭉한 섬이며, 오호츠크해와 동해에 둘러싸여 있고, 대륙과의 사이에는 최단거리 약 8km의 타타르 해협이 있다.
남부에는 서(西)사할린산맥(최고봉은 1,375m의 주라블료프)과 동(東)사할린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그 사이에 길쭉한 평야가 자리잡고 있다.
북부는 북단의 슈미트 반도에만 산지가 있다.
북부에는 낙엽송 ·가문비나무 등이 많고, 중부와 남부에는 전나무류가 많다.
또 북부의 해안지대에는 툰드라가 있다.
기후는 냉온대 기후에 속하며, 여름에는 몬순의 영향을 받아 약간 습윤하지만, 겨울에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몹시 춥다.
북부 연안은 12∼4월에 결빙하며, 대륙과의 빙상교통이 가능하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금속 ·수산물 ·임산물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주민의 대부분은 러시아인이며,
한국 교포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제에 의한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탄광 및 군수공장에서 혹사당하다가 종전을 맞이하였다. 현재 사할린섬에는 한인 1세와 그 후손 등 약
원주민은 아이누 ·길랴크(니브히) ·오로크인(人)이며, 소수의 일본인이 있다. 섬의 60%가 숲이기 때문에 목재 가공과 펄프 제조가 주요공업이며, 수산업도 활발하다. 석유와 석탄도 러시아연방 극동의 주요산업을 이루며, 북부의 오하 유전으로부터 콤소몰리스크 ·하바로프스크에 송유된다.
농산물은 자급자족을 할 수 없으나, 감자밭과 목초지가 많다. 축산으로는 순록 ·젖소 ·여우 등이 사육된다. 교통은 코르사코프와 모스칼보를 잇는 남북선이 이용되며, 대안(對岸)의 바니노와 사할린의 여러 연안항구 사이에는 정기선이 다닌다.
http://www.peoplevoic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7
백두산 경계비의 진실-
2006년 11월 12일 (일) 17:40:22 임상현 생략
아무르의 <아>도 아사에서 나온 말이며 새로움이며 알파벳의 A도 감탄사의 의미도 있지만 생명현상의 명사를 의미한다.
만은 마르로 연음이 되며 마르->무르로 연음이 된다.
그러므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0권>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었다.
”남쪽으로 흐르는 것은 압록강(鴨綠江),북쪽으로 흐르는 것은 송화강(松花江)과 혼동강(混同江), 동북으로 흐르는 것은 소하강(蘇下江)과 속평강(速平江),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두만강(豆滿江)이다.”
또 “여진 말로 만(萬)을 두만(豆滿)이라고 하는데, 여러 갈래의 물이 여기로 합류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라고 기술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여러 갈래의 물이 하나로 합류되는 것이 두만강이므로 현 압록강이 아닌 것이다. 또한 남으로 압록강이 흐르고 이 압록강이 요하라면 북으로 흐르는 것은 송회강과 여러 지류에 해당된다.
이 지류가 다시 동으로 흘러 하나로 뭉쳐 바다로 흘러간다고 하였다.
바로
두만강은 만주강을 말하며 만주 일대를 가득차게 채우는 강역을 의미한다.
그리고 흑룡강이라는 별칭이 붙는 것은 동단국-조선족-고구려의 상징색이 흑색이기 때문에 붙은 명칭인 것이지 현 두만강의 짧은 강이 아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여기에 공주를 거쳐 동류해 25리에 이르면 사차마도에 도달하고 여기서 강물이 나누어져 5리쯤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라고 하고 있다.세조 원년(1455년) 8월에는 이전까지
현 두만강 하류에 삼각주로 된 지명이 녹둔도라고 한다.
두만강 하구에 있는 둘레가 8키로인 타원형의 자그마한 땅이다.
직사각형으로 환산하면 가로 세로 2키로에 해당한다.
과연 그곳이 녹둔도인가!
얼마가 그곳이 중요하길레 여진족이 목숨을 걸고 침범하였으며 얼마나 중요하길레 그 안에 성을 쌓고 목책을 설치했을까!
그 땅속에서 금이라고 나오는 비밀이 있는 것인가!
아무르 강을 두만강으로 옮기다 보니 아무르 강 하구에 있는 사할린 섬을 억지로 끼워 ??추다 보니 코메디를 연출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사실인냥 우기는
녹둔도가 두만강 하류의 작은 섬이 아니라 아무르 강 하류의 사할린섬이다.
이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정황으로 보면 절대 녹둔도가 될 수 없다.
여진족은 유라시아 일대를 주름잡은 유목족이며 훗날 금나라를 세우며 나중에 청나라로 발전하여 중국 대룩을 장악한 몽고제국이래로 가장 강력한 유목집단이다.
그런 민족이 가장 작은 척박한 한반도 함경도를 노리고 두만강을 노리겠는가!
만주일대는 화북평야로 한반도 보다 몇배 넓은 농경지와 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 만주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그래서 절대로 한반도로 넘지 않으며 넘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것도 고작 작은 땅인 두만강 하류 작은 땅을 노린단 말인가!
드넒은 화북평야와 송화강과 아무르강 그리고 흑룡강의 농경지와 목축지를 버리고 어디에 붇어 있는지 모르는 한반도로 가서 그것도 아주 작은 섬 녹둔도를 노린단 말인가!
녹둔도는 어떻게 기록되었는가! 한번만 읽어 보아도 안다.
세종실록지리지 내용중에 중요한 것을 열거한다면 다음과 같다.
조선 세종 때 6진(鎭)을 개척한 이래 여진족의 약탈을 막기 위하여 섬 안에 길이 1,246척의 토성을 쌓고 높이 6척의 목책을 둘러 병사들이 방비하는 가운데
농민들은 상주가 금지되었고, 춘경추수기에 한해서만 출입이 허가되었다.
여기서 녹둔도가 두만강 내에 섬이라면 성을 쌓고 군대가 상주하고 그리고 농사를 지을 땅면적이 나오는가!
그것도 직경 2키로 안에 모든 것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사할린 섬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녹둔도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역대 왕들은 자주 언급을 한다.
<세조는 함길도 도절제사인 양정과 도사 강효문에게 조산구자(造山口子) 녹둔도 농민이 들에서 일할 때 야인들이 배를 타고 침입, 약탈할 것이 우려되므로 진장(鎭將)과 만호들에게 엄중히 방비하라는 밀유(密諭)를 내리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중종 9년(1514년)에는 봄철 농사를 지을 때면 조산보의 군민이 녹둔도로 들어감으로 본보가 빌 정도라고 하고 있다. >라고 되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사할린의 북쪽은 천연가스가 풍부하며, 1999년 7월부터는 원유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어 러시아의 보고로 통하는 지역이다. 간단한 도표가 제일 첫 그림에 사할린이 소개되어 있다.
사할린은 육지와
그러므로 여진족인 겨울철에 말을 타고 섬에 침공이 가능하며 평상시에는 배로 침공이 가능하다.사할린과 연결된 콤소모몰스크와 하바로프스키가
그 곳에
사할린이 녹둔도라는 것도 필자가 최초로 주장한다. [임상현 칼럼리스트]
만주어 sahaliyan : 검다(黑)는
몽고어로 hara 입니다.
일제에 의해 조작된 대동여지도와
조선말 유럽인들이 당시 객관적 관점으로 대동여지도보다 조선영역을 넓게 지도에 표기한 것도 보아도 알 수 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제국주의 시대가 나타나던 때 일본도 당연히 남의 나라의 식민지를 뺏기 위해 조선을 가져 갈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운요호 사건으로 인해 강화도에서 을사늑약을 불평등한 체결하자 조선은 반식민지가 된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래서
허나 이건 분명히 체결될 수 없는 협상이였다.
당시 조선왕 고종도 몰랐던 사실이고 신하들도 몰랐다고 한다.
얼마나 기가 막힌가!
그래서 고종황제의 직인없는 협상문서는

[지도]고구려.백제.신라.가야 4국 시대
부여족(온조.비류.구태세력)이 개국한 백제가 신라와 당나라의 협공으로 멸망한 후에 의자왕과 부여융 등 일부 황족들은 중국(당나라)으로 압송되었고,나머지 황족과 백제유민들은 대부분 백제황족의 나라인 일본열도로 건너 갔다.
마치 백제에 복속되어 백제의 고구려 공격를 지원했던 서남해 해상세력(왜)가 광개토태왕의 백제정벌로 일본열도로 이주한 것과 같다. 따라서 역사로 올라가면 일본열도로 이주한 세력들은 선조들의 무덤이 있는 한반도지역에서 헤게모니를 빼앗긴 한 많은 세력인 셈이다.
나제동맹을 파기하고 한강유역을 차지함으로써 백제의 분노를 산 신라에 멸망당한 백제가 신라에게 가진 분노는 원한이 되어 한반도침략의 명분이 되었고, 임진왜란당시는 이순신과 호남민중들의 저지로 실패했고, 결국 임진왜란의 치욕을 교훈삼아서 소중화사대주의를 탈피하고 자주주권적 차원에서 신무기 개발 등 자주국방과 내부개혁을 하지 못하고 당파싸움으로 치고 박은 결과 조선말기에는 영남의 안동 김씨 세력들이 권력을 움켜쥐고 좌지우지하는 바람에 흥선대원군이 쇄국개혁노선으로 조선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지키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멸망한 근본요인은 중국을 상국으로 섬겨온
비운의 왕 고종도 끝까지 국권을 포기하지 않고 일제에 항거하는 과정에서 독살당하여 죽고 말았다.
자주국방.자립경제.주체의식이 존재하지 않으면 기초없는 건물이나 마찬가지니 언젠가는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선차적으로 원한을 제공하는 주범은 침략.독점세력이다. 그러나, 원한을 침략과 폭력으로 갚게 되면 전쟁.학살.탄압.수탈이라는 악순환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죄와 피해배상을 전제로 피해자들의 용서만이 상생의 시대를 여는 길이다.
따라서
언제 폭발하거나 바다속으로 꺼질지 모르는 지진대위에 위치한 일본열도는 바다속으로 수몰이 예정된 지역이다. 물론 한반도 동남부(영남)지역도 해당된다고 지질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있다.(윤복현)
[보도자료]지질전문가들은 일본열도의 지진대는
부산-양산-경주-영덕을 지나는 영남지역 최대 단층대인 양산단층이 지진이 발생할수 있는 활성단층이라는 증거가 발견, 학계에 비상한 관심 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기화 서울대교수, 경재복 한국교원대교수, 오카다 일본 교토대 교수로 구성된`양산단층의 활성관계' 한일공동연구팀은 양산단층의 활성증거에대해 연구한 결과 최근 경남 울산시 울주구 삼남 면 상천리 중남초등학교 앞에서20만∼30만년전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단층구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매서운 눈보라가 사계절 계속해서 몰아칠 것만 같은 동토의 나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를 이끌어가는 4대강국의 하나였지만 공산주의국가라는 이유로 인해 실제적인 지리상의 거리와는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더욱 멀게만 느껴졌던 나라,그렇긴 해도 영화 "
◈ 수 도 : 모스크바 (Moscow, 864만명)
◈ 인 구 : 약 1억 4020만명 (2006년 추정치)
◈ 면 적 : 17,07만㎢ (한반도의 78배정도)
◈ 주요도시 : 상트 페테르부르그, 블라디보스톡, 하바로프스크
◈ 주요민족 : 러시아인(82.6%), 우크라이나인(3%), 타타르인(3.8%),
◈ 주요언어 : 러시아어(Russian)
◈ 종 교 : 러시아정교
사회주의가 붕괴된 후 10여년이 지난 오늘날, 정치·경제적으로는 매우 혼란한 상태임에 틀림없지만 지금도 그 곳에 가면 지극히 러시아적인 과거 권력의 흔적들과 더불어 봇물처럼 들이닥친 서구사회의 모습이 공존하는, 아주 흥미로운 광경들을 만날 수 있다.
러시아의 경우 봄, 가을은 짧은 대신 겨울은 보통 10월이면 시작되는데 한 겨울에는 보통 아침 8시나 되어야 해가 뜨고 오후 4시경이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봄이 오는 4월 중순무렵까지는 거의 매일 길가에 쌓여져 있는 눈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모스크바나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발달된 기계, 차량까지 동원하여 매일 부지런히 눈을 청소하기 때문에 차량소통에는 별 문제가 없다. 반면 6월부터 시작되는 여름에는 모스크바 등 북구 도시에서 백야현상이 나타나는데, 밤11시가 지나서야 해가 지기 시작하고 해가 지고 난 어스름한 새벽에도 길을 다니는데는 별 지장이 없을 정도로 밝다. 햇빛은 따갑지만 습기가 없어서 더운 건 그리 못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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