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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면] SF라는 태풍이 불고 있다

매일경제 2022.01.15 00:04 댓글0






출판계에 공상과학(SF) 바람이 불고 있다. 잡지가 창간되고 상이 제정되고 시리즈가 생기고 관련 글쓰기 기법서들이 나오는 등 부산스럽다. 그런데 이 바람은 진짜다. 일시적인 게 아니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강력한 태풍의 앞바람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향후 출판계뿐 아니라 이것이 우리의 삶과 지각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될지 기대와 긴장이 고조된다.

지금의 SF란 스타워즈로 상징되는 20세기적 공상과학소설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과학은 외피만 빌려줬을 뿐 그 안에서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 많다. 그래서 본격문학과 장르문학 구분이 여기서는 아무 의미도 없어진다. 실제로 많은 본격문학 작가가 SF적 상상력을 새롭게 선보이며 이 물결에 동참하고 있다.

이제 질문을 던져보자. 왜 SF인가. 먼저 '쉬운 접근성'을 들 수 있다. 과학이 일상의 영역에서 눈부신 변화를 만들어내는 요즘 눈과 귀를 열어두면 관련 소재가 쏟아져 들어온다. 작가로선 이 황금노다지 같은 이야깃거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우주의 기원을 보기 위해 쏘아 올린 제임스웹 망원경이 궤도 도착을 앞두고 있는 지금 얼마나 많은 작가가 그것을 매개로 한 상상력을 펼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물론 '쉬운 접근성'만이 아니다. 전통적 사회관계의 약화가 불러온 현상이기도 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오늘날 집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거나 약하게 소속된 자유로운 개인들은 최소화된 현실적 관계와 접촉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반면, 랜선으로는 수많은 사람과 동시에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무한한 정보 검색이 가능한 초연결성의 시대다. 이러한 관계 탈락과 관계 보충이 쌓이면서 기존의 현실은 과거가 되거나 이벤트가 되고, 가상과 비본질이 일상과 본질이 되는 화학적 뒤바뀜이 빈번해졌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수십 년 걸린 일이다. 그런 이행 속에서 갈등과 문제 해결이 그 핵심인 소설이라는 것은 점점 더 실제적 경험보다는 정보들의 지적 조작으로 만들어내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즉, SF는 일상적 거래와 감정 표출조차 전자의 언어에 매개되는 새로운 인간들이 기존의 익숙한 소설적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만으로는 SF가 이 시대의 유망한 이야기 형식으로 자리 잡기는 힘들 것이다. 거기엔 우리가 좀 더 더듬어서 찾아봐야 할 스위치가 있다. 내가 찾은 것은 '상실'이라는 스위치다. SF 작가 켄 리우는 독자에게 쓴 글에서 "지난날의 지혜가 설득력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울림 있는 질문에서 나는 목표 상실의 시대라는 거대한 짓누름을 느꼈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던 시대의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라는 루카치의 탄식은 별(항성)과 별 아닌 것(행성, 은하)을 구분한 이후 계몽될수록 무지해지는 이 거대한 우주라는 부조리 속에서, 죽음조차 끝이 아니라는 존재론의 파괴 속에서, 민주와 독재, 인권과 질서, 사랑과 우정을 추구해야 하는 무의미와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이 상실감은 오직 신만이 해결해줄 수 있는데, 그 신의 자리조차 비어 있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준 것이 어떻게 보면 과학적 상상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어쨌든 과학은 캄캄한 것을 밝게 비추고 있고,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한 가지 더 짚자면 한국 SF 붐을 중심에서 이끌고 있는 것은 바로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작가도 그렇고 독자도 그렇다. 이 지점에서 SF는 어떤 해방의 서사, 기존의 페미니즘이 할 수 없었던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의 미래가 펼쳐지는 자유로운 장으로 변신한다. 비단 페미니즘적 문제의식만이 아니다. 기후위기라든지 자아의 상실감이라든지 급변하는 사회 속 인간이 마주한 온갖 종류의 고통을 가장 실감 나게 보여주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관계, 새로운 사회 형태 등을 고민하는 것도 SF의 주요 역할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SF와 함께 'speculative fiction'의 번역어인 사변소설이라는 용어도 함께 사용되고 있다. 새로운 사회를 심각하게 꿈꾼다는 의미다. 어쩌면 여기에 SF라는 태풍의 핵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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