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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칼럼

[기자수첩] '불개미'된 소액주주, '주총꾼'과는 구분돼야

파이낸셜뉴스 2024.03.29 16:38 댓글0

산업부 권준호 기자
산업부 권준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기업설명(IR)팀 어디 있어, 나오라 그래!"
최근 취재 갔던 배터리 기업의 주주총회장 입구에서 한 주주가 다짜고짜 외쳤다. 연신 소리치는 탓에 회의장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던 다른 주주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주주는 직원 2명이 고개를 연신 숙이며 사과할 때까지 고함을 멈추지 않았다.

3월 말이면 유독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주총꾼'(1주만 가지고 주총에 참여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주주)이라 불리는 자들이다. 오죽하면 일부 기업은 악의적인 주주를 정리해 '블랙리스트'를 만든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재계 관계자는 "매일 장소를 바꿔 활동하는 '바쁜 몸'도 있다"며 "댓가로 돈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주총꾼'을 검색하면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총꾼이 챙기는 돈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 2005년 한국상장사협의회가 32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주주총회백서에 따르면 주총꾼이 활동을 통해 상장사들로부터 챙긴 연간 최고 수익은 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총꾼을 막기 위해 상품권을 구매한 적이 있다"는 기업인들의 호소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물론 주식 1주만 있어도 주주다. 주주는 회사의 주인이고, 주주총회에서의 자유로운 의견 표현은 당연한 권리다. 건강한 비판으로 회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주총꾼들의 행태는 비판보다는 비난에 가깝다. 다른 일반 주주들의 공감을 살 수도 없다. 주주의식이 높아지며 투자자들은 이제 이런 ‘눈속임’에 속지 않는다. 단순히 소리만 지르는 게 능사는 아니다. 적절한 근거를 가지고 발언권을 얻어 목소리를 내라는 것이다.

2주 동안 수많은 주주총회장을 방문하면서 진심 어린 질문과 따끔한 비판을 하는 개인 투자자를 많이 봤다. 주총을 진행하는 의장도 투자자 눈을 마주치며 사과할 때는 사과하고, 방향성을 공유할 때는 공유했다. 주총의 정의, '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들이 한 곳에 모여 여는 회의'와 정확히 일치했다. 주총은 이래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등 산업이 선진화된 만큼, 의미 없이 주총을 방해하는 고함이나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산업 발전 속도에 걸맞게 주총꾼들이 사라지길 바라본다. 배터리 기업 주총장 입구에서 소리쳤던 주주는 결국 회의장에는 들어가지도 않았고, 정식으로 질문도 안했다.

kjh0109@fnnews.com 권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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