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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칼럼

[기자수첩] 메기를 풀려면

파이낸셜뉴스 2023.03.28 18:09 댓글0

물이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비단 물뿐만이 아니다. 뭐든 오래 머무르면 나태하고 안일해진다. 기존 질서를 뒤바꿀 '메기'가 필요한 이유다. 흙을 뒤집고 산소를 불어 넣어줘야 더 건강한 생태계로 탈바꿈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 과점' 부수기에 한창이다. 소수가 권력을 틀어쥔 채 이자장사를 하고 있단 인식 때문이다. 대통령이 직접 '돈잔치'를 입에 올리며 작업엔 가속도가 붙고 있다. 완전경쟁 체제가 최종 목표로 보인다.

각종 태스크포스(TF)에서 인터넷뱅크 지방은행 공동대출, 방카슈랑스 영업기준 완화 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온라인 예금중개 서비스는 출시 시점까지 정해졌다. 여당은 인터넷은행만 따로 불러 토론회를 열며 분위기에 힘을 실었다. 현 시스템을 수술할 각종 메스가 착착 준비되고 있는 셈이다.

증권·보험·카드사에 지급결제 업무를 열어주는 방안, 반대로 KB국민은행의 투자자문업 허가 등도 궤를 같이한다. 소위 빅블러(Big Blur), 결국 '경쟁'을 붙여 '혁신'을 추구하겠단 의도다.

문제는 늘 따라붙어야 할 '소비자 보호'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당국까지 가세해 '혁신'이라는 찬사만 남발할 뿐 안전장치를 갖추자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우리는 은행 과열경쟁이 외환위기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부실은행 정리의 결과인 금융지주사들이 속을 썩이고 있지만 별도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 판을 깨는 것만이 해법은 아니다.

은행-비은행 상호 진출은 과연 수수료 부담 완화를 담보하는가. 되레 이자 평균이 상향되진 않을지, 고객은 2중·3중의 비용을 치르진 않을지, 예금자 보호 체계는 확실한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증권사 중엔 대기업 계열사도 수두룩하다. 이들에게 은행업을 맡겼을 때 부작용은 없을까.

금융당국 관계자는 "외국에선 그럼에도 혁신에 무게를 둔다"며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판단했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메기가 뒤흔든 흙을 가라앉히기까진 이를 퍼뜨린 시간의 몇 곱절이 걸린다. 탁해진 환경에 생물들이 떠나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 혁신의 동력은 '소비자의 희생'이 아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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