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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한국 경제는 털갈이 중

파이낸셜뉴스 2025.02.06 18:32 댓글 0

이홍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이홍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한국 경제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늘고 있다. 경제지표들이 이를 보여준다. 2024년 말 한국 주식시장(코스피)은 주가순자산비율(PBR) 0.83을 기록했다. 장부가 총액보다 시가총액이 17% 낮다는 것으로, 선진국 중 이런 나라는 한국뿐이다. 긴 시간 1200원대를 유지하던 환율이 2024년 말에는 1470원 선에 도달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측도 어둡다. 적어도 2%대는 유지했던 성장률이 2025년에는 1.8%(기획재정부) 또는 이보다 낮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보호무역 기조를 들 수 있다. 보호무역은 글로벌 교역량을 줄여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치명적이다. 한국의 철강·석유화학·저가 반도체 등 주력산업들이 중국에 쫓기고 있고, 중국이 낮은 가격을 무기로 디플레이션을 수출하는 것도 한국에는 부정적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인해 조만간 한국도 피해국이 될 것이라는 염려도 커지고 있다. 인구감소는 더 불안하다. 2024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0.76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국의 쇠락은 예정된 것인가? 하지만 한국이 새롭게 변신 중이라는 증거도 쌓이고 있다. 세계는 '내연기관차→전기차, 정보화→인공지능(AI), 평화시대→안보시대'로 전환 등 격변하고 있다. 놀랍게도 한국은 새로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첨단산업을 확보했다. 이차전지, 첨단 메모리반도체, 첨단조선과 국방, 소형모듈원전(SMR) 산업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선진국 중 이들 산업을 모두 갖춘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여기에 더해 한류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K콘텐츠, K식품, K화장품이 대표적이다. 이들 세 산업의 2024년 수출액이 350억달러(추정치)를 넘는다. 이 액수는 2024년 한국 조선업계 총수출 242억달러(추정치)를 훌쩍 넘는 규모다. 한류산업은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다른 나라들이 탈취하기 어렵다.

해외투자에만 관심을 가졌던 한국 기업들이 국내투자를 시작하고 있음도 새로운 희망이다. 반도체, 이차전지, 국방산업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현대차 그룹은 2023년 경기 화성에 29년 만에 처음으로 완성차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인구감소는 노동력 공급에 치명적이다. 이를 완벽히 해결할 방안은 없지만 완화 가능성은 있다. 한국 기업의 로봇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국내 외국인 거주자도 증가하고 있어서다. 노동자 1만명당 투입된 로봇 대수는 한국이 세계 1위(1012대)로 2위인 싱가포르(770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국제로봇연맹). 국내 거주 총인구는 2019년 5177만9000명에서 2023년 5177만5000명(통계청)으로 큰 변동이 없다. 외국인이 늘어서다. 다문화 국가로 진화하면서 부족한 노동력이 보충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수출환경이 어렵지만, 미국의 중국 견제가 훨씬 강해 한국에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

미국의 대중국 기술봉쇄로 한국이 도망갈 시간을 벌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 시장봉쇄도 호재다. 한국도 관세를 맞겠지만 한국과 시장 중첩이 높은 중국보다는 덜하다.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이 2014년 처음 흑자(809억달러)로 전환한 후 2024년 11월에는 9778억달러에 이르렀음에도 주목해야 한다. 외환위기를 다시 겪을 가능성이 희박함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한국 경제는 털갈이 중'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기존 산업을 첨단산업이 대체하고 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산업(국방, 원자력, 한류산업 등)이 새 먹거리가 되고 있다.

그동안 없었던 대기업의 국내 신규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산업로봇과 외국인이 인구문제를 완화할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보호막을 쳐주고 있다. 만년 부채국가가 순자산국가로 변했다. 암울한 가운데 서광도 비치고 있다.

이홍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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