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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생명의 조율사 멜라토닌, 건강과 젊음에 관여

파이낸셜뉴스 2025.01.15 07:00 댓글 0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생명의 조율사 멜라



멜라토닌은 동물 뿐 아니라 식물, 미생물에서 두루 분비된다.

포유류의 경우는 주로 뇌에 존재하는 송과선에서 분비되어 혈액으로 퍼진다. 지질과 물에 모두 잘 녹아서 혈액뇌장벽을 비롯한 거의 모든 세포막을 뚫는다. 어두워져야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생체 리듬을 조절해 밤에 잠들게 해준다.

평생 분비되는 것을 다 합쳐야 1밀리그램이 겨우 넘고 그중 60~80%가 0~10대에 분비된다. 건강한 사람의 멜라토닌 분비량은 하룻밤 10~80마이크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대사가 매우 빨라서 10~60분 정도면 반감기에 접어든다. 타액, 혈액, 소변 검사 등을 통해 수치를 측정한다.

멜라토닌은 '수면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은 해가 질 무렵부터 서서히 분비되어 우리 몸을 졸리게 하고, 밤 10시부터 새벽 4시 사이에 가장 많이 분비되었다가, 아침 7시 햇살이 들어오면 분비가 멈춘다. 우리 몸이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도록 설계된 이유, 해가 뜨고 지는 지구의 자전 주기에 맞춰 수면 사이클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멜라토닌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늘 '수면호르몬'이라는 용어가 멜라토닌의 기능을 너무 단순화한다고 생각해왔다. 멜라토닌의 역할은 단순히 잠을 자게 만드는 것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잠을 잔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잠의 역할은 무엇일까. 인간을 비롯한 거의 모든 진화된 생명체는 잠을 잔다. 왜 잠을 잘까. 그 이유는 마치 생존을 위해 물과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잠도 생존에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잠을 안 자면 우리는 죽는다.

잠이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잠을 통해 두뇌가 휴식을 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처리 및 저장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찌꺼기 정보들을 버리는 것이다. 마치 백신 프로그램을 돌려 버벅거리는 컴퓨터를 청소하는 것과 같다. 백신을 돌리고 나면 컴퓨터 처리속도가 빨라지는 것처럼 잠을 자고 나면 머리가 맑아진다.

둘째는 신경, 면역, 뼈, 근육 등 인체 모든 시스템을 재충전하는 것이다. 잠을 자고 나면 근육통이 완화되고, 상처가 낫고, 기분도 한결 좋아지는 것을 우리 모두 경험했을 것이다. 이것은 잠을 자는 동안 세포간 신호전달이 원활해져서 손상된 세포를 복구하고 재생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호르몬 분비다. 잠을 자는 동안 대부분의 장기는 더 느리게 활동하지만 내분비기관들은 오히려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 덕분에 필요한 호르몬이 충분히 분비되어 우리 몸의 균형이 잘 유지되도록 컨트롤한다. 그러니까 호르몬 균형의 핵심은 수면이라고 할 수 있다. 호르몬은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시키는 제어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식욕을 느껴서 열심히 먹다가도 포만감을 느끼면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혈당이 오르면 몸이 저절로 알아서 혈당을 내린다. 흥분하고 화를 내다가도 곧 진정한다.

스트레스를 받지만 결국 극복한다. 이렇게 우리 몸이 정상에서 조금 벗어났다가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호르몬이 우리 몸을 컨트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르몬 중에는 잠을 자야만 분비되는 것이 있고, 또 그에 의해 영향을 받는 호르몬이 있다.

잠을 제때 충분히 자지 않으면 신체 기능이 떨어져서 모든 호르몬이 전반적으로 잘 분비되지 않는다. 결국 잠이 호르몬 균형의 열쇠인 것이다. 그래서 수면 주기를 만드는 멜라토닌이 특별하다.

멜라토닌이 잘 분비되어야 잠을 잘 자고, 잠을 잘 자야 성장호르몬도 잘 나오고, 그래야 몸이 건강을 유지해서 다른 호르몬도 잘 분비된다. 뿐만 아니라 멜라토닌은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강력한 항산화 호르몬이다. 활성산소란 짝을 이루지 않은 전자를 가지고 있는 분자를 뜻한다. 굉장히 불안정하고 높은 에너지를 가져서 다른 물질로부터 전자를 빼앗으려고 한다.

활성산소가 전자를 빼앗기 위해 가장 흔히 공격하는 것이 DNA이다. 이로 인해 DNA가 손상되고 세포의 복제 오류가 발생한다. 이것이 노화를 부르고 누적되면 암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멜라토닌은 이 무시무시한 활성산소에 전자를 쉽게 내주어 안정된 물질로 바꿔버린다. 우리 몸이 분비하는 가장 막강한 '활성산소 청소부'인 것이다.

이 밖에도 멜라토닌은 면역계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면역계의 핵심세포인 백혈구 속에 멜라토닌 수용체가 존재하며, 면역계에 영향을 미치는 오피오이드(아편유사제)로 진통작용을 한다나 사이토카인(항체생산을 지시하는 세포신호전달물질) 분비를 멜라토닌이 조절한다.

아직 멜라토닌이 면역계에 어떤 원리로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으나 염증 형성 촉진제이자 억제제로 작용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다시 말해서 적당히 면역 반응을 일으켜 외부 침입 물질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면서 과잉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완충제의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멜라토닌이 렙틴의 활동을 억제하여 체중 증가를 막아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렙틴은 지방세포에서 분비하여 식욕을 억제해주는 호르몬인데 너무 많이 분비되면 저항성이 생겨서 오히려 비만을 초래한다. 렙틴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분비되는데 밤에 멜라토닌이 잘 분비되면 잠자는 시간 동안 렙틴의 분비를 억제해서 렙틴 저항성이 생기는 것을 막아준다고 한다.

멜라토닌은 혈압과도 관계가 있다. 혈압은 심장 박출량과 혈관저항에 따라 인체가 스스로 혈관의 수축 정도를 바꾸면서 항상성을 유지한다. 그런데 여러 혈관 조직 및 심혈관계와 중추신경, 말초신경 등에서 멜라토닌 수용체가 발견된다. 이는 멜라토닌이 혈압의 자율 조절에 관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처럼 멜라토닌은 호르몬 중의 호르몬, 핵심 호르몬이다.

바꿔 말하면 호르몬의 핵심은 수면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 가장 처음으로 소개하는 호르몬이 멜라토닌 호르몬인 것이다. 생명은 멜라토닌과 함께 시작되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생명의 조율사 멜라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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