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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구순 IT 대기자 |
"소액결제 피해 사례는 내부 보고를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언론 보도로 처음 접하고, 관련 부서에 '이 내용이 무엇인지'에 관해 물어봤다." KT 가입자 362명이 본인도 모르게 스마트폰 소액결제가 이뤄져 금전적 피해를 입은 사고에 대해 김영섭 KT 사장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내부보고 시스템 붕괴를 시인했다.
KT 최상위 결정조직인 이사회가 자격 없는 멤버로 2년 가까이 운영된 사실이 밝혀졌다. KT에는 이사회 지원, 준법 지원, 감사 지원 등의 내부통제 업무를 위해 100여명의 임원과 직원이 있지만 보고도, 법률검토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임직원 1만4000여명, 재계 순위 13위, 대한민국 최고의 기간통신사업자, 국민기업 KT의 경영시스템이 무너진 단면이다. KT 내부에서는 "드러난 것이 이 정도일 뿐, 자잘한 것들을 살펴보면 KT는 사실상 경영시스템이 무너진 상태"라고 안타까워한다.
KT는 특정 대주주가 소유하지 않고, 독립된 이사회와 전문경영진으로 경영이 운영되는 소유분산 구조다. 특정 기업에 휘둘리지 않는 국민기업의 모범적 지배구조를 갖춘다는 게 목표다. 그러나 정치권 외풍을 막을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최고경영자(CEO) 리스크가 상존해 온 것이 현재 KT 위기의 원인이다. 3년 임기 CEO의 임기 말이면 정치권 외풍이 강하게 불었고, 내부에서는 파벌이 만들어졌다. 15년 가까이 외풍에 시달리는 사이 KT 내부적으로는 시스템이 무너졌고, 외부적으로는 신뢰를 잃는 전례 없는 위기를 낳았다. 설상가상 지금 KT는 CEO 공백기다. 지난 11월 5일 새 CEO 모집공고가 시작된 이후 현 김영섭 CEO 조직은 사실상 식물조직이 됐다. 임원 인사나 내년 사업계획은 고사하고, 해킹사고에 대한 조사나 대응방안도 만들지 못한다. 이달 중 정부가 KT 해킹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지만, KT의 공식 설명이나 가입자 보상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메시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가입자 신뢰를 잃은 통신사업 위기상황에서도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는 탓이다.
지난 16일 KT의 새 CEO 후보로 결정된 박윤영 후보는 이번 주 중 인수TF를 구성, 경영구상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공식 취임은 내년 3월 말 주주총회 의결을 거쳐 이뤄진다. 현 CEO가 손을 놓고 새 CEO가 들어오기까지 무려 5개월간 CEO 공백이 생긴다.
그런데 KT 현재 상황이 5개월이나 컨트롤타워 공백을 방치할 만큼 한가한가 되돌아봤으면 한다. 정부의 KT 해킹 조사 결과에 따라 가입자 보상 문제부터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고,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하는데 현 경영진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새 경영진은 한가하게 취임 이후를 기다리면 안 된다. KT 정상화 로드맵을 분명히 제시하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야 한다. 가입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책임 있는 대책부터 내놔야 한다. 불법 펨토셀 접속이 가능했던 망 관리구조, 반복된 해킹과 개인정보 유출의 원인, 이사회와 경영진 검증 시스템의 허점도 당장 수습할 과제다. 이를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작업은 미룰수록 비용만 커진다.
이사회도 적법한 절차를 마련해 새 경영진이 책임 있게 나설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스스로 결격멤버조차 가려내지 못한 이사회의 엉성한 운영에 대해 뒷수습이라도 할 수 있도록 방법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이사회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 있는 행동이다.
현 경영진 역시 새 경영진이 빠르게 조직을 구성하고 책임 있는 메시지를 낼 수 있도록 지휘봉을 넘겼으면 한다. 1년의 절반을 허송세월하는 KT의 뒷걸음질을 방치하지 않는 게 현 경영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리다. 현재 KT는 전례 없는 위기다. 새 경영진은 위기를 타개할 대책을 만들어내고, 새 경영진이 책임과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이사회와 현 경영진이 최선을 다해 지원해야 한다. 지금 KT는 한가하지 않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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