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남빵 대기 2시간 반' 경주 도심 상권 '들썩'
SNS 확산·외신 보도 타고 외국인 관광객 급증
경주시 브랜드 평판 1위, 글로벌 회의 도시 부상
보문단지, 상권 활성화 방안 요청  |
| 지난달 27일 낮 쌀쌀한 늦가을 날씨에도 경주 황리단길에 위치한 한 디저트 가게 앞에서 손님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사진=최승한 기자 |
[파이낸셜뉴스 경주=김장욱·최승한 기자]
"2시간 반이요? 멀리서 경주까지 왔는데 좀 빨리 살 수 없을까요" 지난 11월 27일 오후 경북 경주시 황남동 '황남빵’ 본점. 계산대에는 '현재 대기시간 2시간 30분’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기차 시간을 확인하던 한 관광객은 발을 동동 구르며 이렇게 요청했지만 예외는 없었다. 매장 안에서는 직원들이 쉴 새 없이 빵을 굽고 포장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취향을 사로잡은 황남빵이 APEC(10월27일~11월1일)을 계기로 경주의 상징으로 부상하면서 다른 가게의 '경주빵’ '찰보리빵’ 등도 낙수효과로 덩달아 매출이 늘었다.
■황리단길 "11월에 이렇게 붐빈 건 처음"
같은날 오전 황리단길 골목은 평일인데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대릉원 돌담길을 따라 관광객이 줄을 이었고, 카페 등 상당수 가게마다 대기표가 붙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음식점과 카페를 가리지 않고 손님이 몰렸다.
이병희 황리단길 상가연합회 회장은 "보통 11월은 비수기인데 올해는 APEC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매출이 20~30% 이상 늘었다"며 "외국인 단체 관광객 증가세가 뚜렷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APEC 직후인 11월 2일부터 21일까지 경주 방문객은 294만9637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270만3159명)보다 9.1% 늘었다. 외국인 방문객은 9만9915명으로, 전년 대비 27.5% 증가했다. 특히 황리단길과 대릉원 방문객은 63만2216명(전년 50만5211명)으로 25.1%, 동궁과월지는 13만9923명(전년 11만8745명)으로 17.8% 늘었다.
 |
| 이병희 황리단길 상가연합회장이 파이낸셜뉴스 취재진에게 상권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최승한 기자 |
■외국인 관광객·단체 여행 급증…'APEC 트레일' 운행
첨성대가 위치한 월성지구 주차장에는 관광버스로 가득 찼다. 내국인 뿐만 아니라 대만, 일본, 미국 단체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사진을 찍으며 유적지와 가을정취 물씬한 거리를 만끽했다. 한 음식점 주인은 "관광버스가 오전부터 줄을 서며 밀려와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점심 피크가 예전보다 1시간 이상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경북문화관광공사는 이런 분위기에 맞춰 '경주 APEC 트레일’ 여행상품을 출시했다. APEC 회의장과 정상 만찬 장소, 황리단길·보문관광단지 등 주요 동선을 1박2일 코스로 엮은 스토리형 투어로, 정상회의의 기억을 관광 콘텐츠로 확장한 프로그램이다. 공사 측은 "회의 기간 외신 보도와 SNS 확산으로 경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출시 초기 예약률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고 전했다.
숙박업계도 활기를 띠고 있다. 황남동·교동·보문단지 일대 숙소 예약률은 70%를 웃돌았다. 한 숙박업계 관계자는 "11월 예약률이 이렇게 높은 건 2018년 이후 처음"이라며 "해외 정상과 회의 관계자 체류 효과가 이어졌다"고 밝혔다.
■브랜드평판 1위 오른 경주…'APEC 효과’ 확인
이같은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됐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도시 브랜드평판’ 조사에서 경주시가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최근 한달간 국내 226개 기초지자체를 대상으로 수집한 빅데이터 3억7796만여건을 분석한 결과, 경주시는 브랜드평판지수 672만1918점으로 1위를 기록했다. 전월(226만3010점) 대비 197% 급등한 수치다.
연구소는 "전체 빅데이터가 감소한 상황에서 경주만 유독 큰폭의 상승세를 보였다"며 "APEC 개최로 도시 이미지, 미디어 노출, 시민 소통량이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포스트 APEC 본부 신설…도시 브랜드 고도화
경주시는 식지 않는 APEC 열기를 제2 도약의 원동력으로
삼기 위해 행정조직 개편을 단행, '포스트 APEC본부’를 신설했다. 본부는 전략기획과·미래사업과·디지털정책과·인구정책과로 구성돼 APEC 레거시 사업과 국제행사 운영을 전담한다. 시 관계자는 "행사 유산을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본부급 조직을 통해 문화·AI·인구정책을 통합 관리하는 체제로 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더해 경북도는 '포스트 APEC 추진전략’ 10대 사업을 추진한다. △세계경주포럼 △APEC 문화의 전당 △보문단지 리노베이션 △APEC 개최도시 연합협의체 △아시아태평양 AI센터 △경주 CEO 서밋 △신라통일평화정원·한반도통일미래센터 조성이 핵심이다.
도는 1000억원 규모의 '포스트 APEC 레거시 사업’을 단계적으로 진행한다. 1단계(2025~2026년)는 문화·관광 거점 조성, 2단계(2027~2028년)는 AI산업·평화번영 프로젝트 확산, 3단계(2029년 이후)는 국제협력기구 유치와 도시 브랜드 고도화가 목표다.
이철우 도지사는 "글로벌 호텔 체인 투자 문의와 관광객 증가세가 이미 가시적"이라며 "APEC 유산이 경북 전역으로 확산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 관광객들이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며 황리단길을 걷고 있다. 황리단길 상인회 제공 |
■균형발전 새 모델..중앙정부-국회 적극 협력 추진
김석기 국회의원(국민의힘. 경주시)은 "이번 경주APEC은 국토균형발전의 새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도시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앞으로 본격화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추진하고, 특히 국회 차원에서 중앙정부의 관심 및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을 쏟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편 APEC 기간 밤이면 빛으로 물들었던 보문관광단지 상권은 APEC 이후 특수가 비켜갔다는 게 상인들의 전언이다. 이곳 식당 업주 A씨는 "APEC 행사 때는 정상회의 등으로 각종 통제와 차량 접근이 막혀 매출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엑스포공원 인근 카페 사장 B씨도 "배달이 막히고 손님이 줄어 타격이 컸던데다 이후에도 회복이 안되고 있다"고 했다.
상인들은 "APEC이 도시 전체에 큰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기대했던 APEC 이후 특수는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여전히 관광객 발길이 이어지는 황리단길, 대릉원과 보문단지를 연결하는 순환형 셔틀버스 운행 등 이곳 상권 활성화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425_sama@fnnews.com 최승한 김장욱 기자
Copyrightⓒ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