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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베푼 편리함, 국민이 갚자" 갑자기 애국쿠팡 깃발, 그 이유가 [쓸만한 이슈]

파이낸셜뉴스 2025.12.03 15:52 댓글 0

새벽배송 금지, 중국인 직원 유출 근거로
"알리·테무에 한국 넘기려는 것" 음모론
전문가 "이번 해킹 책임은 전적으로 쿠팡"


3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본사 모습. /사진=뉴스1
3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본사 모습.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중국 알리, 테무가 한국을 점령하지 않도록 쿠팡을 지켜야 한다."
"그 동안 우리 국민에게 편리함을 베푼 쿠팡을 애용하자."

국내 최대 이커머스 업체 쿠팡에서 최근 3370만건에 달하는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한 뒤 온라인엔 예전에 없던 분위기가 연출됐다. SK텔레콤, KT, 롯데카드 등 올해 개인정보 유출 피해가 발생한 다른 기업들에 비난과 비판이 쏠리던 것과 다른 양상이었다.

개인정보 유출로도 모자라 부적절한 대처로 소비자들의 화를 키우고 있는데도 쿠팡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이들은 왜 쿠팡 보호에 나섰을까.


쿠팡은 지난달 29일 개인정보 유출 사고 경위를 밝힌 뒤 고객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고 통지문인 해당 문자엔 '노출'이라는 용어를 다섯 차례나 언급하며 정보를 유출시킨 쿠팡의 잘못을 애써 축소시키려고 했다. 홈페이지에 박대준 대표 명의로 올린 사과문에선 '무단 접근'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쿠팡도 해킹 범죄 피해자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일각에서 쿠팡 역시 피해자라는 음모론적 주장이 제기됐다.

쿠팡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시나리오는 대략 이렇다.

출발은 현재 노동계에서 밀어붙이고 있는 새벽배송 전면금지다. 민주당은 택배기사 건강권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민주노총과 이커머스 업체간 갈등 중재에 나섰다.

시나리오는 중국 자본의 도움을 받은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중국을 도와주기 위해 새벽배송 금지에 나섰다고 주장한다. 쿠팡의 강점이자 대표적인 경쟁력인 새벽배송이 금지되면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인 중국의 이커머스 업체 알리와 테무가 고객들을 끌어올 거라는 얘기다.

'새벽배송 금지'에 대한 국민 반발이 심하자 배송기사가 사망하고, 물류창고 화재가 나더니 개인정보까지 털렸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 모든 게 중국게 커머스업체의 한국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주로 올라오는 곳은 '윤어게인'과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보수 온라인 커뮤니티였다. 해당 내용을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한 듯 유사한 내용의 글들은 해당 커뮤니티는 물론 관련 기사에도 꾸준히 달렸다.


시나리오는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그 정부가 중국산 이커머스를 살리기 위해 사실상 쿠팡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 논리도 차곡차곡 쌓아갔다.

먼저 쿠팡 내부인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린 "쿠팡 IT 인력 반 이상이 중국인이고 매니저는 거의 90% 이상이 중국인"이라는 글을 근거로 들었다.

현 정부의 압박으로 쿠팡이 IT인력에 중국 사람을 대거 채용해 투입했다는 주장이다. 최근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중국의 알리바바와 업무 협약을 체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올해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지난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등을 타임테이블로 만들어 연결하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SKT 해킹은 대통령 선거 직전 발생했고 KT, 롯데카드 해킹은 중국 무비자 입국 허용 때 일어났다. 쿠팡 해킹은 중국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이후"라며 "중국인들이 한국에 들어와 대선에 관여하게 하고 해킹을 통해 이들에게 여러 정보들을 주면서 중국 기업의 한국 진출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나리오는 시나리오로 그치지 않고 일상이 됐다. 최근 한 네티즌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쿠팡 사태로 정부 욕하는 회사 동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글 작성자인 A씨는 "(동료는) 이재명 정부가 친중이라 중국에 항의도 못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면서 "그래서 쿠팡이 IT인력 절반을 중국인으로 채용한 거라고 말하니 그 동료는 '민주당 친중 정책 때문에 중국인들이 밀려 들어오니까 어쩔 수 없었던 것', '알리 테무 때문에 쿠팡을 보듬어 줘야 한다' 등의 아무말 대잔치를 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급 피곤해져서 그냥 수긍하는 척 하고 말았다, 대화 끝나니까 머리에 쥐 나려고 한다"고 호소했다.

이밖에도 "쿠팡 관련 논점 흐리는 얘기해서 뭐라 하면 '짱깨'니 뭐니 하면서 입 틀어 막는다"거나 "쿠팡과 알리·테무에 대한 불특정 다수의 댓글에 이질적인 일관성을 보이는 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노골적"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일단 쿠팡을 보호할 필요 자체가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알려진 이후 미국 증시 첫 거래일에서 주가가 5% 넘게 떨어졌다. 1일(현지시간) 나스닥에서 쿠팡(CPNG)은 전 거래일보다 5.36% 하락한 26.65달러에 마감했다. 2일도 약세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월가의 해석은 시장 반응과 달랐다.

JP모건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분석에서 “쿠팡이 자발적 보상 패키지를 지급할 수 있고 한국 정부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어 단기 투자 심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쿠팡의 과징금이 최대 1조원대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경쟁 업체가 없는 쿠팡의 시장 포지셔닝과 한국 소비자들의 데이터 유출 이슈 관련 민감도를 고려했을 때 이번 사태로 인한 쿠팡의 소비자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은 해킹 사건 자체로만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네티즌인 B씨는 "이재명 대통령은 중국에 항의 못할 거라고들 하는데 이재명 정부가 왜 항의하냐. 해외에서 한국인 범죄자 나온다고 해외 국가가 한국에 항의하나"라면서 "그럼 루나 사태 때 '한국인' 권도형이 나왔다고 전 세계가 한국에 항의하고 한국인을 질타했나"라고 꼬집었다.

쿠팡이 이번 사건의 피해자라는 일부 주장과 달리 개인정보 유출의 1차 책임이 쿠팡에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안성진 성균관대 컴퓨터교육학과 교수는 "민감한 정보를 처리하는 직원의 경우 '신원조회' 등의 방식으로 철저히 검증한 뒤 채용해야 하고 퇴사한 직원은 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해야 하는데 쿠팡이 그런 부분에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역시 "퇴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는 그 자체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쿠팡에 실질적으로 무거운 책임이 있다고 보여진다"고 쿠팡의 책임을 물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네티즌들이 댓글로 주고받은 대화는 시나리오에 매몰되기 보다 문제 인식을 갖고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한 네티즌이 "쿠팡은 그 동안 잘못한 게 있어서 엄청난 비판을 받을 거 같다. 다만 (쿠팡을 비판하는 게) 알리나 테무를 위한 홍위병 짓인 거 같아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고 적자 또 다른 네티즌이 "그렇다고 쿠팡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옹호하기만 하면 과거 '한국인을 미개인'이라 말하던 쿠팡을 옹호하는 홍위병이 될 뿐"이라고 받아쳤다.

'한국인 미개인' 발언은 지난 2019년 언론에 보도된 "김범석 쿠팡 의장은 '한국인들은 큰 물에서 놀지 못해서 시야가 좁고 스마트하지 못하며 도전 정신이 없고 정직하지도 않다'면서 경영진을 전원 외국인으로 갈아 치운 이유에 대해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한 내부 관계자의 말이다.

이에 앞선 네티즌은 "쿠팡 옹호를 할 생각이 없기는 하다. 사실 쿠팡은 이거 말고도 여러가지 혼나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결국 때가 왔다는 느낌"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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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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