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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른 오리들, 당신의 해석은 [이현희의 '아트톡']

파이낸셜뉴스 2025.12.01 18:10 댓글 0

이강소 '무제(Untitled)-91057'


이강소 '무제(Untitled)-91057' 서울옥션 제공
이강소 '무제(Untitled)-91057' 서울옥션 제공
이강소는 미학적 정체성과 독자성에 대한 고민이 활발했던 1970년대부터 회화, 조각, 판화, 사진, 설치, 행위예술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열린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이에 그는 작품의 제작의도를 최대한 배제한 채 작업한다.

1980년대 중반, 이강소는 '붓질'이라는 행위에 주목하며 회화에 집중했다. 회청색 물감으로 화면을 바르고, 물감이 마르기 전에 흰색 물감을 묻힌 넓은 붓을 빠르게 지나쳐 공간을 만든다. 다시 그 위에 간결하고 과감한 붓질로 배, 오리, 사슴, 집 등을 그려 넣는다.

그려진 이미지들은 묘사가 아니라 형태를 빌려온 것으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매개체로 남는다. 직감적으로 창작하는 방식은 손의 감각과 자연스러운 호흡을 따르며, 감상자에 따라 다른 형상과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사각 화면에 오리 형상을 빠르게 그려나간 1991년 작품 '무제(Untitled)-91057'은 화면 속 오리들의 시선이 가리키는 방향이 모두 제각각이다. 한데 모이는 듯하면서도 퍼지고, 어딘가를 향해 가는 것 같으면서도 멈춰 있다. 깊이를 표현하지 않은 배경이지만 물감이 스친 붓자국을 따라 일렁이기도 하고 침잠하기도 하며 파동이 일어난다. 오리들은 파동을 타고 부유하듯 자리해 인상주의적 수변 풍경을 자아낸다. 오리는 작가가 젊은 시절 동물원을 찾으며 관찰한 경험에서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작가는 오리라는 이미지에 특정한 상징성을 강요하지 않으며, 인지될 수 있는 형태로만 표현한다. 보는 이의 경험과 시선에 따라 자유롭게 해석될 수 있는 유동적인 이미지로 남는 것이다. 열린 구조를 지향하면서 관객이 주체적으로 작품을 완성하도록 유도하는 작가는 물을 것이다. "이 작품을 바라본 당신만의 해석은 어떤가요?"

이현희 서울옥션 아카이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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