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등 채권단, 자율협의회 운영 협약 체결
NCC 통합·설비 감축 논의 본격화 기대감  |
| 충남 서산 대산석유화학단지 전경. 연합뉴스 |
[파이낸셜뉴스] 한국산업은행을 비롯한 주요 채권단이 석유화학 업계 구조조정을 위한 금융지원 조건을 공식화하면서 공급과잉 해소 및 생산설비 감축을 중심으로 한 사업 재편이 본격화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업계는 이번 조치가 단순한 유동성 지원을 넘어 업계 전반의 체질 개선을 촉진하는 '구조 개편 신호탄'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전날 '자율협의회 운영 협약식'을 열고 석화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금융지원 조건과 절차를 공식 발표했다. 협약에 따라 채권단은 석화 기업의 자구노력을 전제로 △만기 연장 △이자 유예 △이자율 조정 △추가 담보 취득 제한 △신규자금 지원 등의 조치를 제공한다.
구조조정 절차는 기업이 주채권은행에 구조혁신 지원을 신청하면서 시작되며 이후 △자율협의회 소집 △외부 공동실사 △사업재편 계획 검토 △산업통상자원부 승인 △구조혁신 약정 체결 순으로 진행된다.
업계는 이번 조치가 단순한 유동성 지원을 넘어 공급 과잉 해소와 설비 감축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구체적인 설비 통합·공급 감축안을 제출한 기업을 중심으로 실질적인 자금 지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산업단지를 단위로 한 사업재편 논의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석화 업계는 수익성 악화로 인해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 비중이 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상황 자료에 따르면, 석화 업종 내 한계기업 비중은 지난 2023년 10.1%에서 지난해 11.1%로 1.1%p(포인트) 상승했다.
이에 따라 석화 업계는 산업단지별로 나프타분해설비(NCC) 감축 논의에 본격 착수한 상태다. 대산산단에서는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 여수산단에서는 GS칼텍스와 LG화학, 울산산단에서는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 등이 NCC 설비의 통합 및 공동 활용 방안을 함께 검토 중이다. 아직 구체적인 감축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정부의 금융지원 발표와 맞물려 실질적인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석유화학 업계의 구조조정 움직임은 지난 2017년 정부가 추진한 '업종별 경쟁력 강화 방안'과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당시 정부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와 산하 3개 분과회의를 통해 기업별 자구계획 이행 상황을 점검했고 업계는 테레프탈산(TPA)·폴리스티렌(PS) 등 공급과잉 품목을 중심으로 사업 재편에 착수했다.
LG화학은 여수 PS 생산설비의 생산량을 연 10만t에서 5만t으로 절반 줄이는 한편 고부가가치 합성수지(ABS) 설비를 3만t 증설했다. 한화케미칼도 울산산단 내 연 20만t 규모 가성소다 설비를 유니드에 매각하며 생산설비 효율화를 추진한 바 있다.
전문가들도 석유화학 업계의 사업재편이 정책적 금융 지원과 맞물려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으로 내다봤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세계무역기구(WTO) 체계가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에서 각국이 산업 보호 정책을 내세우는 것이 오히려 글로벌 기준이 되고 있다"며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중심이 되어 지원을 이어간다면 석유화학 업계도 위기 극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정유·석유화학 합작법인(JV) 설립 이후에는 기술 통합과 미래 경쟁력 확보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업계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moving@fnnews.com 이동혁 기자
Copyrightⓒ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