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견제 동참 요구하는
트럼프에 실용외교가 답
李 '사이다 발언'은 역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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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고문 |
이재명 정부가 본격적 시험대에 올랐다. 오는 25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등 대통령이 결단해야 할 국정 과제들이 줄을 이으면서다. 일단 내치에서 이 대통령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산재에 대한 강경 대응이 그랬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근로자가 사망한 SPC삼립 시흥공장을 방문, 경영진을 혼쭐내다시피 했다. 이달 초엔 사망 사고를 낸 포스코이앤씨 등을 겨냥한 듯 건설면허 취소 검토를 지시했다.
이와 함께 조국·윤미향 사면도 단행했다. 입시비리나 위안부 후원금 횡령 건 등으로 이들에 대한 여론이 매우 부정적인데도 지지도가 높은 허니문 기간에 범여권 결집을 위해 밀어붙인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소수 야당이 워낙 죽을 쑤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황당한 '비상계엄 자해극'을 저지른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 국민의힘은 자중지란으로 거여 견제에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동은 이 대통령에게 녹록지 않은 무대다. 동맹보다 거래가 먼저인 트럼프라 각종 경제·안보 청구서를 들이밀 게 뻔하다. 이 대통령의 내치용 '사이다 발언'이 먹힐 리도 없다. 불길한 조짐은 벌써 나타났다. 구두 합의한 한미 관세협상 결과를 놓고 양국 간 이견이 불거졌다. 대통령실은 미국산 소고기·쌀 등의 추가 개방은 없다지만, 백악관은 정반대로 주장했다. 혹여 농촌이 주요 표밭인 트럼프가 이를 고집한다면 이 대통령의 입장은 난감하게 된다.
관세협상의 후속 마무리도 쉽지 않은 데다 안보 분야에서도 난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며칠 전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기자간담회에서 한미동맹 현대화와 관련, "숫자가 아니라 역량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주한미군 감축을 시사했다. 심지어 그는 "전략적 유연성은 병력과 장비를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도 했다. 미군 병력·장비를 한반도에만 고정 배치하는 건 효율적이지 않다는 트럼프 정부의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만약 이번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의 역할 조정이 공론화된다면? 즉 '북한 억제'에서 '중국 견제'로 역할을 확대하는 방안이 공식 의제가 된다면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이 지난달 관세협상 때 한국에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2.6% 수준이었던 국방비를 3.8%까지 올릴 것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측 합의문 초안엔 "중국 억제를 더 잘할 수 있도록 주한미군의 유연성을 지지하는 성명을 한국이 발표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단다. 우리로선 경제적 부담을 넘어 미중 사이 샌드위치 신세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스페인의 투우에서 흔히 투우사들은 붉은 망토를 흔들며 소와 관중을 흥분시킨다. 하지만 주연 투우사가 소의 숨통을 끊는 최후의 순간에는 그런 쇼가 통하지 않는다. 실제로 트럼프가 회담 테이블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거론한다면? 이 대통령은 투우장의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을 맞게 된다. "중국에도 셰셰, 대만에도 셰셰 하면 된다"며 눙치고 넘어가긴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권의 '한반도 운전자론'과 같은 허울만의 자주를 들먹일 계제는 아니다. 그런데도 정상회담에 앞서 한미동맹의 틈을 벌리는 행보를 하고 있다면 문제다. 최근 정부는 한미 연합훈련을 조정(축소·연기)하면서까지 대북 유화책을 폈다. 하지만 돌아온 건 "허망한 개꿈"(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라는 막말이었다. 현시점에서 전시작전권 조기 환수 목소리도 생뚱맞아 보인다. 주한미군 감축의 명분만 줄 뿐이란 점에서다. 더욱이 지금은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면서 맞은 신냉전기다. 서해 잠정수역에 '인공섬'을 건설해 서해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그런 징후다. 이럴 때일수록 현 정부는 그간 공언한 대로 국익 우선 실용외교를 실천해야 한다.
kby777@fnnews.com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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