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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후/관점 디자이너 |
[파이낸셜뉴스] 최근 반도체 시장에서 주목받는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AI 데이터센터다. 거대한 언어모델을 학습시키고, 수많은 사용자 요청을 처리하는 서버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데이터를 주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저장·전송 속도’가 병목 현상으로 떠오른다. 바로 이 지점에서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의 성능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각된다. 그런데 SSD의 성능을 결정짓는 진짜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 많은 이들이 메모리칩, 즉 NAND 플래시에만 주목하지만, 정작 SSD의 두뇌 역할을 하는 컨트롤러 칩이야말로 성능과 신뢰성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다.
SanDisk와
파두,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연결 고리
세계적인 NAND 제조사이자 SSD 강자인 SanDisk(현재 웨스턴디지털 그룹 내 브랜드)는 오랜 기간 고성능 SSD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SanDisk 역시 모든 SSD 컨트롤러를 자체적으로 설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시장 요구는 갈수록 까다롭고, AI 데이터센터용 SSD는 기존의 소비자용 제품과는 차원이 다른 성능과 안정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파두’다. 파두는 한국의 SSD 컨트롤러 전문 팹리스로, 글로벌 스토리지 생태계 속에서 SanDisk 같은 메모리 강자와 직접 연결되는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SanDisk가 NAND라는 ‘몸체’를 제공한다면, 파두는 SSD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두뇌’를 제공하는 셈이다. 이 구조는 단순한 하도급 관계가 아니라, AI 시대에 필요한 성능 혁신을 함께 만들어내는 전략적 파트너십에 가깝다.
컨트롤러가 성능을 좌우한다
SSD를 하나의 자동차에 비유해보자. NAND 플래시는 엔진이자 연료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엔진을 얹어도, 이를 제어하고 노면 상황에 맞게 속도와 출력을 조율하는 전자제어장치(ECU)가 없다면 고성능은 불가능하다. SSD도 마찬가지다. 컨트롤러가 얼마나 똑똑하게 데이터를 배치하고, 불량 셀을 우회하며, 읽기·쓰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지가 실제 속도와 수명, 안정성을 결정한다.
파두의 기술력은 바로 이 영역에서 빛을 발한다. 파두는 PCIe Gen5 기반 SSD 컨트롤러를 세계 최초 수준으로 상용화했으며, 이는 기존 대비 2배 이상의 데이터 전송 속도를 구현한다. 단순히 빠른 것만이 아니라, 전력 효율성과 발열 관리, 에러 정정 기술(ECC) 등에서도 업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AI 데이터센터가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멈추지 않고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두의 기술은 단순한 성능이 아니라 서비스 가용성과 직결되는 필수 조건이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드러나는 차별성
컨트롤러 시장은 실리콘모션(SMI), 마벨(Marvell) 같은 글로벌 강자들이 선점해왔다. 이들과 경쟁하는 후발주자인 파두가 어떻게 이름을 알렸을까? 바로 특정 틈새 시장을 정밀하게 겨냥한 기술력 덕분이다. 파두는 소비자용 보급형 SSD보다 데이터센터·기업용 고성능 SSD에 집중했다. 이는 진입 장벽은 높지만, 성공 시 안정적인 매출과 글로벌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이다.
SanDisk와의 연관성은 파두의 기술 우수성을 간접적으로 입증한다. 글로벌 메모리 강자인 SanDisk가 파두의 컨트롤러를 채택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부품 조달을 넘어 세계적 수준의 품질 검증을 통과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수많은 후보군 중에서 가격·성능·안정성에서 모두 기준을 충족한 파트너만 선택한다. 다시 말해, 파두의 컨트롤러가 SanDisk의 SSD에 적용된다는 것은 곧 “세계적 기준을 통과한 기술력”임을 보여준다.
투자자 시각에서 본 시사점
최근 SanDisk 주가가 급등한 배경에는 AI 스토리지 수요 확대가 있다. 이 흐름은 단순히 SanDisk만의 호재가 아니다. 공급망 속 핵심 부품을 제공하는 파두 역시 동반 수혜를 누릴 수 있다. AI 서버 한 대에 수십 개 SSD가 탑재되는 시대, SSD 성능 향상의 열쇠를 쥔 파두 컨트롤러의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파두는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된 유일한 한국 SSD 컨트롤러 기업이라는 점에서도 상징적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 기업의 성장 스토리를 넘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저변 확대라는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메모리 강국 한국이 ‘저장’에서 ‘제어’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반도체 생태계 내 위상 강화로 이어진다.
두뇌가 강해야 몸도 산다
AI 시대의 경쟁은 속도와 안정성의 경쟁이다. 그리고 그 싸움의 최전선에 SSD 컨트롤러라는 ‘두뇌’가 있다. SanDisk와 같은 글로벌 메모리 기업이 파두와 손잡는 이유는 단 하나다. 파두의 기술이 없으면, 고성능 SSD라는 완전체를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SanDisk와 파두의 관계는 단순한 고객·공급사 관계가 아니라, AI 인프라 시대를 떠받치는 공동의 엔진이다. 파두는 NAND 강자들의 몸에 두뇌를 불어넣는 존재로서, 앞으로 AI와 데이터 경제의 중심 무대에서 더욱 중요한 이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박용후/관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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