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단 K바이오 기술수출 (상)
단일 후보물질 넘어 플랫폼 수출
일등공신 꼽히는 에이비엘바이오
올 GSK 등과 계약규모 8조 육박
다른 제약사들도 잇단 조단위 잭팟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올해 기술수출 20조원을 돌파하며 글로벌 바이오 강국으로의 도약을 시작했다. 단순히 계약 규모만 커진 게 아니라 '질적 성장'을 이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기술수출 20조원 돌파는 K바이오의 확장성과 기술력을 세계가 인정했다는 상징적 숫자라는 분석도 나온다.
■에이비엘바이오, 플랫폼 8조원 계약
17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제약·바이오 업계 기술수출 규모가 사상 처음 20조원을 돌파하는 '잭팟'을 터뜨린 가운데, 1조원 넘는 계약이 7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 17건 중 계약규모가 밝혀지지 않은 3건을 제외하고, 14건 중 절반이 1조원 이상의 대형 계약인 셈이다.
역대급 기술수출 계약 달성의 일등공신인 에이비엘바이오는 그랩바디-B 플랫폼을 앞세워 GSK와 일라이릴리 두 곳과 잇달아 '조 단위' 기술수출 계약을 했다. K바이오 플랫폼 수출의 대표 사례로 평가되는 '그랩바디-B'는 뇌혈관장벽(BBB) 셔틀 플랫폼이다. 상반기 영국 GSK와 최대 30억2000만달러(약 4조10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했다.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한 것으로 그랩바디-B를 활용해 BBB를 통과할 수 있는 치료제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GSK가 전 세계 개발·상업화 권리를 확보하는 구조다.
이어 하반기에는 지난 11월 미국 일라이릴리와 그랩바디-B 플랫폼 기반 후보물질 개발 및 상업화를 위한 기술이전 계약을 했다. 총규모는 26억200만달러(약 3조8200억대)인데, 이 중 계약금 4000만달러(약 580억원)를 먼저 받고 개발·허가·상업화 단계별 마일스톤으로 최대 25억6200만달러(약 3조7400억대)를 추가로 받을 수 있으며, 제품 매출에 따른 로열티도 별도로 수취한다. 게다가 일라이릴리는 기술이전 직후 에이비엘바이오에 약 1500만달러(220억원) 규모로 지분 투자까지 단행했다. 글로벌 빅파마가 국내 바이오 기업에 직접 투자한 최초의 사례다.
■내년 상반기도 '밝음'
앞서 지난 3월엔 알테오젠이 메드이뮨(아스트라제네카 자회사)과 정맥주사(IV)를 피하주사(SC)로 바꾸는 플랫폼 'ALT-B4'로 약 2조원에 달하는 대형 기술수출 딜을 했다. 메드이뮨·아스트라제네카가 다수 항암제의 SC 제형 글로벌 개발·상업화에 대한 독점 권리를 확보하는 조건이며, 알테오젠은 매출 로열티를 별도로 수령하게 된다. ALT-B4는 피하조직의 히알루론산을 분해해 고용량 약물을 짧은 시간에 SC로 주입 가능하게 만드는 인간 히알루로니다제 플랫폼이다. 수시간 걸리는 IV를 가정·외래 SC로 바꿔 투약 시간·의료진 리소스를 크게 줄일 수 있고, 다양한 항암제에 공통 플랫폼으로 적용 가능해 파이프라인 확장성이 크다.
5월엔 알지노믹스도 일라이릴리와 리보핵산(RNA) 편집 치료제 개발을 위한 최대 13억3400만달러(약 1조9000억원) 규모의 플랫폼 기술이전에 성공했다. 유전성 난청질환 타깃 RNA 치료제를 개발하는 계약이다. 알지노믹스가 초기 연구개발(R&D)과 후보물질 도출을 담당하고, 일라이릴리가 후속 개발·상업화를 전담하는 다중 옵션 구조다. 일라이릴리가 모든 옵션 행사 시 총 1조9000억원 이상에 상업화 로열티도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처럼 글로벌 기술수출이 단일 후보물질이 아니라 플랫폼으로 확장되면서 향후 전망은 더 밝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 올해 이뤄진 기술이전 계약의 약 65%는 플랫폼 딜이다.
바이오 플랫폼 수출은 단일 신약 대비 리스크가 낮고 반복수익이 가능한 '로 리스크 하이 리턴' 모델로 평가된다. 한 플랫폼으로 다수 물질, 적응증, 모달리티에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초기 계약 성공 시 후속 옵션 및 확장계약을 유발할 수도 있다. 물질이전 없이 기술권만 이전하면서 임상 실패의 부담도 줄어든다.
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항체약물접합체(ADC), 이중항체, SC 제형 등 플랫폼 기술이 신약 기술수출을 주도하고 있다"면서 "특허 절벽을 앞둔 빅파마들이 대응에 나서고 있어 내년에도 기술수출은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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