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정훈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
구글이 세 차례 고정밀 지도 반출 요청을 했고, 정부는 지난 11일 또다시 보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미국 상공회의소는 즉각 우려를 표명했다. 2007년 첫 신청 이후 계속된 이 논쟁은 규제 갈등을 넘어 국가안보, 산업 생태계, 글로벌 기술 경쟁력이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복합이슈로 자리 잡았다. 고정밀 지도는 단순한 공간 데이터가 아니라 향후 기술패권과 직결되는 전략자산이기 때문이다.
첫번째 핵심은 국가안보다. 50㎝급 초정밀 지도는 지형의 굴곡, 도로 구조, 전력·통신·군사 인프라 위치 등 민감한 정보가 담긴 데이터다. 분단 상황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이 정보가 해외 서버에 저장될 경우 군사정보 보안에 대한 우려가 있다.
둘째, 국내 디지털 지도 생태계의 성장이다. 구글의 제약적 서비스 구조는 네이버·
카카오·티맵 등 국내 기업들이 그 공백을 메우는 기회가 됐다. 실시간 교통 반영, 복잡한 도심 골목길 안내, 초고속 업데이트 등은 이미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한국인의 생활패턴에 최적화된 서비스가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 글로벌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은 채 로컬기업이 자체 경쟁력을 확보한 사례다.
셋째, 데이터 주권의 관점이다. 공간 데이터는 자율주행, 로봇, 드론뿐 아니라 인공지능(AI) 기반 예측 시스템 전반의 핵심 원천이다. 이를 국내에서 통제·관리하고, 데이터 활용의 방향성을 국가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전략적 자산이다. 지도 반출 제한은 한국이 기술·산업 정책을 능동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 왔다.
물론 우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정밀 지도를 공유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글로벌 생태계와의 연계성이다. 구글 지도 기반의 내비게이션과 모빌리티 서비스가 한국에서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상황은 이미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문제다. 외국인 관광객이 지도 앱을 켜고도 길을 찾지 못하는 장면은 흔한 풍경이 되었다.
두번째는 기술혁신 속도의 둔화다. 자율주행, 드론,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 미래 기술의 상당 부분은 글로벌 통합 지리 데이터 플랫폼 위에서 발전하는데, 한국은 이 흐름에서 일정 부분 떨어져 있다. 아무리 국내 기술이 뛰어나도 국제표준과 연결되지 않으면 신기술 도입 속도는 늦어지고, 글로벌 협력 연구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HD 맵, 3D 공간 정보, 동시적 위치추정 및 지도작성(SLAM) 등 국경 없는 협력이 필수적인 분야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단절이 장기적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도 반출 문제는 결국 '안보냐 개방이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한국의 공간정보 정책은 자율주행·국가안보·글로벌 플랫폼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분단국의 특수성과 글로벌 생태계에서 그 어떤 고민도 가볍지 않다. 1990년대 스크린 쿼터제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고, 더 멀리 보면 K팝이라는 세계적 문화산업의 기반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의 정책적 선택은 미래 산업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우리의 지도정보 생태계 역시 일시적 보호를 넘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혁신 산업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모정훈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Copyrightⓒ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