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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흩어져 있어도 유태인은 서로에게 책임을 진다 [인류학자 전경수의 세상 속으로]

파이낸셜뉴스 2024.04.29 20:02 댓글0

율법과 공동체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난민 외면하면서까지
이스라엘 방어 집중하는 바이든
그 뒤엔 美 유태인 집단의 영향력


예루살렘의 성전산과 유태인 구역 사이에 있는 '통곡의 벽'을 찾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지 순례를 하고 있다. 사진=전경수 교수
예루살렘의 성전산과 유태인 구역 사이에 있는 '통곡의 벽'을 찾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지 순례를 하고 있다. 사진=전경수 교수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이 떨어지지 못한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가득한 어린이들의 모습에 꽂힌 나의 눈이 맞닥뜨린 것은 6·25전쟁으로 경험된 집단 트라우마일 수밖에 없다. 전쟁은 집단 트라우마를 누적시킨다. 저 죗값과 트라우마를 어떻게 씻어낼 것인가. 인류종말로 대가를 치르려고 하는가. 종군기자들의 희생도 유례없이 늘어났다. 아랍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2010년 여름 세계지리학회의 논문 발표를 위해 그 땅을 밟았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지중해를 안고 있는 텔아비브의 석양은 한가롭기 그지없었고, 모스크바에서 온 러시아지리학회 회원들의 홍보패널에 등장했던 마클로-미클레이의 뉴기니아 야장(野帳) 복사물도 잊을 수가 없다. 네게브벤구리온대학(Ben-Gurion University of the Negev) 지리학자의 안내를 받아서 며칠간 네게브 사막과 홍해의 바다를 다녔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는 전쟁터의 처절한 살림살이가 진행되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그들의 살림살이로부터 반사되는 우리의 살림살이에 대한 안타까움의 중첩 때문이다. '유대광야'로 알려진 네게브 사막은 이스라엘 땅 절반에 해당되는 남부에 자리하고, 사해를 안고 있다. 건조함이란 뜻이 담긴 히브리어인 '네게브'의 중심도시는 베르셰바이며,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근교의 애단 언덕(아브라함의 족적이 있는 곳)에 네게브 사막 개척을 기념하는 거탑이 섰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이며 초대 총리를 지낸 다비드 벤구리온의 이름을 따서 1969년 설립한 대학이 네게브벤구리온대학이다. 그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모세의 광야인 네게브 사막 개척을 위하여 주경야독을 하면서 노후를 보냈던 곳이며, 거대한 라몬 분화구를 내려다보는 곳에 벤구리온 부부의 소박한 무덤이 자리한다.

부부는 이민지인 미국에서 혼인하였다. 유태인이며 간호사 출신인 파울라(1892~1968)는 과일을 갈아서 으깬 퓨레에 치즈를 섞고 약간의 라스베리 주스를 첨가한 '캇치마치'를 즐겨서 만들었다. 일종의 과일요거트 비슷한 것이다. 부부는 이디시어(Yiddish)로 대화했다. 아슈케나지 유태인 공동체의 사람들이 사용했던 언어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학살됐던 유태인 600만명 중에서 대략 85%가 이디시어를 사용하던 유태인들이었다. 중부와 동부 유럽의 유태인들이 대체로 이 집단에 속하며, 프랑스와 이베리아반도 쪽에 형성되었던 유태인 집단은 세파르디(Sephardi) 유태인이다.

대학의 자료실에는 한눈에 보아도 전 세계 유태인에 관한 정보들을 소상하게 제공하고 있다. 출입구 벽에는 "모든 유태인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진다"고 썼다. 유태인 공동체라는 단어의 의미가 새롭다. 이스라엘 국가가 성립할 1948년 통계에 의하면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이슬람 국가 19군데에 산재한 유태인 숫자는 120만명이었고, 1992년 이스라엘 통계국이 작성한 자료는 230만명이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그리고 아시아에 거주한다는 숫자를 보인다. 팔레스타인 땅 그 옛 터전에는 7만9726명이 살고 있단다. 의미심장하다.

'서로에게 책임지는' 방법이 유태인 공동체 내에서 실천되고 있음이 현재 진행형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난다.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있다. 미국 내의 유태인 공동체가 이스라엘의 유태인들에 대해서 "책임지는" 방안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방어되지 않으면, 바이든은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반드시 낙선할 수밖에 없는 미국 사회의 정치적·경제적·언론적인 구조가 작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유태인 공동체의 저력이 발휘되고 있다.

베르셰바에서 에일라트까지 230㎞의 40번 고속도로 주변은 유대황야 이름대로 사막이었다. 에일라트는 홍해 최북단의 아카바만에 연한 이스라엘의 요새항구다. 도중에 1996년에 벤구리온대학이 설립한 아라바 환경연구소를 방문했다. 깊은 계곡으로 맞닿아 있는 요르단과의 국경에 자리한 키부츠 케투라에 위치했다. 안내자는 "정치적 갈등의 직면에서 수행되는 국경 없는" 연구소임을 강조하면서 유태인과 아랍 세계의 협력모델로 활약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 지어진 건물의 초라함과 대비되는 내부의 현대식 실험실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는 팔레스타인과 이란에서 온 연구원과도 대화할 수가 있었다. 소규모이지만 거대한 꿈을 실천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거대한 바위 덩어리의 절벽요새인 400m 높이의 마사다국립공원에도 들렀다. 케이블카로 이동하는 관광객과 달리 가파른 언덕길을 구보로 올라온 일군의 신병교육대와 만났다. 여고생 정도의 앳된 얼굴들도 포함한 근엄함으로 "다시는 마사다가 함락되게 하지 않는다"를 복창하는 정신교육 훈련장이었다. 서기 73년 로마병단의 침공에 함락됐던 유태인의 사회적 기억이 오늘에 생생하게 재현되는 현장이다. 960명 전원이 집단자살을 결행하는 옥쇄(玉碎)의 원조가 마사다에서 있었다. 유태 율법에는 자살금지 조항이 있기 때문에, 제비를 뽑아서 서로 죽이기를 하였고, '최후의 1인'만 율법을 어겼다. 팔레스타인과 나누어 가진 예루살렘 성지에서도 기초훈련이 끝나서 휴가를 나온 일군의 이스라엘 신병들을 만났다.

미국시민권을 갖고 있는 청년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 유태인 공동체의 젊은이들은 평소에도 이스라엘의 군복무를 자원한다. 이중국적 허용이라는 것이 이렇게 작동하고 있다. 전 세계의 유태인 공동체는 일상적으로 "서로에게 책임"이라는 모토 아래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모국과 교류를 하고 있으며, 유태인 달력이 표기한 축제기간에 미국과 유럽의 유태인들이 정기적으로 회귀하여 함께 축제를 만들어가는 공동체가 작동한다. 평시에는 축제를 함께하고, 전시에는 병사로서 참가하는 세계 유태인 공동체의 존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작년 10월 7일 네게브 사막의 서쪽 레임 키부츠의 축제장을 공격했던 하마스의 인질들 속에 다수의 미국인이 있었던 것도 위와 같은 맥락의 일환이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 군대의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외면하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이스라엘 방어에 올인하고 있는 이유로도 연장된다.

율법과 공동체가 살아있는 지구촌의 유태인 사회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신(GOD)'이란 존재는 하염없이 피를 원하는 모양이다. '지오디'의 개념이 머릿속에 없는 우리가 그들의 관습을 모방할 이유는 없다. '반풍수 집안 망한다'고 했다. 서구식의 모순으로부터 인간의 의미를 되새겨야 하는 과제가 있을 뿐이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어도 유태인은 서로에게 책임을 진다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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