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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재외공관장 신임장 수여식을 마치고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수정안을 마련해도 용산에 넘어가면 그곳의 사정에 맞춰지니까 획기적으로 바꾸긴 어려웠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자문기구 통일미래기획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인사의 발언이다. 통일미래기획위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발표한 8·15 통일 독트린
성안 작업을 주도했다. 본래 목표였던 30년 묵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수정은 이루지 못하고 보완재인 통일 독트린만 내놓게 된 데 대한 소회이다.
22일 대통령실과 정부에 따르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수정하고 신통일미래구상을 마련하는 건 윤석열 정부 초기 때부터 공을 들여온 과제이다. 1994년 김영삼 정부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마련했을 때와 한반도와 국제정세가 달라진 만큼, 새로운 통일담론을 내놔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지난해 1월 권영세 당시 통일장관은 연내 신통일미래구상을 발표하겠다며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2년이 넘는 준비 작업이 무색하게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원안 그대로 존치됐고, 윤 대통령은 이미 추진 중인 통일정책의 연장선상 내용이 대부분인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는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판단에 따른 결론으로 전해졌다. 그간 품을 들였던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수정을 포기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정은 2국가론-尹 반박'에 뒤집힌 통일방안 논의 방향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만 해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대대적으로 바꾸려는 논의가 이뤄졌다. 통일을 이루는 절차 자체를 바꾸자는 논의였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남북 화해와 협력을 기반으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체제가 공존하는 남북연합이라는 과도기를 거쳐, 단일체제 통일국가로 나아가는 3단계가 골자다. 그러나 북핵 고도화와 남북경색으로 첫 단계인 화해·협력도 난망해 통일방안과 현실 간의 괴리가 큰 만큼, 한민족과 남북연합이라는 개념을 삭제하고 국가 개념을 내세워 자유민주주의 단일체제 통일국가 목표를 담는 안이 다뤄졌다.그러다 큰 변수로 작용한 게 북한의 2국가론과 여소야대이다.
먼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 초 우리나라를 적대국이라 규정하고 민족과 통일을 부정했다. 전례 없는 수준의 남북경색 국면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에 맞서 윤 대통령은 3·1절 기념사를 통해 민족과 통일을 강조하고 나섰다. 사실상 무력통일을 천명한 김정은의 2국가론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애초 논의했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민족과 남북연합 삭제와 국가 개념을 앞장세우는 게 어려워졌다. 자칫 김정은의 2국가론과 맞닿게 될 수 있어서다.
그 다음 달인 4월 통일미래기획위는 2기로 재편됐고 논의 방향은 크게 바뀌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큰 틀은 유지하고 북핵과 인권 문제 등 현재 한반도 정세를 최신화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 윤 대통령과 김영호 통일장관이 공개적으로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을 강조한 데 따른 것이다.
尹 임기 내내 여소야대, 통일방안 정치쟁점화 우려에 존치 결론
같은 달 치러진 총선에선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대패하면서 윤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극단적인 여소야대가 이어지게 됐다. 22대 국회 개원식도 열지 못할 만큼 여야 갈등은 극에 치달았고 지금까지도 거대야당의 입법독주와 윤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가 반복되는 상황이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30년 동안 진보·보수정권을 막론하고 계승돼온 건 여야 합의로 마련했기 때문이다. 유례가 없을 정도로 격한 여야 갈등 속에서 거대야당이 흔쾌히 지지할 새로운 통일방안을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6월에는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동맹에 준하는 조약을 맺으면서 북핵 위협이 더욱 커졌고, 북한이 수차례 살포하는 오물풍선에 남북경색은 깊어져만 갔다.
1기 통일미래기획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1994년 여야 합의로 마련했는데 지금은 여야 합의로 무언가를 내놓을 가능성이 거의 없고, 남북 간의 대화도 전무하니 통일이라는 아젠다가 나아갈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통일 독트린 마련에 영향을 끼친 2기 통일미래기획위의 한 위원도 “지금 상황에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수정하면 정치쟁점화가 되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며 “또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북한의 고려민주연방제와 연결되면서 의미가 컸었는데, 상대인 김정은이 명백히 통일 포기 선언을 한 상황에서 우리가 새로운 통일방안을 내는 건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북한과 거대야당에 밀려 손대지 못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앞으로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남북관계에 변화가 있지 않는 한 다시 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동시에 지금의 현실이 반영돼있지 않은 이상론이라는 내용적 한계 탓에 사실상 ‘사문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일방안에 대해 30년 동안 많은 연구와 토론이 있었지만 현실적인 방안을 내기 어렵다는 결론은 이미 나와있다”며 “북한이 통일을 안 하겠다고 하는 판국이라 통일방안 자체가 사문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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