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추격, 폭스바겐 배신에… K배터리 재도약 기회 잡았다 [LG-SK 배터리 소송 합의]

성장성 높은 미국 사업 확대 등
기술력 바탕으로 점유율 높여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벌이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극적으로 화해하면서 한국 배터리 산업이 재도약의 기회를 맞게 됐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두 회사의 합의로 K배터리의 불확실성이 제거됐기 때문이다.

중국이 내수물량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 점령에 나서고 있으며, 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내재화 선언 등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 같은 파고를 넘어선다는 전략이다.

■K배터리 갈등 속 中 회사 약진

11일 양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ITC 판결 거부권 행사 시한을 하루 앞둔 이날 배터리 분쟁에 대해 전격 합의했다.

2019년 4월 29일 LG 측의 제소 이후 2년 만이다. 2년간 두 회사의 치열한 공방을 지켜보는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글로벌 업체들이 배터리 시장 선점을 위해 공격적인 확장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배터리 표준을 선정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대표업체끼리 서로 발목잡기에 나서는 모양새로 비쳤다.

특히 양사가 싸우는 동안 중국 업체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1위 자리를 두고 다투던 중국 CATL은 올해 1~2월 시장점유율에서 큰 폭으로 앞서며 1위를 굳혔다. 시장조사업체 SNE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배터리 사용량 부문에서 중국 CATL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2.1% 늘어난 8.0GWh를 기록했다. 시장점유율도 전년 같은 기간 17.3%에서 올해 31.7%로 크게 상승했다.

중국 BYD, CALB, 궈쉬안 등도 큰 폭으로 성장했다. 특히 BYD가 점유율 4위에 올랐다. 지난해 4, 5위를 차지했던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은 각각 5위와 6위로 밀려났다. BYD의 배터리 사용량은 올해 1~2월 전년 대비 401.8% 늘어난 1.8GWh를 기록했고 CALB는 8배 오른 0.8GWh를 기록해 7위, 궈쉬안은 153.2% 오른 0.5GWh로 9위에 이름을 올렸다.

■완성차 배터리 개발도 악재

글로벌 1위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이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한 배경에도 두 회사 갈등에 따른 공급 불확실성이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폭스바겐은 지난달 15일 '파워데이'를 열고 각형 배터리 비중을 늘리고, 자체 생산분도 확대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사실상 국내산 파우치형 배터리를 쓰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중국은 주로 각형을, 국내 제조 3사는 파우치형에 집중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에선 이번 합의를 한국 배터리 업계의 재도약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두 회사가 지루한 갈등에 마침표를 찍고 글로벌 시장 변화 대응에 집중할 수 있어서다. 미국 시장에서 수혜를 볼 가능성도 커졌다. 두 회사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면 미국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큰 타격을 입힐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SK이노베이션이 건설 중인 조지아주의 일자리 2000여개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이번 합의를 통해 미국 배터리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바이든 정부의 체면을 살려준 덕분에 세계 3대 시장 중 가장 성장성 높은 미국 시장의 본격적인 사업 확대의 청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사도 이날 합의문에서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터리 공급망 강화 및 이를 통한 친환경 정책에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형성되는 초중기여서 빠르게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번 합의로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 외부 시장 변화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다행"이라며 "국내 업체들이 각형 배터리 전환에 힘을 모아 대응해야 한다"고 전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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