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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한국의 보르도, 포항

파이낸셜뉴스 2023.11.30 18:41 댓글0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이렇게 시작되는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가 경북 포항에 있는 데는 사연이 있다. 육사의 고향은 경북 안동이다. 포항 동해면과 청림동 일대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든 '미쓰와(三輪) 포도원'이 있었는데 폐결핵을 앓던 육사가 이곳에 머물다 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안동에도 청포도가 없었던 게 아니라서 시의 배경이 안동이라는 반론도 있다. 안동 도산면에도 시비가 있다.

포도주, 즉 와인은 일제강점기에 이미 한반도에까지 들어와 있었다. 일본인들은 프랑스산 와인이나 프랑스 포도를 수입해 만든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져 수입이 어려워지자 일제는 포항에 200만㎡나 되는 포도농장을 만들었는데 바로 미쓰와 포도원이었다. 데라우치 조선총독의 권유를 받은 사업가 미쓰와 젠베이가 1918년 2월 국유지를 불하받아 농장을 설립, 와인을 생산했다고 한다. 동양 최대 규모였다. 당시 아사히신문은 포항 와인이 프랑스 고급 와인에 뒤지지 않는다고 썼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농장의 일부에 비행장을 건설했고, 광복 후에는 이재민후생농장도 들어서 포도밭은 축소됐다. 그래도 농장은 건재했고 와인도 계속 생산됐다. 고급 주류인 와인을 맛보기 어려웠을 때 포항 와인의 인기는 대단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1952년부터 신문에 광고를 냈다. 광고에는 '뿌란듸(브랜디)'라는 단어도 보이는데 포도주뿐만 아니라 브랜디도 생산했음을 알 수 있다(경향신문 1961년 9월 15일자·사진).

생산업체 이름은 '포항삼륜포도주공사'로 돼 있다. 일본 명칭 '삼륜'도 그대로 썼다. '공사'라고 한 것은 민간기업이 아닌 공공기업이었다는 뜻인데, 확인하기는 어렵다. '포항 포도주'는 1960년대 중반까지 서울 전차에 외부 광고를 붙일 정도로 유명했다. 와인을 우리말로 하면 포도주가 되겠지만 따지고 보면 조금 다르다. 와인은 오랜 숙성 기간을 거쳐 만들어진다. 알코올에 포도를 넣어 짧은 기간에 만든 담금주는 와인이라고 부를 수 없다. 포항 포도주를 와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오래 숙성시켰는지는 역시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외국에 수출도 했다고 한다. 수출 기념 음반까지 나왔다. "사랑이 많다 해도 첫사랑만 못해요 첫사랑에 취한 맛 달콤한 포항 포도주"라는 은방울 자매의 '첫사랑에 취한 맛'이란 가요다. 그러나 서양 와인과 비교해 제조기술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1966년 방부제 과다사용이 문제가 돼 결국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포도농장 자리에는 현재 군부대와 비행장이 들어서 있다. 청림동에서는 청포도 축제가 해마다 열린다. 제대로 만든 국산 와인은 '마주앙'의 등장까지 기다려야 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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